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르탄 소동

발사르탄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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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7.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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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경기도 의정부 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경기도 의정부 김연종내과의원)
김연종(경기도 의정부 김연종내과의원)

7월의 첫 주말 저녁 나는 동학사 계곡의 어느 펜션에 머물고 있었다. 늦은 밤까지 계곡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떨쳐내고 이튿날 갑사로 넘어갈 예정 이었다. 늦은 아침을 위해 식사를 기다리는 중 일행 한 분이 내게 물었다. 혹시 고혈압 약 중에서 발암물질이 섞여 있는 약이 있냐고. 실은 자기가 혈압약을 복용중인데 그 약에 발암물질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딸내미가 자꾸 보챈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나는 한참을 얼버무렸다. 그는 의사가 그것도 모르는 게 이상하다는 투로  바라보았다. 

번잡한 동학사와 달리 갑사는 고즈넉했다. 아름드리나무와 우거진 풀과 조용히 흐르는 계곡이 마음에 들었다. 대웅전에서 흘러나오는 예불은 분명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누린 재충전의 시간이지만 다가오는 한 주를 위해 조금 일찍 자리를 파했다. 조짐이 현실화 된 건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첫 번째 환자는 50대 후반의 중년 여자였다. 그녀는 발사르탄이 포함된 혈압약을 손에 들고 있었다.

"자식들한테 전화 받고 어젯밤 한 숨도 못 잤어요. 아직 혈압약이 열흘 가량 남아 있는데  확인 차 미리 들렸어요."

"제가 이 약을 먹은 지 얼마나 됐죠? 그럼 제 몸에 암이 발생하는 건가요. 그게 언제쯤 이죠?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화면을 앞당겼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했다. 다행히 그 약은 식약청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약은 그냥 드셔도 괜찮을 거라고 조심스레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못미더워 하면서 열흘 간 복용할 다른 약을 원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라서 다른 성분의 혈압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환자분이 약국에서 재차 확인하고 새로운 혈압약은 조제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 환자는 80대 중반의 노인이었다. 그는 한결 가벼운 말투였다. 혈압 조절이 되지 않아 얼마 전 발사르탄이 포함된 약으로 처방한 경우이다. 그는 스마트폰을 내게 보여 주며 이것부터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건네준 화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OO 관계자는 “일부 제품에서 코팅 이상이 발견, 회사가 자진회수하게 됐다”면서 “안전이나 효능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자진회수라니.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약품까지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분명 내가 확인한 바로는 문제 될게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여 자세히 보니 그것은 2014년 뉴스였다. 벌써 4년 전 일일 뿐더러 이번 사건과는 본질이 다른 문제였다. 나는 그 사실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안 그래도 약 바꾸고 나서 기분이  이상했노라고 전에 먹던 약으로 처방해 달라고 했다.

그 사이 여러 차례 문의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의사협회 리스트와 식약처 홈페이지에 있는 약들을 모두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해당 품목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간호조무사에게 리스트를 건네주었다.

세 번째 환자는 한술 더 떴다. 발사르탄 성분과는 전혀 무관한 70대 남자 환자였다. 그는 혈압을 재기도 전에 대뜸 물었다.

발사르탄이 발암물질이란 뜻이지요? 2급 발암물질이라고 그러던데?

혈압약에 발암 성분이 들어있다길래 주말에는 먹지 않았는데 계속 복용해도 괜찮은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발사르탄은 혈압약의 한 종류인데요. 출시된 지 오래 되었고 효능도 검증된 혈압약이지요. 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원료의약품 중 중국산 원료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돼 문제인데 아직 암환자가 발생한 것은 아니고요. 더 자세한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그 성분이 들어간 약을 회수 조치한 것이랍니다.... 나는 벌써 몇 번째 반복해서 설명 하고 있는 중이다.

N-니트로소메틸아민(NDMA)는 2급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2A는 인체 발암성에 대한 자료는 제한적이지만, 실험동물 자료가 충분한 물질이다. 2B는 인체 발암성에 대한 자료가 제한적이고, 실험동물 자료도 충분하지 않은 물질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국내에서 쓰인 발사르탄 함유 고혈압 약에서 문제의 발암의심물질이 얼마나 나왔는지 또는 실제로 이 약을 복용한 환자에게 해를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면서도 "고혈압 약을 먹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단 판매 및 수입·제조 중단 조치부터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텔레비전을 켰다. 여러 채널에서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복용 중인 혈압약을 확인하여 발암 성분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의사와 상의하여 혈압약을 바꾸라는 메시지였다. 뉴스를 다 보고 어제 보지 못한 뉴스까지 다시 봤다. 그리고 인터넷 기사까지 꼼꼼히 살폈다. 뉴스에 중독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왜 의료에 관한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의사들은 죄인처럼 행동해야 하는지?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할 사안마저 의사들에게 책임을 지우려 하는지? 모든 뉴스를 뒤져 봐도 그에 대한 해답은 찾을 수 없다.   

2018년 7월 9일 월요일. 오늘은 무척 길고도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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