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법 시행규칙 부당" 주장...보건복지부에 공식 질의
보건복지부 '포괄책임 규정' 강조하면서도 '직접 설명' 방점
'아산복지재단 이사장은 하루 수 만에 이르는 서울아산병원 환자와 보호자를 일일이 만나, 비급여 가격을 직접 설명해야 한다?'
의료기관 개설자로 하여금 진료 전 환자나 보호자에 비급여 대상의 항목과 가격을 직접 설명하도록 규정한, 개정 '의료법 시행규칙'과 관련해 정부가 "개설자가 환자에게 일일이 직접 설명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의료기관 개설자에 비급여 사전설명에 관한 '포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명시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인데, 의료계는 직접 설명 미이행에 따른 면책여부가 불확실한데다, 의료기관들의 행정부담만 가중시키는 일이라며 개정 규정의 '원점 환원'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기관 개설자에 직접적인 비급여 사전설명 의무 부여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4일 의료기관 개설자에 직접적인 비급여 사전설명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 의료법 시행규칙을 공포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는 비급여 비용 간접 게시를 골자로 한 이른바 '액자법'의 진화된 버전이다.
의료기관 개설자로 하여금 비급여 대상의 항목과 가격을 적은 책자 등을 접수창구 등 환자나 보호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갖추도록 했던 것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비급여에 대해서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진료 전 해당 비급여의 항목과 가격을 '직접 설명' 하도록 새롭게 규정한 것.
개정 시행규칙이 공포된 이후 의료계에서는 큰 논란이 일었다. 개정 규칙대로 의료기관 개설자가 환자에 일일이 비급여 진료비용을 사전 설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골자다.
일각에서는 "해당 규정대로라면 아산복지재단 이사장은 하루 수 만에 이르는 서울아산병원 환자와 보호자를 일일이 만나, 비급여 가격을 직접 설명해야 한다"는 자조섞인 우스개소리도 나왔다.
政 "개설자가 환자에 일일이 설명하라는 의미 아냐"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보건복지부에 의견서를 보내 개정 규칙의 의미를 직접 물었다.
설명의 주체인 '의료기관 개설자'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직접 설명'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말 의료기관 개설자가 일일이 환자에게 비급여 가격 등을 직접 설명하라는 얘기인지 정부가 직접 밝히라는 요구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해당 조항은 의료기관 개설자가 환자들에게 일일이 직접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는 설명을 담은 답변서를 보냈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해당 의료기관 내에서 비급여에 대한 설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할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통상 의료법령에서 규정하는 방식을 따른 것"이라는 설명. 현행 법령상 수술실 등의 출입자 관리를 의료기관 개설자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으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일일이 출입자 장부를 작성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만 비급여 진료의 내용이나 가격에 대한 '직접 설명'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설명의 방식이 기존 법령에 따른 책자 비치나 유인물 게시 등의 간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직접적 방식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설명 주체와 방식 등에 관한 사항은 해당 조항 시행일인 내년 1월 이전에 별도의 지침 등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의협 "의료현실 무시한 규정...즉각 되돌려야"
의료계는 개정 규칙상 비급여 진료비 설명의 주체가 '의료기관 개설자'로 명시되어 있는 만큼, 정부의 설명만으로 제도 변경에 따른 혼란을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개정 규칙이 정한 바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진료 전' '직접' 환자나 보호자에 비급여 항목과 가격을 설명하라는 것"이라며 "이를 준수하지 않아 생기는 불이익은 오롯이 의료기관 개설자 등 의료인이 떠맡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직접 설명의무가 일선 의료현장에 행정부담을 가중시킬 우려도 크다고 지적하며, 개정 규정의 원점 환원을 요구하고 있다. 규칙을 재개정해 기존의 간접적 방식인 비급여 가격 게시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협은 "통상 의료기관 개설자는 실체가 없는 법인일 수도 있고, 근무하는 의사나 직원 수가 수 백명에서 수 천명에 달하는 의료기관도 존재한다"며 "이런 의료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기관 개설자란 특정인에 설명의무를 부과한 것은 되레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에게 의료법을 준수하지 말라고 불법을 조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선 1차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자인 의사와 간호조무사가 가용인력의 전부인 상황에서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직접설명 의무를 건건이 강제화하는 것은 감내하기 어려운 업무부담과 행정력 낭비가 될 것"이라고 밝힌 의협은 "의료기관의 본연의 기능인 진료기능 침해 및 환자 불편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