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원격의료 '반대' 등 2000년 후 4차례 휴진·파업 '집단행동'
진료권 침탈·직업전문성 침해 위기...여론 형성해 전 직역 참여 모색
11월 11일 '대한민국 의료 바로 세우기 제3차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총파업 전권을 위임받은 최대집호가 진료권 침탈과 직업전문성 침해에 항의하며, 본격적인 파업 준비에 들어갔다.
전국의사 총궐기대회가 열리기 3시간여 전인 오전 11시 의협 상임이사회와 대의원회·대한의학회·대한개원의협의회·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료계 대표자들은 총파업을 포함한 투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오진으로 인한 의사 구속 사태 이후 '24시간' 총파업 계획을 의료계 대표자들에게 제안했다.
의료계 대표자들은 내부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투쟁 방안과 일정을 도출키로 했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제1차 전국의사 총파업에 계획을 정리, 직접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준법진료 선언' 계획도 내비쳤다.
최 회장은 "관련 법을 검토해 합법과 불법 행위를 명시하고, 준법진료(Work-to-Rule)를 선언할 계획"이라며 "준법진료만 제대로 시행하면 우리나라 의사들의 진료 행태와 환자들의 의료이용 행태도 근본적으로 바꾸고, 의료제도의 대대적인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회장은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의사들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과도한 진료를 하도록 운용하고 있다. 합법의 테두리 내에서 진료함으로써 진료 업무량을 줄여야 한다"면서 "준법진료를 통해 누구의 희생으로 우수한 접근성, 상대적으로 낮은 진료비, 높은 의학과 의술 수준 등을 유지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효적인 의료분쟁특례법 제정과 의사들의 진료선택권(진료거부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요 선진국의 사례를 검토하고,각계 전문가가 모여 심도 있는 토론회를 열어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의료분쟁에서 조정제도·민사 및 형사 소송 등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의료감정을 합리적·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의협 의료감정원'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 기존의 제도·법령 등을 검토하고, 각계 전문가 토론회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키로 했다.
특히 의사면허 관리에 대해서는 선진국의 의사면허 관리시스템을 살피고, 정부·국회 등과 협의를 통해 근본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13만 대한민국 의사 회원 여러분이 집행부를 믿고, 집행부와 함께 이 총체적 난국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한 뒤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와 지지"라면서 "정말 필요할 때 13만 의사 회원의 '행동'을 직접 요청하겠다"고 언급했다.
박종혁 의협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토론회를 개최해 여론을 형성해 나가면서 정교한 파업 준비과정을 거칠 것"며 "11월 중에 윤곽이 잡히면 내부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파업 시기와 방법 등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부연설명했다.
박 대변인은 "그동안 수차례 의사들의 집단 휴진 등 파업에서는 잘못된 의료제도의 개선과 수가 현실화 등이 큰 요구사항이었다면, 이번 파업은 선의의 목적으로 진료행위를 한 의사를 구속하는 것이 부당하게 진료권을 침탈하고, 직업전문성을 침해하는 것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밝혔다.
의협은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구체적인 파업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계획이다.
이번에 의협이 파업하게 되면 2000년 이후 5번째가 된다. 의협은 2000년 이후 ▲의약분업 반대와 의권쟁취 투쟁 단체 행동 및 파업 ▲의료법 개정 반대 단체행동 및 파업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반대 단체행동 및 파업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반대 단체행동 및 파업을 결행했다.
먼저 가장 규모가 큰 단체행동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한 의약분업 반대 단체행동 및 파업 투쟁.
정부는 의약분업제도를 강행하면서 진료 및 처방은 의사가, 의약품 조제는 약사가 분담케 함으로써 의약품 오·남용 예방과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의료계는 국민 의료비와 보험재정 증가,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 불편 등을 이유로 대규모의 단체행동에 나섰다.
의약분업을 실시하기에 앞서 약사들의 임의조제 근절, 전문의약품 비율 확대, 대체조제 금지, 약화사고 책임 명확화, 건강보험 수가 현실화 등을 요구했다.
1999~2002년까지 의사들의 단체행동(전국 집회)은 총 9차례 진행됐다. 또 2000년 4월 4∼6일까지 3일간 1차 파업(전국 의료기관/개원의 위주)을 시작으로 5차례 파업을 진행했다. 2000년 10월 6∼10일까지 진행된 5차 범 의료계 총파업(개원의·의대 교수·전임의·전공의·의대행 등 전 직역 참여)이 가장 규모가 컸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대 투쟁에도 정부는 2000년 7월 1일 의약분업 실시를 결정하고, 한 달간 계도기간을 거쳐 2000년 8월 1일 의약분업을 전면 강행했다.
두 번째 단체행동은 2007년으로 의료법 개정안이 의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의료법 개정안 제4조(의료행위)에서 '투약'을 제외하고, 제40조(간호사업무)에 '간호진단'을 추가하면서 의권 침해는 물론 국민건강에도 막대한 위험을 끼칠 수 있다는 반대 여론이 일었다.
문신·피부미용·마사지 등의 유사의료행위를 합법화하는 의료법 제122조(유사의료행위 등)의 경우에도 국민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의료법 제4조와 정면 배치되는 모순을 드러낸다고 반박했다.
2007년 2월 11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집회에는 의협을 비롯해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조무사 등 약 3만명이 참여했다.
2007년 3월 21일에는 동네의원 중심의 집단 휴진 및 집회(정부 과천청사 4만명 참가)가 다시 한번 열렸다.
의사들의 단체행동에도 보건복지부는 2007년 11월 20일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의안으로 부치면서 의료계의 주장을 외면했다. 이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되다가 2007년 제17대 국회 회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세 번째 단체행동은 2007년 8월 31일. 당시 정부는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발표, 의료계의 공분을 샀다.
전국 시도의사회는 자체적으로 휴진 투쟁을 벌이고, 비상총회를 열어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을 저지했다.
네 번째 단체행동은 20014년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허용이 주된 이슈였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산업화의 하나로 2013년 10월 29일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의협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증 결과가 없고, 환자의 건강에 대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정부는 2013년 12월 13일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을 포함한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세워 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의료계는 영리 자법인 허용은 일차 의료 몰락, 의료전달체계 왜곡, 의료접근성 악화로 이어지는 심각한 국가 의료체계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정부의 원격의료 허용 및 영리법인 허용 추진 계획이 발표되자, 의료계는 반대 입장 발표에 그치지 않고, 2014년 3월 10일 집단휴진으로 맞섰다.
의사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하다가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이후 20대 국회에서 원격의료 허용 의료법 개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재발의 됐으나, 2017년 5월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다.
의사들의 단체행동(집단 휴진 및 파업)에 따른 피해도 컸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투쟁의 전면에 나선 의협은 공정거래법, 의료법, 형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아야 했으며, 2014년 원격진료 허용에 대한 의료법 개정안 반대 투쟁을 위한 집단 휴진 역시 공정거래법을 적용, 시정명령 및 5억원의 과징금 납부 명령(나중에 취소)과 의협 임원에 대한 징역·벌금형이 잇따랐다.
최대집 의협 집행부는 지난 4차례 결행한 의료계 단체행동 및 파업을 통해 어떤 형태의 파업 투쟁을 전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