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쟁점
한국제약협회 22일 설문 결과 공개 방침 밝혀
한국제약협회가 리베이트 근절대책의 하나로 무기명 설문조사 결과를 내부 회의에서 공개하기로 하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비공개 내부 회의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50여개 회원사 대표가 참석한 회의인 만큼 비밀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편에서는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강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해당 제약사로부터 고소당할 수 있어 실제 공개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회의론의 핵심은 설문조사 결과 발표가 명예훼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우선 내부 회의에서 발표한 것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다.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LK파트너스)는 '적시'로 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내부회의에서만 발표한 것이라도 충분히 유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볼만 하다면 '적시'한 것으로 법원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
오승준 변호사(법무법인 원일) 역시 "외부로 전달될 가능성이 있는지가 쟁점"이라며 "내부 회의에 다른 제약사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유포될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자연인이 아닌 특정 법인이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역시 '그럴 수 있다'고 변호사들은 지적한다. 자연인 뿐 아니라 '죽은 사람', 법인 심지어 법인격이 없는 종친회 등도 통일된 의사를 형성할 수 있는 집단으로 인정되면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고소의 대상 역시 제약협회 혹은 제약협회 대표, 임원 등이 모두 될 수 있다.
오승준 변호사는 "법인을 고소하면 벌금형만 내려지기 때문에 대체로 법인 대표와 관계된 임원이 함께 고소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특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면 형벌은 더욱 무겁다.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가장 큰 쟁점은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공익적 목적의 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처벌할 수 있을까'이다.
형법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제310조 위법성의 조각)'는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이경권 변호사는 "이렇다할 근거없이 설문조사 결과만으로 해당 제약사가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는 발표를 한 경우 '진실한 사실'로 판정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봤다.
오승준 변호사는 조금 다른 견해를 밝혔다.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어떤 형식을 빌릴 것인지에 따라 '진실한 사실'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견해다.
"**제약사가 리베이트를 하고 있다"가 아니라 "**제약사가 설문조사에서 리베이트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대답이 나왔다"고 적시된 사실만 알린다면 '진실한 사실'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가 또다른 쟁점이 되리라 전망했다.
오승준 변호사는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고 해도 해당 제약사가 설문조사 발표로 '회복하기 어려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이경권 변호사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여지도 있다"며 책임면제 가능성을 열어놓기도 했다.
결국 법원이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설문조사 발표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할 수 있는 행위라고 판단한다면 불법 시비를 벗을 수도 있어 보인다.
제약협회측은 "설문조사 발표의 적법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논란 가능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리베이트 근절이란 절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발표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며 설문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지난달 취임한 이행명 제약협회 이사장(명인제약 회장)은 이런저런 우려에도 이번 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