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어렵사리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지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고, 자동폐기되면 그동안 입법에 공들였던 정부·여당이나 경제계·산업계·금융계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다.
정부와 여당, 경제계·금융계·산업계가 입법다지기에 총공세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언론 역시 우호적인 시선 일색이다. 산업계는 연일 개정안 의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이어가고 있고, 정부·여당 관계자들도 잇달아 '데이터 3법' 국회 통과를 주문하고 있다.
'데이터 3법' 개정안의 핵심은 비식별 가명(假名)의 개인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 개인정보의 주체인 국민이나 좁게는 보건의료산업에 영향을 미칠 의료정보를 생산하는 의사들은 배제돼 있다.
'데이터 3법' 개정안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전가의 보도'일까.
정부는 인공지능·바이오·헬스케어 등 미래 신산업 발전을 위한 기틀 마련과 함께 개인정보 암호화나 가명 처리 등의 안전 조치 마련, 독립적인 감독 기구 운영 등을 요구하는 유럽연합(EU) 개인정보보호법(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을 통해 개인정보 관련 법 체계를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로 '데이터 3법'은 GDPR보다 훨씬 더 기업논리를 반영하고 있다. GDPR이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은 학술적 의미의 '과학적 연구(scientific research)'에 한정된다. EU는 학술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이용한 결과는 반드시 학술지에 공표토록 하고 있다. 공유지식 개념이다.
'데이터 3법'은 지나치게 포괄적인 '과학적 방법을 적용한 연구' 개념을 원용해 개별 기업이 R&D에 활용해 이윤을 독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개인정보 주체인 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기업의 수익 수단으로 삼고 결국 맞춤 마케팅에 이용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가명정보도 지금 당장은 개인 식별이 불가능하지만 향후 각종 데이터가 결합하고 알고리즘을 추가하면 얼마든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진다.
지난 7월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는 나이·성별·혼인여부·우편번호 등 15개 속성만 알아도 익명화된 데이터로 개인을 99.98% 알아 낼 수 있다는 연구논문이 실렸다. 시간과 의지의 문제이지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같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개인의 각종 건강·질병 정보를 비롯 부양·피부양 가족사항, 재산상태, 결혼 여부, 집·자동차 이력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재식별화가 가능하다.
이와 함께 개인의 '데이터 소유권'에 대한 논쟁도 시작되고 있다. 앱 하나를 다운받기 위해서 동의해야 하는 연락처·위치·이동 등 차곡차곡 쌓인 각종 정보들을 통해 기업은 수익 사업 개발에 몰두하지만, 데이터를 만드는 개인에게는 어떤 금전적 이익도 제공하지 않는다.
개인은 인공지능 발달로 일자리가 줄어들어 노동 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이지만, 한편으로 거대 기업들의 먹거리를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리는 형국이다.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앤드루 양은 이런 데이터 소유권에 대해 1인당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웠다. 개인정보를 활용해 돈을 버는 기업들로부터 일종의 데이터 사용료를 환수해 개인에게 돌려주겠다는 의미다. 데이터 소유권에 대한 인식이 국내에도 확산될지는 미지수지만 분명히 짚고 가야할 문제다.
정부·여당을 비롯 관련 업계는 '데이터 3법'이 '4차 산업혁명의 원유(原油)'라며 각종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인공지능·바이오·헬스케어 등 미래 핵심산업 성장기반을 마련하는 중대한 의미 갖고 있으며, 금융·통신·유통·공공 등 서로 다른 분야 데이터를 결합해 개인 맞춤형 상품 서비스 개발이 가능해진다고 에둘러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발전'이 국민에게 어떻게, 얼마나 혜택으로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민감한 개인정보, 특히 의료·건강정보는 특정되는 순간 기업들의 먹잇감이 될 것은 자명하다.
'데이터 3법'이 통과되든, 폐기되든 파장은 쉬이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