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검사 해석도 못하면서 현대 의료기기 쓰겠다고?

혈액검사 해석도 못하면서 현대 의료기기 쓰겠다고?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5.04.1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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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혈액검사기 사용' 요구에 의학계 "어불성설"
한의학정책관실, 국회서 위증까지 하며 한의계 지지

▲ 한의계가 혈액검사기기를 비롯한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혈액검사는 질병 정보를 제공하는 진단검사의학 분야의 주요 업무. 단순한 혈액검사라 할지라도 국민의 안전과 의료법(면허)은 물론 의료기사에 관한 법률(임상병리사)과 국민건강보험법(급여 및 비급여) 등이 맞물려 있어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한의계가 요구하고 있는 현대 의료기기의 대략적인 윤곽이 나왔다.

대한한의사협회 임원들은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확대 관련 공청회'에서 진술인으로 출석해 "CT·MRI 등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사용하는 진단기기를 제외한 일반의들이 주로 사용하는 의료기기 모두에 대해 한의사에게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한의협 김태호 이사와 이진욱 부회장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 X-레이·초음파·혈액검사기·소변검사기 등을 허용해 달라"고 주장했다.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가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며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와 한의사들에게 현대의료기 사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규제 기요틴(단두대) 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석 달 만에 한의계는 일반의들이 주로 사용하는 의료기기를 모두 사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의학의 전통을 고수하며 의학과 다른 길을 걸어온 한의계가 의료에 눈 독을 들이게 된 배경에는 한의학의 학문적 한계와 쇠퇴가 자리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와 분자의학으로 발전하며 21세기 첨단 의과학 시대를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한의계는 기와 혈의 실체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공영방송에 출연한 김지호 한의협 홍보이사는 "(염좌를)맥으로도 알 수는 있지만 더 쉽고 정확하게 영상으로 딱 보면 알 수 있는 현대 의료기기가 있는데, 다른 더 어려운 방법이나 불확실한 방법으로만 하는 것은…"이라며 진맥을 통한 진단에 한계가 있음을 시인했다.

한의계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요구는 "의학으로 진단하고, 한방으로 치료한다"는 '의진한치(醫診韓治)'와 맥이 닿아있다.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실도 한의계의 '의진한치'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의약정책관은 광선조사기인 IPL(Intensive Pulsed Light)이 고전 한방의학서 이론에 부합한 의료기기라며 국회에서 위증을 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대한피부과의사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와 공동 대응한 끝에 5년 만에 1심 (유죄)→2심(무죄)→대법원(무죄판결 2심 파기)→파기환송심(유죄)→ 대법원 재상고심(기각)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현대 의료기기인 IPL이 한방원리에 의해 한의사도 쓸 수 있다며 비호하고, 5년 동안 소송을 벌이도록 빌미를 제공한 한의약정책관과 한의약정책과는 여전히 건재하다. 오히려 제식구 감싸기식 유권해석을 계속하며 의료질서를 혼란시키고 있다.

▲ 잘못된 검체검사와 부정확한 판독은 없는 병을 만들거나, 있는 병을 놓친다는 점에서 국민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혈액검사기와 관련한 유권해석. 한의약정책과는 2014년 12월 "한의사가 자동혈액검사기기를 이용해 콜레스테롤검사·간기능검사·당뇨검사·빈혈검사 등을 해도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냐?"는 질문에 "채혈을 통하여 검사결과가 자동적으로 수치화되어 추출되는 혈액검사기를 한의사가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답했다.

"한의사 또는 한의사의 지시 하에 간호사 등이 한방 의료행위로 보기 어려운 간기능검사 등을 위해 채혈하는 것은 의료법에 저촉될 수 있다. 한의학적 원리에 근거하지 아니한 보조적인 검사 등을 위해 다른 의료기관에 환자를 의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2011년 12월 6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 보건의료정책과)는 기존의 유권해석과는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한의계가 국회 공청회에서 진단기기 사용을 요구한 배경에는 헌법재판소의 2013년 12월 26일 결정이 자리하고 있다. 헌재는 현대 안과 의료장비를 이용해 안질환자를 진료하다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한의사에게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행정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헌재 결정에 이어 "자동화된 혈액검사기는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는 한의약정책과의 유권해석은 한의계의 진단기기 사용 요구에 힘을 싣고 있다.

진단검사의학회는 한의계가 혈액과 소변 검사기기에 눈 독을 들이자 "한의계에서 검체검사를 활용하려면 과학적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하는 데 한의학 분야에서 검체검사의 적응증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면서 "진단검사의학과의 의료행위는 한의사가 수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와 함께 "검체검사를 위해서는 적절하게 채취되고 보관된 검체와 양질의 시약, 올바르게 관리되고 재현성과 정확도가 보증된 장비, 그리고 충분한 전문지식을 갖춘 숙련된 검사자와 관리자가 필요하다"면서 "이런 4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오류가 발생한다면 검사결과의 질을 보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간학회는 "B형 간염 항체(HBsAb)만 양성이면 B형 간염 항원(HBsAg)이 양성이더라도 간염 항체가 생성됐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이런 한의사들이 어떻게 혈액검사를 올바르게 해석할 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냐"면서 "혈액검사결과는 자동으로 나오지만 이를 해석할 능력과 지식이 없다면 엉터리 해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간학회는 "HBsAg 소실없이 HbsAb가 생성됐다고 해서 면역력을 획득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HBsAg 양성은 B형 간염에 감염됐다는 뜻임에도 이들은 HbsAb가 생성돼 면역력을 획득했다는 식의 엉터리 설명을 하고 있다"고 검사수준에 의문을 제기했다.

▲ 진단검사의학과 의료행위(검체검사)는 한의사가 수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진단검사의학회의 확고한 입장이다.
의료계는 "법과 제도상 의사와 한의사 제도를 별도로 구별하고 있고, 전통의학을 공부한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현행 의료법상 불법"이라며 한의계의 초법적 주장을 일축했다.

의협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전문가간에 협의할 경우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안전'과 '오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조치들을 반드시 논의에 포함시켜야 한다"며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만큼, 포퓰리즘이 아닌 전문가적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입징이다.

강청희 의협 상근부회장은 "현대 의료기기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교육과 수련과 임상적인 경험이 필요하다"면서 "의학이 아닌 한의학을 배운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원화돼 있는 교육과정과 면허체계부터 하나로 통합, 환자 진료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한 이후에 사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혔다.

이평수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의료와 한방의료의 근본적인 갈등이 해소되겠냐"면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에 앞서 의사와 한의사로 이분화된 의료면허체계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규제는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제도"라면서 "면허가 구분된 상태에서 협진이나 의료기기 사용 범위 완화 등 규제개혁은 의사나 한의사는 물론 국민과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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