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보건복지부 가혹한 행정처분 제동 "재량권 일탈·남용"
"규모와 기간, 사회적 비난 정도, 이익 규모 등도 고려해야"
현행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는 부당청구와 관련한 '업무정지 처분 및 과징금 부과의 기준'은 월평균 부당금액·부당비율 2개 기준에 따라 최소 10일에서 90일까지 업무정지 기간을 정해 놓고 있다. 기준을 넘어선 경우 부당비율이 1% 높을 때마다 3일씩 더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100일 이상 업무정지 처분도 가능하다.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는 A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등 처분 취소 소송(2016누55553) 항소심에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하라는 1심(2016구합50877) 판결에 무게를 실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4년 5월 14∼16일 3일 동안 A의원을 방문, 2011년 5∼9월과 2014년 1∼3월 총 8개월 동안의 요양급여비 청구·지급 내역을 조사했다.
보건복지부는 현지조사 결과, A원장이 레이저 제모시술을 하고 수진자들에게 비급여 진료비를 받았음에도 상세불명의 연조직염 등에 관한 진료를 한 것처럼 진료기록부에 기록한 후 115만 1620원을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해 지급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보험자에게 총 191만 3070원(약국약제비 76만 1473원 포함)의 요양급여비용을 부담케 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총 요양급여비용(743만 8830원) 가운데 총부당금액(191만 3070원, 월 평균 23만 9133원)을 적용, 부당비율 25.71%에 해당하는 업무정지 93일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한 채 홀로 소송에 나선 A원장은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레이저 제모시술 후 발생한 모낭염 등을 치료하는 행위가 요양급여대상에서 제외되는지 몰랐고, 이를 안 후에는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또한 "요양급여 비용이나 기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부당비율에 따라 가혹한 업무정지 처분을 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 사유와 기준에 따른 처분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재량권 일탈·남용에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행정처분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99두5207. 2001년 3월 9일 선고)를 인용, "제재적 처분의 기준이 법규명령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과 평등의 원칙에 비추어 같은 유형의 위반행위라 하더라도 그 규모·기간·사회적 비난 정도·위반 행위로 인해 다른 법률에 따라 처벌받은 사정·행위자의 개인적 사정 및 위반행위로 얻은 불이익 규모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안에 따라 적정한 제재를 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처분 기준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최고 한도를 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재적 행정처분이 사회 통념상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했거나 남용했는지는 처분사유로 된 위반 행위의 내용과 처분 행위에 의해 달성하려는 공익 목적 및 이에 따르는 제반 사정 등을 객관적으로 심리해 공익 침해 정도와 그 처분으로 인해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비교·교량해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는 5개월 동안만 이루어졌고, 이익도 총 190여만 원에 불과한 점, 개원 초기 요양급여대상 범위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안 후에는 비위 행위를 하지 않았으므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운 점, 부당비율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것은 아닌 점 등을 지적한 뒤 "이 사건 처분으로 달성되는 공익보다 이로 인해 원고가 입을 불이익이 훨씬 크다"면서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업무정지 기간을 초고한도인 93일로 정해 처분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현행 업무정지 처분 기준인 부당금액·부당비율 2개 외에 재량권 일탈·남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간 ▲사회적 비난 정도 ▲이익 규모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정한 업무정지 기간을 산정하도록 새 기준을 제시했다.
고법 판결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 판결이 확정됐다.
한편, 이번 판결에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B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처분 취소 소송(2015구합65742. 2016년 9월 6일)에서도 부당하게 지급받은 요양급여비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은 채 현지조사 결과를 토대로 산출한 총부당금액을 기준으로 행정처분을 한 것은 재량권 일탈·남용으로 판단, 118일 업무정지 처분을 취소했다.
서울고등법원 항소심(2016누65772)에서는 2월 2일 보건복지부의 항소를 기각했으며, 상급법원에 상소를 포기함에 따라 118일 업무정지 처분 취소 판결은 2월 21일자로 확정됐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따라 최고한도 행정처분을 내리고 있는 현행 '업무정지 처분 및 과징금 부과의 기준'의 개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