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이안류

해운대 이안류

  • 윤세호 기자 seho3@doctorsnews.co.kr
  • 승인 2018.08.3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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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이안류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바다로 떠밀린 적이 있다 내동댕이처진 나의 육신은 거꾸로 흐르는 조류 속의 나뭇잎이었다 의식은 파랗고 하얀 색깔로 흐르다가 가물가물한 빛으로 사라지고 아득한 하늘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물결 소리에 눈을 떴을 때 해안으로 밀려온 나를 볼 수 있었다
 알을 낳기 위해 해변을 기어오르는 거북이처럼 모래사장에 올랐을 때 비로소 보이던 하늘과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음성, 세상의 바람이 나를 일으켰다.
 
누군가가 해운대 이안류(離岸流)를 '환생의 파도'라고 말한다

저쪽을 한순간에 다녀왔다
저쪽의 기억이 없다
이쪽으로 내동댕이친 파도가 나의 기억을 휩쓸고 간 것이겠지
저쪽으로 떠밀릴 때도 이쪽의 기억을 잃은 것처럼
저쪽에 이르렀을 때도 이쪽의 기억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 저쪽을 다녀왔다
 
나의 환생
그렇다면 내가 오늘 그대에게 보내는 웃음이 
전생의 웃음은 아닌지,
 
그대와 나누는
민들레차 향기는
미처 씻지 못한 저쪽의 바람인지도 모른다
 
해운대 이안류 앞에서 문득 나를 잃어버렸다
멀리서 한 사람이 달려오며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른다
나도 손을 흔들자
그는 당신은 누군가, 당신은 아니야
말하며 파도처럼 사람들 속으로 밀려가 버린다
 
나를 증언해줄 단서는 끝내 보이지 않는다
 
해운대 이안류에 휩쓸려 저쪽으로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온 조개들
그 위로 모래가 쌓이자 어느새 조개는 모래언덕이 된다
모래는 조개를 기억하지 않는다
 
나를 덮쳐오는 수많은 세상의 파도 앞에서
나는 나를 잃어가며 이안류를 기다리고 있다

 

박언휘
박언휘

 

 

 

 

 

 

 

 

 

대구 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문학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12)/<문학청춘> 등단(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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