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식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국장(현 아이디언스 대표이사)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본부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1명이다.
식약처 산하 의약품안전관리원을 합쳐도 의사는 10여명에 불과하다.
약사 출신 약무직 공무원이 본부에만 100여명, 산하 기관까지 합쳐 2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식약처의 근무 의사 수는 기형적이다.
약의 분자구조(molecule)는 물론, 특정 약이 인체에 투입돼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발생하는지를 살피고 약과 관련된 정책을 설계하는 게 식약처의 주요 임무라면 '약리학' 전문가인 의사의 부족은 곧 전문성의 위기라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 진료 의사 출신인 44살의 스콧 고틀리브를 정권 첫 FDA 수장으로 임명했다.
전 오바마 정부의 FDA 수장도 의사 출신이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한국 식약처 혹은 식약청 역사상 의사가 수장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의사 불모지역에 의사 출신인 이원식 전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이 2016년 9월 임명되자 의료계의 관심이 컸다. 식약처 역사상 의사 출신이 비교적 고위직인 국장까지 올라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원식 전 국장은 임기를 1년 남긴 채 2018년 10월 중도 사임했다. 당시 사임 배경을 두고 적잖은 추측이 있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사임 이후 1년여가 지난 2일, 몇 번의 거절(?) 끝에 인터뷰가 성사됐다.
이 전 국장은 "한 두 가지 개선안으로 식약처의 전문성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도적·시스템적인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론 질타도 필요하지만, 지원과 격려를 통해 식약처가 전문성 향상을 위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도 덧붙였다.
식약처는 이 전 국장의 사임 이후 의약품안전국장 자리를 내부 임명 자리로 돌렸다.
<일문일답>
임기 3년을 못 채웠다.
2년 1개월을 일했다. 역대 2번째로 긴 의약품안전관리국장 임기였다.
이전 국장은 내부 임명이었다. 내부 인사의 특성상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면 후속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임기 3년을 보장받은 첫 개방직이었다. 역대 내부 임명과 단순 비교해서 임기가 길었다고 할 순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임기 3년에 추가로 2년을 더 할 수 있었다.
(나는 민간으로) 결국 돌아갈 사람이다. 발사르탄 사태도 어느 정도 마무리됐고 '이 정도 기여를 했으면 됐다' 싶었다. 식약처에서 오랫동안 공직을 밟고 있는 공무원들을 볼 때마다 더 있으면 누가 될 것도 같았다.
개방형 공모직으로 한계를 느꼈다는 말로 들린다.
의약품안전국장 같은 내부 자리를 개방형으로 돌리는 것보다 목표를 명확히 한 특별위원회나 TFT를 만들어 외부의 아이디어를 접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식약처 인사처장에게도 평소 이런 생각을 건의한 적이 있다.
의약품안전국장 임명 당시 식약처 본부에 의사는 이 대표가 유일했다. 다른 직역과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건 없었나?
의약품안전국 소속 여러 과장이 많이 도와줬다. 다만 식약처 국장 자리는 국회나 각 정부 부처와 나름의 네트워크를 쌓고 일을 풀어가야 할 필요가 컸다. 예전에 (공직 경험이 없다 보니) 그런 네트워크를 쌓을 기회가 없었다. 물론 (개방형 공모직으로) 당연히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한국 식약처 의약품안전관리원은 물론 식약처 본부에도 의사가 크게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실이다. 한 해 식약처가 검토해야 할 임상시험제안서만 600여개가 넘는다. 제안서를 꼼꼼히 체크해야 하는데 10여명에 불과한 의사 심사관으로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의사의 업무가 많다. 재임 당시 안전관리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를 19명까지 증원하려 했지만 채용하지는 못했다.
안전관리원은 물론이고 의약품 관련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식약처 본부에도 의사가 필요하다. 지금 식약처 본부에는 의사 출신 과장 1명만 근무하고 있다.
식약처에는 의사가 왜 없나? 같은 정부 부처인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 등에서는 적잖은 의사가 일하고 싶어 한다.
식약처의 의사 부족이 어느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콕 찍어 말할 수는 없다. 우선 약사와 비교해 의사 인력풀이 너무 적다. 의사의 관심을 키울 필요가 있다. 많은 의사가 근무하는 미국 FDA는 레지던트 코스를 FDA에서 밟을 수 있다고 들었다.
또 미국 FDA에서 레지던트 코스를 마치면 제약산업으로 좋은 대우를 받고 간다고 한다. 의사를 끌어올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
식약처는 국민의 먹거리와 치료약의 안전성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지금보다 더욱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추려면 사회는 그만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현재는 한 해 예산 5천억원 정도로 다양한 치료약과 식품의 안전성을 책임진다. 부족하다.
최근 식약처 의사 출신 심사관이 대폭적인 의사 충원을 통해 식약처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발사르탄이나 라니디틴 사태를 겪으며 식약처가 더 선진적인 기관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모두 자기가 가진 지식과 경험 안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 한다. 식약처의 전문성 강화는 개인의 그런 인식보다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봐야 한다. 의사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의사를 늘리는 것은 해야 할 여러 방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그런 목소리가 식약처의 전문성을 향상하는 방안이 무엇일지 우리 모두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재임 기간에 보람을 느낀 일은?
마약안전기획관 자리를 만들었고 차세대 의약품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마약관리시스템을 정비한 것도 보람 있었다. 물론 나 혼자 한 게 아니라 우리 의약품안전국이 함께 해낸 성과다.
글로벌 제약사 임원에서 공직을 거쳐 신약개발을 하는 벤처 대표가 됐다.
식약처 국장을 그만두고 '개업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뭔가 은퇴하기 전에 지금까지 경험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글로벌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할 '아이디언스' 대표이사가 됐다. 진정한 의미의 한국형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의사로서 처음 걷는 길을 걷기도 했다. 꼭 임상 의사가 아닌 다양한 길을 가는 의사가 더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