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수험표·고시장 내 부정행위 안내에도 어겨 응시 제한 처분 정당" 판단
대한의학회, 2020년 전문의 자격시험 앞두고 부정행위 금지 수험생에게 당부
대한의학회가 2020년 전문의 자격시험을 앞두고 시험 부정행위로 인한 불합격 처분을 받는 일이 없도록 예비 수험생들에게 당부하고 나섰다.
2019년 제62회 전문의 자격시험 당시 수험표에 문제를 옮겨 적은 의사가 '기출문제를 유출하는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3년간 응시 자격이 제한된 사례를 들면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고 요구한 것.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시험문제 유출 사례는 2016년 제59차, 2017년 제60차에 이어 2019년 제62차 전문의 자격시험(1차 시험) 때에도 있었다.
특히 제62차 전문의 자격시험 때 부정행위를 이유로 불합격 처분을 받은 의사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법원이 대한의학회의 불합격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사례를 들면서 시험에 대한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2019년 1월 7일 치러진 전문의 자격시험에서 불합격 처분을 받은 A의사는 수험표에 문제를 옮겨 적은 이유로 대한의학회로부터 3년간 전문의 자격시험을 제한받았다.
A의사는 전문의 자격시험 1차시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A의사(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의사는 2015년 3월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B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았다. 2019년 1월 7일 제62회 전문의 자격시험 중 필기시험인 1차시험에 응시했고, A4용지에 출력된 자신의 수험표 여백에 시험문제 일부를 적은 뒤 시험 시간 종료 후 답안지 및 이 사건 수험표를 시험감독관에게 제출했다.
시험 종료 후 수험표에 문제 일부를 작성한 것이 문제가 돼 시험본부에서 '저는 부정행위인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이 사건 수험표에 낙서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취지의 사유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대한의학회는 전문의 1차 시험 합격자를 공고하면서 A의사에게 불합격 처분을 하고, 'A의사의 행위를 부정행위로 결정하고, 당해 시험을 무료로 하며, 향후 2회에 걸쳐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라는 내용을 이메일로 안내했다.
A의사는 재판과정에서 "의료법 및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어디에도 부정 행위자에 대해 응시 기회를 박탈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어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시행규칙(보건복지부령)은 모법으로부터 위임받은 범위를 벗어나 규정된 것으로 위법하고, 이를 근거로 불합격 처분을 내린 것도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해당 문제의 정답을 고민하다가 문제를 적어보면서 출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수험표의 여백에 문제를 적었을 뿐이다. 이런 행위가 부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고, 문제를 유출하려는 부정한 의도 또한 없었다"고 항변했다.
이와 함께 "부정행위를 하려고 했다면 이 사건 수험표 대신 미리 준비해 간 예비 수험표 2장 중 1장을 감독관에게 제출했을 것인데, 이 사건 수험표를 그대로 감독관에게 제출해 문제를 유출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면서 "2019년을 포함해 3년 동안 전문의 자격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한 처분은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A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한의학회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전문의 자격시험(1차 시험) 수험자 유의사항을 공고하면서 '시험문제지 유출을 한 자에 대해 관련 규정에 따라 당해 연도 수험을 정지시키거나 합격을 무효로 하고, 향후 2회에 걸쳐 시험 응시 자격을 제한한다'고 알렸다고 봤다.
또 수험표를 출력하기 전에도 이런 유의사항이 기재돼 있고, 이것을 숙지한 다음에 '확인 버튼'을 눌러야 수험표를 출력할 수 있는 점, 그리고 출력된 수험표 하단에도 '수험표에 문제 및 답을 기재하는 경우 부정 행위자 처리 지침에 의거 부정행위자로 처리된다'는 내용의 유의사항이 기재돼 있는 점, 시험 당일 고시장 내 칠판에도 이런 유의사항을 부착해 강조한 점, 시험 교시별 OMR 답안지에 유의사항을 기재하고 유의사항 위반으로 발생하는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자필 서명을 한 점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시행규칙은 의료법(제77조 제4항)과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제18조 제3항)의 위임에 근거한 것이므로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하지 않았고 ▲A의사의 수험표에 문제 일부를 옮겨 적은 행위는 부정행위자 처리지침에서 정한 '문제의 일부 또는 전부를 유출하는 행위로서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수험표 출력에 제한이 없음으로 응시자가 여분의 수험표를 준비해 수험표에 문제 일부를 옮겨 적은 뒤 준비한 여분의 수험표로 바꿔치기를 한다면 문제가 유출될 수 있고, 이는 시험의 공정성을 크게 해치게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의사는 수험표에 문제의 정답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낙서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해당 문제의 해결에 있어 필요한 핵심적인 정보 모두를 수험표에 기재해 해당 문제의 전부를 유추할 수 있다"며 "정답을 고민했다고 하기보다는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한의학회가 수험표 출력 과정, OMR 답안지 및 고시장 내 칠판 등을 활용해 여러 차례 이 사건 행위가 부정행위에 해당하므로 하지 말 것을 강조했고, A의사도 충분히 인식했음에도 문제를 옮겨 적은 것으로 보아 부정행위의 고의가 있었다"고 추단했다.
재판부는 수험표를 통한 부정행위 안내를 비롯해 과거 시험 문제지 유출 사건에서 3회에 걸쳐 응시 자격을 제한한 조치를 한 것, 그리고 A의사가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서약까지 한 것을 고려하면, 대한의학회의 재량권의 일탈·남용에 대한 A의사의 주장도 이유가 없다고 봤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기출문제의 공개 및 유출이 금지된 시험에서 기출문제를 유출하는 행위는 이후 시험에서 응시자 사이의 시험에 대한 공정성을 심하게 훼손시키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A의사의 청구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