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전문의들 "한방 치매 치료 검증이 우선"
바른의료연구소, 한방 치료 효과 논문 '변조' 제기
정부가 추진하는 치매국가책임제에 한방 치료를 포함시켜 달라는 한의계 주장에 대해 신경과 전문의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치매로 인한 환자·가족의 고통을 덜기 위해 '치매 국가책임제'를 공약했고, 정부는 지난 9월 18일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치매연구개발원회를 발족해 국가치매연구개발 10개년 장기 투자계획 수립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위원회는 치매예방·진단·치료·돌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세부연구개발 계획을 마련해 추진하게 된다.
정부 발표가 나오자 한의계는 한방의 치매 치료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며 한의사도 치매국가책임제에 참여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의계는 지난 2016년 부산광역시한의사회가 수행한 한방치매 예방사업 결과 한방이 치매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신경과 전문의들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대한신경과의사회는 19일 "부산시한의사회 연구는 대상자 선정, 치료 효과의 판정, 안전성의 평가 등에서 객관성이 심각하게 결여됐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부산시한의사회는 선별인지기능검사 중 하나인 한국형 몬트리올 인지평가(Montreal Cognitive Assessment, MoCA-K)를 이용해 경도인지장애를 판정했는데, 이 평가만으로는 인지기능장애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일상생활능력 평가를 통해 치매와 경도인지장애를 구별하는 과정이 누락돼 대상자 중에 경도인지장애가 아닌 치매환자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부산시한의사회는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진행하는 비율이 일반적으로 1년에 10~15%인 반면, 6개월 동안 한방치매관리사업을 받은 환자들은 이행률이 2%에 불과해 치료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경과의사회는 "사업 종료 시 치매 여부에 대한 평가 과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치매이행률은 계산이 불가능하며 치매예방효과 자체를 판단할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안전성 평가 측면에서도 부산시한의사회는 어떠한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으나, 혈액검사를 통한 독성평가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2016년 서울시가 추진한 어르신 한의약 건강증진사업에서는 사업 후 일부 대상자에서 간기능 및 신장기능 수치가 증가한 사례가 있었다.
신경과의사회는 "치매치료에 대한 연구개발은 반드시 객관적·과학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하고 한의학을 이용한 치매의 예방·치료도 안전성·유효성이 먼저 검증돼야 한다"며 "치매국가책임제에 편승해 검증되지 않은 한방치매치료에 국가재정이 투입되어 낭비되고 국민건강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의계가 한방 치료의 치매 예방 효과를 부풀리기 위해 논문을 변조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2013년도 대한한의학회지에 발표된 한 논문은 의정부시 보건소가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65세 이상 노인 40명을 대상으로 6주간 한약을 투여한 결과 인지기능 및 우울척도가 유의하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19일 바른의료연구소에 따르면 해당 논문에는 '조등산''당귀작약산' 등 한약만으로 치료했다고 설명돼 있으나, 논문 연구자의 언론 인터뷰와 의정부시 보건소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한약 외에 영양식·영양제·웃음치료·원예작업치료 · 인지재활프로그램 등이 함께 시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바른의료연구소는 "함께 시행된 다른 치료들이 버젓이 있음에도 논문에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한약만 투여한 것처럼 기술하고, 한약이 인지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출판윤리를 위반(변조)한 연구부정행위"라고 강조했다.
또 연구대상자가 2012년도에 경도인지장애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사업을 본격화한 2013년 3월에도 경도인지장애 상태였는지에 대한 평가가 없었고, 연구에 사용한 평가도구(MMSE-DS)로는 치매와 경도인지장애를 감별할 수 없으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인간대상 연구임에도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를 거치지 않은 점 등은 연구결과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