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백혈병입니다."
순간 시끄럽던 진료실이 고요해지더니 허허벌판에 혼자 버려진 듯 외롭고 무서웠다고 한다.
간호사로 5년여 근무했기에 만성 백혈병 치료 수준이 예전과 달리 크게 향상됐다는 의학지식이 있었지만 그 순간엔 별다른 위안이 되지 않았단다.
9살 아들을 둔 30대 초반 A씨는 3년 전 만성 백혈병을 진단받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진단 직후 글리벡을 처방받았지만 글리벡에 적응하기까지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두통, 설사와 같은 부작용은 물론이고 한 밤 고열로 응급실을 들락날락하고서야 용량을 조절해 겨우 '적응'이라는 것을 했다.
그 과정에서 '글리벡 덕에 요즘 백혈병은 중병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일처럼 내뱉었던 예전 간호사 시절의 자신이 떠올라 자책했다고 한다. 때때로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다른 약으로 교체했다 듣지않으면 어떡하지'하는 공포로 꼬박 밤을 넘기기도 한단다.
'제네릭이 있지 않느냐? 왜, 글리벡 급여를 중지하지 않았느냐?'고 닥달하는 목소리를 국감장에서 최근 들을 때면 가슴이 답답하다.
만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글리벡에 어렵게 적응한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보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된 노바티스에 대한 행정처분 조치로 글리벡 급여정지 대신 과징금을 지난 4월 부과했다. 당시 암진료 전문가의 견해와 자칫 약교체로 발생할 수 있는 이상반응에 대한 환자의 우려를 고려해 '급여중지'대신 과징금으로 대체했다.
만성 백혈병 환자는 자신이 적응한 오리지널 글리벡을 계속 복용할 권리가 있다.
환자는 그 권리를 잃어야할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뿐더라, 생명권은 생물학적동등성시험에 대한 논란 따위보다 먼저 존중받아야 마땅한 천부인권이다. 약 교체에 따른 리스크가 아무리 작다해도 누구도 환자에게 그 리스크를 무릅쓰라고 강제할 권리가 없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체조제 혹은 성분명처방의 적절성을 부인한 것이라거나, 주로 제네릭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의 앞길에 재 뿌리는 일이라는 프레임은 제발 좀 접어두시라.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작은 이상반응으로 다시 힘든 적응 과정을 거쳐야 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을 백혈병 환자의 건강권과 생명권에 관한 문제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무슨 자격으로 애써 적응한 글리벡을 복용하지 말라하나?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나눠 지지도 못할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