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제연구원 "국민 건강권 부정적 영향 가능성 높다"
공공병원 비율 늘리고, 중소병원 세금 혜택·재정 지원해야
현 시점에서 영리병원 설립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전망이 나왔다.
한국법제연구원은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법제전문 국책연구기관.
김영찬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지도 김은정 한국법제연구원 글로벌 법제연구실 부연구위원)는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행한 <ISSUE BRIEF> 최근호에서 '영리 의료법인 허용 관련 법제 이슈'를 통해 "전면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법인의 허용 여부에 관한 판단은 의료 서비스의 공공적인 측면에서 재고해야 한다"면서 "영리 의료법인 허용에 앞서 의료업이라는 행위를 놓고 서비스라는 측면과 공공재라는 측면 중 어느 쪽을 더 강조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공공병원 비율은 10% 이하로 낮은 편"이라고 지적한 김 교수는 "영리의료법인을 전면적으로 허용하기 전에 공공병원 비율을 장기적으로 늘리는 등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 측면을 먼저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공공병원 확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과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이것을 실현하기 전에 비영리를 지향하는 중소병원에 대한 세금과 관련된 혜택이나 재정적 지원 등을 위한 법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의료 서비스 산업 발전을 강조하는 영리의료법인 허용 찬성 의견과 국민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 측면을 강조하는 영리의료법인 허용 반대 의견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대립하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발의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됐으나 지난 5월 20일 이명수 의원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하면서 다시 논쟁의 불씨를 당겼다.
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이 법안은 정부가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연구개발 지원 및 규제 완화에 필요한 근거를 담고 있다. 법 적용 대상에는 의원·병원 등 의료기관을 포함하고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바탕으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법 적용 대상에서 의료 분야를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정부와 청와대가 특정병원을 지원하기 위해 이 법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무상의료운동본부·전국을살리기국민운동본부·전국유통상인연합회·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은 11월 24일 박근혜-최순실 재벌특혜 규제프리존법 추진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규제프리존법은 기재부에 규제프리존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기재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규제프리존법은 다른 법령보다 우선 적용토록 함으로써 국민의 삶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각종 규제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있다. 다시 말해 기재부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어 기업들의 돈벌이에 방해가 되는 모든 규제들을 제거해 주겠다는 것"이라며 "규제프리존법에서 적시한 규제완화 대상이 보건의료, 환경, 교육, 개인정보, 경제적 약자보호 등 국민의 삶과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익적 가치들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재부가 시도지사와 협의해 어떤 부대사업도 허용할 수 있다"면서 "규제프리존으로 지정된 지역에서는 식약처의 허가가 나기도 전에 의료기기 제조와 시판을 할 수 있다. 또한 원격의료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강원도에 '확장형'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실시된다"며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의료민영화법으로 규정했다.
영리 의료법인 허용을 찬성하는 입장은 자본의 쉬운 유입으로 경쟁 체제를 구축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일 기회를 창출할 수 있고, 자산 활용이 좀 더 쉬워져 의료 산업이 외부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의료 서비스 시장 개방이라는 세계화 추세를 들고 있다.
반면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의료비용의 상승으로 의료 서비스 접근이 어려워 지고, 자본 집중으로 인한 독과점 폐해와 함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소병원의 경영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또한 고급의료 서비스의 선호경향을 더 심화시키고, 의료비용 고비용화로 인해 현행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하는데 재정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의료서비스의 빈익빈 부익부와 양극화로 인해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투자자의 수익 추구로 인해 수익과 거리가 먼 교육·연구 사업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질 가능성도 손꼽았다.
김 교수는 "의료 서비스의 산업화를 통해 얻는 사회적 이득과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을 통해 얻는 사회적 이득 모두 각각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 양자택일이 쉽지 않다"면서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할 경우 자본 유입을 확대한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으나, 수익 분배 과정에서 공공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는 대신 추가 세금 부담과 기금 적립 의무화 등의 조치에 대해 김 교수는 "투자자의 수익 감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 새로운 자본 유입이라는 목적이 효과적으로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헌법상 평등권 침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리의료법인 설립과 관련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인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존폐 여부에 대해서도 "다른 국가의 경우에는 영리병원의 설립을 어느 정도로 허용할 것인가 여부만이 쟁점인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라는 조건 하에 영리의료법인 허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기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면서 "당연지정제는 전체 국민의 건강권 보장 측면에서 기능하는 역할이 작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