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85% EMR 차단제, 근무 개선에 "도움 안 돼"
대전협, 법적 자문 및 추가 실태 조사 공개 예고
"수련병원이 당직자 아이디 사용을 종용했어요", "처방했다가 걸려서, 사유서까지 작성했어요"
전공의들이 EMR 셧다운제로 인해, 의료법 위반으로 내몰리는 실태를 고발하고 나섰다. 대전협은 EMR 셧다운제 폐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각 수련병원, 보건복지부, 법적 자문을 통해 그 폐해를 지적하고, 동시에 전국 전공의 회원을 대상으로 EMR 셧다운제에 대한 제보를 기다린다는 계획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근 전공의 회원을 대상으로 'EMR 셧다운제' 실태 파악에 나섰다. 1076명의 전공의가 참여한 EMR 셧다운제 실태조사를 통해, 상급종합병원, 기타 수련병원 등 수십 곳에서 비정상적인 EMR 접속이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했다.
수련병원이 대놓고 타인 아이디 사용을 종용했다는 증언이 나오는가 하면, 근무시간 외 처방을 냈다가 걸려서 사유서를 작성해야 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이 직접 진찰하지 않고 진단서 등 증명서를 발행하거나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는 것은 위법이다.
대전협은 "일선 전공의가 정규시간에 끝내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법 위반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A 전공의(서울 소재 대형병원 근무)는 "업무량이 많아, 도저히 정규 근무시간 내에 해결할 수 없다. 환자를 직접 확인하고 처방하지 않으면 처방해 줄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 교수가 환자를 보지도 않는다"며 "어쩔 수 없이 다음 당직 전공의의 아이디를 빌려 처방을 내놓고 간다. 일을 다음 사람에게 던지고 갈 수는 없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B 전공의(지방소재병원 근무)는 "병원 수련담당 부서 및 의국에서 대놓고 당직자 아이디 사용을 종용하고 있다. 전공의법 때문에 근무시간 외 처방을 냈다가 걸리면 오히려 전공의가 사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실제 'EMR 접속차단이 업무량을 줄이거나 퇴근 시간 보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5%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지현 대전협 회장은 "EMR 접속을 차단한다 해도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의 양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EMR 접속을 차단함으로써 수련병원이 서류상으로 전공의법을 준수하고 있다는 근거를 생산해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경민 대전협 수련이사는 "전공의법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이 제한돼 인력이 충원돼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수련병원은 보여주기식으로 80시간을 넘지 않도록 EMR 기록만 막기 급급했다"면서 "법이 제정됐다 한들 어떻게 수련환경이 개선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EMR 셧다운제의 문제점은 지난 2019년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국립중앙의료원의 비정상적인 EMR 접속기록을 지적하며 전공의 근무시간 외 EMR 접속을 차단하는 정황을 밝혔다. 대전협 역시 동 사안에 대해 토론회 및 성명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여한솔 부회장은 "근무시간 외 EMR 접속을 차단함으로써 전공의의 실제 근무 기록을 왜곡하고 대리처방을 유도해 수련병원이 전공의가 의료법을 위반하도록 적극적으로 종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서류상으로는 마치 전공의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근무시간이 지나도 타인의 아이디를 통해 처방하며 일해야 하는 게 전공의들의 불편한 현실"이라며 "대전협은 이 문제를 절대 간과할 수 없으며 앞으로도 EMR 셧다운제 폐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전협은 EMR 셧다운제 실태조사의 추가적인 내용을 차례로 공개할 예정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