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청구 확인시 3년 연장'...고압적·관료적
"현지조사는 압수수색영장 없는 강제 조사"
보건당국의 현지조사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J원장 사건이 의사 사회가 들끓고 있다. 의료계는 사전 통보 없이 조사단이 갑자기 진료실에 들이닥쳤고, 아무런 주의나 경고 조치 없이 무려 3년에 달하는 청구건을 한꺼번에 소급해 문제삼아 처분을 내린 것은 '행정살인'이라며 격앙된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현지조사 당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고인에게 제시했던 조사명령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지는 최근 J원장이 조사단으로부터 직접 전달 받은 조사명령서 원본을 입수했다.
조사명령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97조 및 의료급여법 제32조에 의하여 귀 요양기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조사를 실시코자 하오니 조사자의 관계 서류 검사, 질문, 자료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해 주시기 바란다'는 문구로 시작된다.
이어 조사대상 기관, 즉 J원장의 의원명과 원장 실명, 조사기간, 조사범위, 조사대상기간, 제출(검사)자료, 조사자 명단 등이 차례로 적혀 있다.
조사기간은 '2016년 5월 24일부터'로 조사 개시일만 명시돼 있을 뿐 종료일은 나와있지 않다. 조사 범위 역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에 관한 제반 사항'이라고만 적혀 있고, 구체적인 내용 언급돼 있지 않다. 조사대상 기간은 총 33개월로 명시돼 있다.
'제출(검사)자료' 항목 또한 국민건강보험법시행규칙 제58조, 의료급여법시행규칙 제11조 등에 의한 서류 및 기타 조사에 필요한 관계자료'라고만 적혀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지 적시돼 있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짓·부당청구가 확인되는 경우 3년 범위 내에서 조사를 연장한다'고 강조한 부분이다.
조사의 연장 가능성을 미리 고지하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피조사자 입장에선 강한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무려 21명에 달하는 조사자 명단을 적어 놓고 '필요시 조사인원을 추가투입'한다는 방침까지 붙여놨다.
이 같은 의료기관 현지 조사명령서는 법원이 발부하는 압수수색영장보다 훨씬 더 관료적·고압적이라는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본지가 입수한 서울지방중앙법원의 압수수색검증영장에는 △압수·수색·검증을 요하는 사유 △수색·검증할 장소·신체·물건 △압수할 물건 등을 별지를 통해 매우 상세하게 적시하고 있다.
특히 압수할 물건의 경우 '피의자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 단말기' '피의자의 ***톡 아이디 및 대화명' 등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막연히 '제반 사항', '관계 자료'라고만 돼있는 보건복지부장관의 조사명령서와 대조적이다.
의료기관 현지조사와 압수수색검증은 개인의 사적 공간과 사유물을 공권력이 합법적으로 침해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법적 근거의 무게감에선 크게 차이 난다.
현지 조사명령은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 등을 근거로 하는데 비해 압수수색검증은 헌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한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범죄 피의자 수사에 필요한 압수수색검증도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는 헌법을 근거로 엄격한 과정을 거쳐 법원이 발부하는데, 한 명의 의사를 자살로 몰고 갈 정도의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을 줄 수 있는 의료기관 현지 조사명령은 개별 법률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김해영 의협 법제이사는 "사전 예고 없이 진료실에 들이닥치는 것은 사실상 강제 수사, 영장없는 압수수색과 다름 없다"며 "일에 대한 보람과 자존감으로 사는 의사들로선 (현지조사가) 검찰에 끌려가 조사받는 것과 같은 모욕감을 느끼게 되고 그 심리적 충격은 매우 클 것"이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