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형록 전공의 '과로사' 아니면 대체 누가…

고 신형록 전공의 '과로사' 아니면 대체 누가…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6.1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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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사연, 과로 요소 연구...'몇 시간, 언제, 얼마나 쉴 틈 없이 일했나'
심뇌혈관·정신 질환부터 암 발생위험 높여...'업무상 과로' 인정해야

■ 주 평균 52시간 : 현행 법정 근로시간.

■ 주 평균 60시간 :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과로로 인한 업무상 질병의 당연인정기준

■ 주 80시간 :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정한  전공의 상한 근로시간

■ 故 신형록 전공의 근무시간 : 주 110시간(대한전공의협의회 분석)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근 故 신형록 전공의 사망원인을 '만성과로'로 보고, 관련 자료를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제출했다. 유가족이 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의협의 의견서를 비롯한 증빙 자료를 모은 것.

대전협은 앞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에서 정한 '주 80시간'을 지켰다고 과로가 아니라 말할 순 없다"면서 "전공의법 준수가 곧 과로 예방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공의법에서는 근무시간이 주 80시간만 넘지 않으면 법을 준수한 것으로 본다. 만약 79시간을 근무했다면, 위법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정 근로 시간은 52시간이다. 80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의 28시간이 더 많다.

대전협은 故 신형록 전공의 사망원인을 '과로'로 보지 않는다면, 어떤 근로자를 '과로사'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연 부연구위원(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실)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한 [보건·복지 Issue&Focus] 최근호에서 '과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질병 부담' 연구를 통해 과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정의했다. 과로의 요소는 '몇 시간을 일하는가', '언제 일하는가', '얼마나 쉴 틈 없이 일하는가' 3가지다.

ⓒ의협신문 김선경
ⓒ의협신문 김선경

몇 시간을 일하는가?

국제노동기구(ILO)와 유럽연합(EU)의 노동시간지침에서는 주 평균 48시간 이상 근무를 장시간 노동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노동시간 단축 법안 통과로 주당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됐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서는 과로로 인한 업무상 질병의 당연인정기준으로 주 평균 60시간 기준을 활용하고 있다. 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한 경우, 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본다.

대전협은 지난 2월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故 신형록 전공의의 실제 근무시간과 병원 측이 주장한 근무시간을 비교·발표했다. 대전협은 "신 전공의는 일주일 168시간 중 110시간을 일했다"면서 "하루 4시간에 이르는 휴식 시간은 서류에만 존재했다"고 밝혔다.

2018년 대한수련병원협의회는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전공의 수련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수련 중인 모든 전공의(인턴 및 레지던트)를 대상으로 2018년 5월 14∼6월 1일까지 진행했다. 레지던트는 1만 4369명 중 1075명이, 인턴은 2915명 중 133명이 참여했다.

설문조사 결과, 4주간 평균 주당 최대 수련 시간(80시간 초과 금지)을 지키지 못한다는 전공의가 21.9%였고, 휴일(1주일에 평균 1회 유급휴일 부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전공의가 27.1%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언제 일하는가? 얼마나 쉴 틈 없이 일하는가?

대전협이 지난 4월 1일 공개한 '전공의 업무 강도 및 휴게시간 보장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전공의들이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조사에는 전국 90여 개 수련병원에서 660여 명의 전공의가 참여했다.

응답자의 70.2%가 '수련병원 측으로부터 휴게시간에 대한 안내조차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89.8%는 '수련 중 계약서 내용대로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거나 휴게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전공의 84.1%는 '휴게시간이나 식사 시간이 있더라도 대개 또는 항상 방해받는다'고 응답했다.

주관식 설문조사에서는 "자기 전까지 하루 30분 정도 밥 먹는 시간이 있다", "2주간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 "5일에 2번 정도 식사가 가능하다"는 응답도 나왔다. 

한편, 故 신 전공의는 설 연휴를 앞둔 2월 1일 36시간 연속 근무 중 당직실에서 사망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른 과로 기준 시간은 물론 전공의법이 규정한 수련 시간보다 훨씬 웃도는 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지=pixabay) ⓒ의협신문
(이미지=pixabay) ⓒ의협신문

심뇌혈관·정신질환, 암…'과로'에 우리 몸에 끼치는 영향

정연 부연구위원은 과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짚었다. 1990년 이후, 국내외에서 출판된 과로·건강 관련 논문들에서는 장시간 노동과 교대근무로 인한 건강 결과로 ▲심뇌혈관질환 ▲정신질환 ▲수면장애 ▲대사질환 ▲암 ▲건강행태 변화 ▲임신·출산 관련 문제 ▲근골격계 질환 등이 나타난다고 보고한다.

특히 장시간 노동이나 교대근무는 심뇌혈관질환 발생과 유의한 관련성을 갖는다는 연구 결과가 일관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주 평균 35∼40시간 근로와 비교해 주 55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은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질환 발생 위험을 13% 높이고, 뇌졸중 발생 위험은 33%가 높았다. 뇌졸중 발생 위험은 근로시간 증가에 비례해 커졌다. 교대근무는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률을 26%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는 정신질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주 평균 35∼40시간 근로자에 비해 주 55시간 이상 장시간 근로자들에게서 우울과 불안 발생 위험이 1.3∼1.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야간 교대근무는 우울 발생 위험을 43%나 높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암에도 영향을 준다는 발표도 있다. 국제암연구소는 2007년 교대근무가 "인간에게 암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기존 역학연구들은 특히 유방암이 교대근무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로는 심혈관질환부터 암까지,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이미 다수의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故 신형록 가천대 길병원 전공의를 '업무상 질병'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의협은 "故 신형록 전공의는 일주일에 100시간을 상회하는 과중한 업무량과 휴일에도 정신적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업무 특성으로 업무 중 사망이라는 비통한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면서 "업무상 질병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다수 전공의들은 근로기준법상 규정된 근로시간이 아닌 휴식 시간 없이 24시가 대기에 주 7일 근무라는 극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 의협은 "의사들의 누적된 과로를 해소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의학적·법적 체계가 절실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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