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의사 전문의약품 처방·조제 무면허 의료행위 '유죄' 판결
의협 "의약품 사용한 한의사 의료법 위반 처벌…한의협 의도적 왜곡"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장이 13일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은 합법"이라며 "전문의약품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한의사협회의 합법 주장과는 달리 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전문의약품을 사용한 한의사들은 예외없이 면허 외 의료행위로 벌금형 처벌을 받았다.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은 합법"이라는 최혁용 한의협 회장의 주장을 믿고 실행에 옮겼다가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2017년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A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사용,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대한의사협회는 2017년 3월 28일 해당 한의사와 리도카인을 공급한 의약품 공급업체를 고발했다.
수원지검은 수사를 진행한 끝에 A한의사를 의료법 위반으로 약식 기소했으며, 수원지방법원은 무면허 의료행위와 의료법 위반 사실을 인정, 벌금 700만원의 약식명령 처벌을 내렸다.
하지만 수원지검은 8일 리도카인을 한의원에 공급한 의약품 공급업체에 대해 "의료법 위반 교사 내지 의료법 위반 방조의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의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최혁용 한의협 회장이 수원지검의 불기소 처분을 두고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이 합법이라고 결정한 것"으로 해석하고, "전문의약품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최혁용 한의협 회장은 한약으로 만든 전문의약품 사용·한방의료행위 시 보조적으로 전문의약품 사용·생명에 영향을 주는 부작용을 관리하기 위한 응급의약품 사용 등도 주장했다.
의협은 "수원지검은 의약품을 공급하는 업체가 한의원에 전문의약품을 공급하는 것이 의료법 위반에 해당하는가에 대한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인데, 이를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을 사용해도 된다고 허위로 해석하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해당 사건의 한의사는 이미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됐는데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후안무치한 행태에 경악스럽다"고 비판했다.
한의사협회장의 주장과는 달리 검찰은 물론 법원도 한의사가 한약이나 한약제제가 아닌 일반의약품이나 전문의약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단하고 있다.
한의사의 전문의약품 사용 여부를 놓고 벌어진 2건의 소송 결과를 보면 명확하다.
2017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사나 치과의사만 처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을 A한의사가 처방한 행위에 대해 자동차보험 진료수가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삭감을 결정했다.
A한의사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한의사가 일반의약품이나 전문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조제할 권한이 없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인 신바로 캡슐이나 아피톡신주사를 처방하거나 조제한 것은 한의사의 면허 범위 밖의 행위에 해당한다"며 "심평원의 삭감 결정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A한의사는 B보험회사가 심평원의 진료비 삭감 결정을 근거로 자동차보험 진료비를 반환하라고 요구하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반환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심평원은 A한의사에 대해 진료비 중 아피톡신주·신바로캡슐의 의약품 수가 및 아피톡신주를 이용한 약침술 수가를 환수하도록 하는 결정(진료비 정산 결정)을 내렸다.
A한의사는 "심평원의 결정은 아피톡신주와 신바로캡슐의 법적 성격 및 약사법에 대한 몰이해로 내려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심평원의 진료비 정산 결정은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라고 볼 만한 증거도 없고, 이와 반대의 점을 전제로 한 A한의사의 B보험회사에 대한 채무부존재 확인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A한의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서울중앙지법 2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했다.
A한의사는 항소심에서 "전문의약품으로 허가된 의약품일지라도 이 사건 약품과 같이 한약을 한방원리에 따라 배합해 제조한 한약제제에 해당하는 경우 이를 처방한 것이 한의사의 면허 범위를 초과했다거나 약사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므로 심사평가원의 삭감 결정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2심 재판부는 약사법에서 '의약품'과 '한약', '한약제제'를 명확히 구분한 것과 의약품을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으로 구분한 것을 특별히 언급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약사법 제23조 제1항에서 약사 및 한약사만이 각각의 면허 범위에서 의약품을 조제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점, 약사법 제23조 제3항에서 약사는 원칙적으로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처방전에 따라서만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조제하도록 한 점, 한약사는 원칙적으로 한의사의 처방전에 따라서만 한약을 조제하도록 규정한 점을 짚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약사법 규정을 종합해 볼 때, 한의사는 한약 및 한약제제를 조제하거나 한약을 처방할 수 있을 뿐 일반의약품 또는 전문의약품을 처방하거나 조제할 권한이 없음이 명백하다"면서 "전문의약품인 이 사건 약품을 처방·조제하는 것은 한의사인 원고의 면허 범위 밖의 행위에 해당하고, 이를 지적한 심평원의 삭감 결정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주사한 행위에 대해 면허 외 의료행위로 판단, 벌금형을 선고한 다른 판결도 있다.
C한의사는 환자 9명에서 봉주사요법을 시술하면서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봉침약물 원액과 식염수·견정 등과 함께 4㏄ 가량 혼합해 주사기에 넣고 환자들의 통증 주위에 주사하다 적발됐다.
2014년 대구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피고 한의사는 리도카인 사용이 죄가 되는 줄 알면서도 이를 장기간 사용하고, 면허 외 의료행위를 한 기간 및 대상 환자가 적지 않다"면서 "한의사가 전문의약품인 리도카인을 환자들에 주사한 행위는 한의사의 면허 외 행위"라고 판단,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C한의사는 항소했으나, 대구지방법원 2심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주사기에 넣어 주사하는 등 면허 외 의료행위를 한 기간이 길고 대상 환자도 많았던 점을 등을 들어 벌금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은 부당하지 않다"라고 판단했다.
의협은 "한의사의 불법적인 전문의약품 사용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면서 "한의사협회의 거짓말을 믿고 전문의약품을 사용하는 한의사들은 모두 범죄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