법원 "치료 행위 과실 없지만 설명의무 위반" 판결 잇따라
"설명의무 적용, 부작용 사례도...의료·법 제도정비 필요"
환자 측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치료 행위에 대한 의료진의 잘못은 인정되지 않지만 설명이 구체적이지 않았다며 배상을 명하는 판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료진의 설명의무 범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뇌동정맥 기형에 대한 코일 색전술로 뇌경색 증상이 발생한 강모 씨와 가족들이 A대학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만 배상을 명했다.
강 씨는 2007년 7월 1.5cm의 뇌동정맥 기형이 발견됐다. 혈관 뭉치가 뇌조직 내에 생기는 증상인 뇌동정맥 기형의 일반적인 치료방법은 ▲외과적 수술로 부위를 제거하는 방법 ▲방사선을 이용해 혈관 뭉치를 서서히 없어지도록 하는 방법 ▲색전물질을 주입해 혈관 뭉치에 공급되는 혈액을 차단해 제거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해당 병원은 색전물질을 주입하는 코일 색전술로 강 씨를 치료하고자 했다.
그런데 시술 직후 강 씨는 메스꺼움을 호소했고 MRI 촬영 결과 뇌경색이 발견됐다. 시술 중 색전물질인 글루(Glue)의 일부가 혈관 뭉치 주변의 정상혈관에 유입돼 혈류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뇌경색으로 강 씨는 좌측 부전마비·좌측 상지 및 하지 운동기능 장애·언어기능 및 인지기능 장애 등이 발생해 61%의 노동능력을 상실했다. 이에 강 씨와 가족들은 치료방법 선택상의 과실·시술상의 과실·설명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해당 병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설명의무 위반을 제외한 나머지 과실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치료방법 선택과 시술상에 문제에 선택에 대해 재판부는 "의료진이 색전술을 선택하는 데 있어 장·단점을 고려 봤을때 합리적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기 어렵고 시술상 메뉴얼을 위반했다고 보기에는 강 씨 측이 제출한 증거만으로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는 강 씨 측의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병원 측은 뇌동정맥 기형을 치료하는 방법이 색전술 외에 외과적 수술과 방사선 시술이 존재하고 색전물질이 정상 혈관으로 유입될 경우 뇌경색을 유발할 수 있음을 환자에 충분히 설명해 강 씨가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며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위자료로서 강 씨에게 1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또한 "가장인 강 씨가 입은 장애의 정도가 심각하고 배우자와 자녀들도 상당한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봐야하기 때문에 아내 박모 씨에게 300만원, 자녀 둘에게 각각 1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명했다.
'설명의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설명의무에 대한 판례를 살펴보면 원심에서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며 위자료 지급을 명했던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물론 재판부마다 비슷한 사건의 판결이 엇갈린다.
지난달 대법원은 제1부는 유도분만 과정에서 양수색전증으로 산모가 사망한 사건에서 분만유도제 옥시토신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며 배상을 명한 원심을 파기했다. 옥시토신 사용으로 인한 양수색전증 발생이 예견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지난해 11월, 대법원 제3부는 같은 분만유도제인 옥시토신을 사용해 산모가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해당 치료행위에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중대한 것인 경우 발생 가능성이 희소하더라도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며 3000만원의 위자료를 선고했다.
산모가 옥시토신을 사용해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면 의료진이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이지만 양수색전증으로 사망했다면 설명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쪽은 흔치 않더라도 반드시 설명해야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흔치 않아 예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상고심 재판부의 해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지난 2013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민사부의 판단이 눈길을 끈다.
재판부는 "의사의 설명의무는 침습행위에 관한 사항이니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되는 사항일 경우에만 요구된다"며 환자 상태가 악화돼 사망할 수 있다는 얘기를 너무 늦게 해줬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환자 가족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설명의무에 대한 범위를 환자의 선택권을 침해했을 경우로 한정한 것.
그러나 이 같은 범위의 한정도 문제가 있다. 다양한 설명의무 위반 사건에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 돼 있는 수술동의서에 환자가 서명을 한 경우 이를 설명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성형수술 후 부작용이 생긴 환자가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수술동의서 서명만으로는 설명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설명의무 위반으로 위자료 7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이에 환자와 병원, 양측 모두 항소심을 제기 했지만 재판부는 조정회부를 명령한 상태다.
이같이 애매한 설명의무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무법인 세승의 김주성 변호사는 "과거에는 수술동의서를 받지 않아 의료진이 설명의무 위반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대형병원들이 설명의무를 지키기 위해 과잉 설명을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설명의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을 면하기 위해 환자가 몰라도 되는 부분까지 설명하는 것"이라며 "환자가 과도한 설명을 듣고 공포감이 생긴다면 수술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명의무의 명확한 기준에 대해 김 변호사는 "일률적인 기준이 아닌 치료행위의 성격·의학적 예견 가능성·사실관계 등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며 "의료·법률 적으로 노력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