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철 소장 "지원은 없이 적립금 마구 사용...저출산·고령화 종합 접근 필요"
손영래 과장 "곳간에 쌀이 가득…일탈하는 의협 빼고 의료전달체계 추진"
올해 3조원의 건강보험재정 적자가 예상되고, 2027년에는 건강보험 누적 적립금 20조 원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이대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중간평가가 나왔다.
2017년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발표 2년이 되는 시점에서 정부는 추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보험료 인상·국고 지원·정부 미납 분담금 등 재정 확보 방안은 보이지 않고 짧은 기간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보장성 확대에 주력하면서 재정 적자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현상 등 악재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은철 연세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연세대 보건정책 및 관리연구소장)는 4일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열린 병원경영 국제학술대회(KHC 2019)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중간평가' 주제 포럼에서 브레이크 없이 추진되고 있는 보장성 강화 대책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박 교수는 "수익성이 좋은 비급여를 급여화하는데 있어 의료기관의 유형에 따라 수지 보존의 한계를 보이고 있고,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수지를 보전해 주더라도 장기적으로 급여화로 인한 수입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밝힌 박 교수는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들의 환자 감소에 대한 대책이 명확하지 않고, 급여화로 인한 보험재정 압박은 가입자들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교수는 보장성 강화 대책이 지나치게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무게가 쏠려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취약계층 본인부담 경감, 재난적 의료비 등에 31조 원을 지원해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계획인데, 이 가운데 비급여의 급여화에 들어가는 재정 비율이 60%로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어느 정권이든 왜곡된 의료 수익 구조를 개선하려 노력했지만, 비급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그 이유는 비급여의 증가가 비급여의 급여화 전환보다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급여에 대한 가격통제는 수가 계약을 통해 가능하지만, 수량을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고, 비급여는 아예 가격통제와 수량 통제가 거의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박 교수는 "이에 대한 고려없이 무조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만 고집해서는 안 되고, 국고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 누적 적립금 20조 원을 마구 사용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보장성 강화 대책의 실효성 제고 방안으로 정부가 제시한 의료전달체계 개편·일차의료 강화·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적정수가 보상·의료의 질 개선 등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은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라는 표현 때문에 획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대 정권의 보장성 강화의 연속에 불과하고, 건강보험의 체계를 개혁하는 방안은 부재하다"고 쓴소리를 냈다.
보장성 강화 대책 추진 과정에서 의료계가 반드시, 강력히 요구해야 할 과제로 ▲소규모 의료기관을 위한 의료전달체계 개편 ▲기본진료비 30% 인상 ▲대규모 의료기관을 위한 수입 감소분 만큼의 보존 ▲급여 및 심사기준 개선 ▲정부 R&D 지원 확대 등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출산·고령화·저성장을 비롯해 비감염성 질환 시대, 한반도의 통일, 고령층의 의료이용 증가 등에 대한 고려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보장성 강화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보장성 강화 대책의 순서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비급여의 급여화-취약계층 본인부담 경감-재난적 의료비 지원'의 순서를 '재난적 의료비 지원-취약계층 본인부담 경감-비급여의 급여화' 순으로 조정해야 보험의 기본 원칙에 맞춰 안정적으로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보장성 강화 대책 시행 후 7년이내에 건보 흑자는 막을 내리고, 적립금 소진도 예상된다"고 지적한 박 교순느 "의료급여 보장 등에 2조 원만 써도 효과적인데 비급여의 급여화를 위해 31조 원을 단기간에 쓰겠다는 것이 비용 효과적인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보장성 강화 대책을 근시안적 접근에서 벗어나 종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패널 토의에서도 정부의 보장성 강화 대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됐다.
서진수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지금까지 보장성 강화 대책은 순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비급여의 급여화 논의를 보면 정부와 의료계가 충돌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체계 내에서도 적절하게 보상이 되지 않는 필수의료에 대한 부분을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해종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는 "보장성이 강화되면 국민 입장에서 매우 좋은 일이지만 졸속으로 강화되면 부정적인 게 더 많다"면서 "이런 부분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정책을 추진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료계 및 전문가들의 보장성 강화 대책 우려에 손영래 보건복지부 예비급여과장은 "불필요하게 많은 비급여를 급여화 해야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다"며 예정대로 보장성 강화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보험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보장성 강화 대책 우선순위가 바뀌고, 필요한 곳에 비용이 더 들어가다 보니 2000억 원 정도의 적자가 났다. 아직 누적 적립금 20조 원이 남아 있어 곳간의 쌀이 넘친다. 정부가 재정이 적자가 나게 할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고 자신했다.
손영래 과장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는 대한의사협회가 계속 일탈하더라도 정부 주도로 종합계획을 만들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