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영상의학 진단, 누구를 위한 발상인가?

한의사 영상의학 진단, 누구를 위한 발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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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6.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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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영상의학 진단 매우 숙련된 전문의의 몫 인정해야

이성낙가천대학교 명예총장前 한국의약평론가회장
이성낙
가천대학교 명예총장
前 한국의약평론가회장

오래전부터 국내 의료계는 한의사들과 크고 작은 분쟁으로 조용한 날이 없습니다. 이젠 갈등이 불거져도 짜증스럽거나 덤덤할 뿐입니다.

가끔 의료계의 한 사람으로 자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 '불편함의 중심'에는 이를 관리 또는 통제하기는커녕 이른바 '중립성'을 지키기에 급급한 정부 기관이 있습니다. 중립성을 명분으로 손을 놓고 있는 것입니다. 의료계 분쟁은 모두 정부 기관의 흔들림 없는 지침이 부재한 데서 비롯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의사들이 환자 진료에 'X-ray' 진단기기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한의사가 지켜야할 선을 결국 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가 의학계를 두둔하고 한의사계를 경계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필자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인 1960년대에는 유전학 이론을 '멘델의 법칙(Mendelian law)' 수준에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멘델의 법칙'은 마치 '무인자동차' 시대의 '우마차(牛馬車)' 같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만큼 현대의학은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르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새로운 학문을 접하듯 수십 년간 다양한 관련 서적과 크고 작은 학회에서 끊임없이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즉 입체적 접근으로 공부하고 또 공부했습니다. 그런데도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X-ray 영상 필름을 보고 '판독'한다는 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절벽'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상 필름을 보고 진단하는 판독은 책을 통해 간단히 익힐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다년간 수행한 '눈(眼) 훈련'의 결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자에게조차 다른 사람을 위해 영상 필름을 판독한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각종 의과학 관련 서적만 해도 그 변천의 발자취를 따라잡기 힘듭니다. 1960년대에 발행된 각종 주요 의학도서가 10∼15번째 증보(增補)판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학문적 지식을 꾸준히 보완·보충해 다시 새 책으로 나온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격동적인 발전을 해온 분야 중에는 다름 아닌 '방사선 진단기기'가 있습니다.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방사선 관련 영상 자료(X-ray 필름)를 놓고 어떤 의학적 의견도 언급하는 것을 철저하게 자제해왔는데, 이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결코 한 번도 없습니다.

의과 대학생으로서, 인턴으로서, 레지던트로서, 의사 초년생로서도 X-선 필름을 판독해 정확한 진단을 유추하는 것은 고도의 '눈(眼) 훈련'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X-ray 영상 자료를 보고 판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전문 지식인의 식견이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얼마 전 영상의학과(전 방사선과) 원로교수에게서 들은 말이 퍽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X-ray 영상은 흑백 필름인데, 그 흑백사진 속에서 병리 조직체의 '그림자'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몫입니다.

그런데 젊은 초년생 전문의가 필름에서 12∼14개의 다른 흑백을 구별한다면, 원로 교수는 무려 20여 개의 다른 흑백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진단 영상의학 자료에 대한 정확한 판독은 숙련도에 비례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내과계 환자의 경우, 영상진단을 의뢰한 의료진과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수시로 영상자료를 놓고 의견을 나눌 수 있고, 나눕니다.

이는 의료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료 시스템의 장점입니다. 특히 외과 환자의 경우, 수술 담당자가 영상의학과 전문가와 의견을 나눈 후 수술에 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영상의학 진단이 최종 판정이라기보다는 각기 다른 전문의들과 복합적인 의견을 통한 입체적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얘기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한의사가 X-ray 진단기기를 환자 진료에 도입하겠다는 것은 의료 시스템의 체계를 제대로 모르고 낸 발상이 아닌가 싶어 염려스럽습니다.

이는 한의사들의 자존심이나 권익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 소비자인 환자의 권리, 즉 최상의 진료를 받을 환자의 권리를 무엇보다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판독 오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하면 의료 윤리적 측면에서도 걱정이 앞섭니다.  

영상의학 진단은 매우 숙련된 전문의의 몫이라는 것을 쾌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근래 이슈화된 한의사의 영상의학 진단이 과연 누구를 위한 발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분히 생각하며 우리 사회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이 원고는 바른사회운동연합에서 발행하는 <바른소리 쓴소리> 5월 29일호에 실린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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