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개발, 의사가 나서야…기술 진전 필수 요소
기기개발 '장벽' 수가…새 기기·의료기술엔 새 비용을
4차산업기술이 집약된 소화기내시경 개발은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의료기기 개발에는 의사가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야 한다는 당부도 이어졌다.
21일 열린 '의료기기 국산화 개발 활성화'(-소화기내시경을 중심으로-) 국회 정책토론회 지정토론에서는 각계의 고언이 쏟아졌다.
좌장을 맡은 박찬국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장(조선의대 교수)은 "많은 관심이 힘이 된다. 소화기내시경 분야는 우리 때 30년간 한 것을 요즘 젊은 후배들은 3년만에 끝낸다. 기기가 좋아졌다. 한스러운 것은 우리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우리 기술의 진전을 위해 예산과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개발에 의사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당부도 나왔다.
김법민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장은 "의료기기 개발에 참여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기 개발을 꼭 해야 하나? 누가 쓴다고? 등의 문제제기"라며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능과 신뢰를 갖춰야 한다. 가격은 두 번째다. 우리에게는 의료기기 부품과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에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필요했는데 이렇게 직접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선생님들이 사용자에 머무르지 말고 직접 플레이어가 돼서 의료기기 개발에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김 단장은 "의사들이 참여해서 중소-중견-대기업 등과 협업 체계를 갖추면 범부처 사업단이 도와드릴 것"이라며 "다양한 의료기기 군을 지원하면서 전향적인 체계를 마련하고 산업화를 추진하는 시도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기기라도 수가 장벽을 못 넘으면 사장되고 만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일권 순천향의대 교수는 "의료 현장에서 꼭 필요한 기기를 만들어서 모든 과정을 거쳤는데 수가 때문에 사장되는 경우가 있다. 실례로 '위 내시경적 점막하박리술'(ESD)은 사회적 의료비용을 크게 줄이고 환자 삶의 질도 높이는 시술인데 부속 기자재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가가 책정됐다. 좋은 기기나 신의료기술을 개발해도 환자에게 쓸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새로운 기기나 새로운 의료행위가 만들어지면 새로운 비용을 만들어서 지출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가 의료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능동적으로 현실에 맞는 의료비를 책정해야 한다. 가격을 정해놓고 의료기기를 개발하라고 하면 할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도 의료기기 국산화 지원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박기숙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연구과장은 "의료기기는 산업이지만 국민 생명과 직결돼 있어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해야 한다. 제품 설계 때부터 안전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식약처도 단순히 허가신청이 들어오면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개발기업을 지원하는 허가도우미제도를 적극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중요한 것은 안전하고 효능있는 제품 공급"이라며 "힘들게 개발된 의료기기가 잘 사용될 수 있게 제품개발 초기단계부터 병원에 필요하고 환자에게 안전한 제품이 보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박성호 보건산업진흥원 산업기술 R&D 단장도 "소화기내시경 국산화는 단독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에 아직 다양한 R&D가 추진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기존 의료기기를 대체할 수 있는 국산화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통 R&D 지원은 기술 개발과 임상시험까지인데 후속 지원방안도 고민하겠다"며 "협의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소화기내시경 개발의 중심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돈행 인하의대 교수는 "보통 기업들은 임상시험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른다. 개발 초기부터 학회를 통하면 공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임상적 도움을 받고 싶을 때 학회로 연락하면 개발 초창기부터 함께 참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내시경 분야는 우리가 진입할 수 있는 의료기기다. 기업이 나서지 않는다. 정부나 국회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기업이 나선다면 임상의사들이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며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한국은 임상여건이 너무 좋다. 준비도 돼 있다. 내시경은 국산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내시경 국산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 톱다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다는 조언도 제기됐다.
백광호 한림의대 교수는 "소화기내시경은 4차산업이 집약된 분야다. 국산 소화기 내시경을 개발하면 우리 산업계 전체를 흔들수 있는 모티브가 된다. R&D를 더 확대해야 한다"며 "광학·광원 등 세부과제로 접근해야 한다. 산업 전반을 확장하는 파급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또 "의사들에게 애국심만 강조하지 말고 단기과제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다가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소화기내시경학회도 연속성을 갖고 장기과제로 접근할 것"이라며 "난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톱다운 방식의 의지 표명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기술의 현재 수준에 대한 진단도 이어졌다.
이병일 한국광기술원 본부장은 "현재 우리의 기술 수준은 일본의 70%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면 30%만 따라잡으면 될까. 아니다. 그 이상이어야 한다"며 "일본이 2010년 내시경 관련 특허를 전부 풀었다. 영상·광학 분야를 다 풀었는데 10년이 지났는데도 기술적 차이는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광학·광원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 또 기술 진도가 빠른 IT기반 기술을 이용해 신의료기술·응용기술을 접목해야 한다"며 "원천 기술에 투자를 확대하고 운용부 기술을 확보하면 우리 기술로 내시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본부장은 "나머지 30%만 채워가지고는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 70% 수준의 기술을 150%까지 높여야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재영 경희의대 교수는 "1∼2%의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현실적으로 일본 제품을 따라잡기 쉽지 않다"며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기회를 만들고 사업이 축적되고 노하우가 만들어지면 국산화에 한걸음씩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이 소화기내시경 국산화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 되길 빈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