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낯선 질병과 싸우는 '공감' 동지애

청진기 낯선 질병과 싸우는 '공감' 동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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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8.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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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희 원장(매거진 반창고 발행인·연세비앤에이의원 대표원장)

▲ 전진희 원장(매거진 반창고 발행인·연세비앤에이의원 대표원장)

# 의사
저는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입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동네의 작은 상가 건물입니다. 아침마다 나는 병원으로 출근을 합니다. 익숙하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일하기 편한 의료진 복장으로 갈아입습니다.

제가 매일 환자를 본 진료 기록이 컴퓨터 안에 담겨있습니다. 자주 오는 환자들의 세세한 기록도 전부 컴퓨터에 담겨 있습니다.

# 어린 환자와 엄마
아이가 아파 동네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는 2살입니다. 며칠째 기침과 콧물이 멈추질 않아 걱정입니다.

밤에는 기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병원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낯선 곳입니다. 특히 새로운 병원에 가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어려운 공간입니다. 처음 보는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에게 나의 모든 것을 알리고 아이의 아픔을 알려야 하니 어색하기도하고 불안한 마음에 걱정이 앞섭니다. 

낮선 공간에서 간호사의 안내로 이동하여 병원의 의사선생님을 만납니다. 금방이라도 심각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 경직된 표정으로 목에 청진기를 걸고 있는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진찰하기 시작합니다.

# 의사
나는 병원이 문을 연 1460일 즈음 되는 어느 날, 첫 환자로 아이와 엄마를 만납니다.

작은 눈동자에 겁이 가득한 아이는 기침으로 밤새 뒤척였다고 합니다. 천천히 깊은 숨을 쉬게해 아이의 폐 소리를 확인하고 보호자인 엄마에게 이것저것 진료를 위한 문진을 합니다. 아이의 작은 입을 통해 목에 염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꼼꼼히 살피고 귀와 코 속에 살핍니다.

아이의 기침이 오래되고 점점 악화돼 힘들어하는 보호자에게 기침을 하는 이유와 기침이 나오게 된 원인을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난 익숙하게 환자 진료 내용을 컴퓨터에 기록하고 처방을 내리며 아이와 엄마와 인사를 나눕니다.

# 어린 환자와 엄마
아이가 진찰을 받는 동안 의사 선생님의 손동작 눈빛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혹여 심하게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깊은 숨을 쉬게 해 청진을 하니 아이가 기침을 합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입안도 살피는 데 혹시 아이가 아프지는 않은지 걱정됩니다.

의사 선생님은 원인을 설명해주고 처방을 내려준다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립니다. 나는 선생님의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제발 잘 낫길 바라며 진료실을 나옵니다.

병원에서 매일 겪는 의사와 환자 보호자와의 대화와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며 최대한 상대를 이해하며 진료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환자와 보호자는 불안과 걱정을 쉽사리 놓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병원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익숙한' 곳이며 내가 가진 지식은 내가 수년간 익힌, 내게는 완전히 익숙한 단어와 지식들입니다. 그러나 상대인 환자와 보호자는 '아픔'이라는 익숙치도 않고, 어렵고 불안하고 두려운 경험을 나누는 곳이 병원입니다. 환자에게는 낮선 지식을 가진 사람인 의료인들과 자신의 아픔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의사인 우리가 가진 지식은 환자들에게는 알 수 없는 외계어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주 쉬운 단어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지식 정도까지 이해하는 부분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낯선 경험인 아픔에 대한 걱정을 쉽게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해 동료로서 진료를 나눈다면 무엇보다 가장 이상적인 환자와 의사의 동료애일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한정된 진료 시간에서 완벽한 이해를 통해 의학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작은 수단을 찾으면 무엇이 있을까요?

많은 경우 의사와 환자가 의학적인 지식 자체를 완벽히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좋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지식이 아닌 공감으로 개선된다고 합니다.

독일의 내과에서는 진료시에 환자의 눈높이는 맞춰 앉아서 눈을 마주치는 5초만으로도 환자의 불안이 감소됐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의 환자와 의사와의 대화를 더욱 부드럽게 해 줄 수 있는 대화 몇 마디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멋진 눈을 가진 아이구나. 밤에 기침으로 잠을 못 자서 힘들었구나. 엄마도 걱정이 많으셨을 거예요. 선생님이 아가를 잘 진찰해서 나을 수 있게 도와줄 수 있게 진찰을 해보자'

'지금 상태는 ○○○○이에요. 앞으로 기침을 해가면서 가래가 잘 나올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엄마가 밤에 고생하셨지요? 제가 오늘은 좀 더 수월하게 잘 수 있게 노력해 볼게요'
'아이가 내일도 힘들어 하면 언제든지 전화주세요.'

제가 표현한 것은 좀 더 구체적인 공감이었습니다. 아이와 엄마는 저희 병원에 2주에 3번은 올 정도로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습니다.

제가 만병통치약을 처방한 것도 아니며 아이는 종종 아프고 여전히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우리는 질병이란 것과 싸우는 동지로 서로에 대한 신뢰를 키우며 수년을 함께 하는 관계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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