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 의도 가진 왜곡된 설문조사…공적 신뢰 깨져
요새 학회에서 발표를 하거나 논문을 제출하려고 하면 꼭 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 이해 상충에 대한 명시이다. 재정적 또는 비재정적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 편향된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미리 밝힘으로써 제 3자가 경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약회사의 연구비 지원으로 수행된 연구는 그 회사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분석이나 결과 해석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꼭 그렇게 했다는 뜻이 아니다), 제 3자들이 이를 감안해서 보라는 것이다.
작년에 큰 이슈가 됐던 문제는 공공의대와 의대 정원 문제였다. 입학생이 시도지사 추천을 통해 선발된다는 등의 공정성 논란, 그리고 아직 관련 법안도 통과되지 않았는데 남원에 토지보상이 이뤄졌다는 등 소위 '공공의대 게이트' 이슈와 맞물려 의사들뿐 아니라 국민들의 강한 반발을 가져왔다.
일단 의정 합의로 코로나19 진정 후까지 추진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아직도 정부는 틈만 나면 지속적으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이해관계상충의 여지가 상당해 보인다.
2020년 8월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설문조사를 했는데, '귀하께서는, 정부가 의대 정원확대, 공공의대 설립을 강행할 경우, 파업이 불가피하다는 의사협회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는 질문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 보장을 위해 파업은 철회되어야 한다'와 '의료인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므로 파업은 불가피하다'라는 두 가지 답 중 고르게 했다.
이는 공공의대 찬성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한 것이고, 반대는 의사들의 기득권 수호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답정너'식 문항이다. 심지어 공공의대 설립의 해당 지역인 남원시에서는 시장 지시 사항이라면서 소속 직원이 필히 설문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회신하라고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해관계가 직결된 지자체가 여론 조사에 직접 참여해 그 결과를 왜곡시키는 시도였다. 참고로, 국민권익위원회의 위원장은 전현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그런 과정을 모르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기관'의 설문 조사 결과, 국민들 중 다수가 파업철회 (58%)와 공공의대 신설(55%)에 찬성한다고 인식하게 했다.
비슷하게, 2020.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보건과 복지 현안에 대한 시민의 인식과 의견을 조사한 결과'라면서 '국민의 80.8%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발표했다.
조사를 수행한 '리얼미터' 홈페이지를 통해서 그 설문 문항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2.3명으로 36개 회원국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실정입니다 귀하께서는 의료진 확보 및 감염병 대응 전문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이 얼마나 필요하다 고 혹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로 되어있다.
"의사가 적다" 및 "의료진 확보 및 감염병 대응 전문인력 확충을 위해"라는 전제를 깔고 물어보니, 상황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그런 인력이 필요하다고 대답하기 쉽다. 사실, 누가 문항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설문문항을 만드는 것은 곡학아세라 할만하다. 참고로, 보건복지위원장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며칠 전인 2021년 2월 8일에는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이 의사인력 증원 정책 찬성률은 64.9%, 공공의대 신설정책 찬성률은 54.3%이라고 발표를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정세균 총리에게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료 확충을 총리가 직접 챙겨달라'는 주문을 했고,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은 남원에 공공의대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서울대학교 병원은 공공의료의 명목으로 정부에서 상당한 예산 지원을 받고 있고, 대통령이 서울대병원장을 직접 임명하는 등 정부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설문 조사의 내용이나 발표 시기 등에 있어서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OCED의 '공적 영역에서의 이해관계상충 관리'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Public official을 정의하면서 이에는 공무원, 선출직을 포함해서 정부나 지자체 등을 위해서 일하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모든 관리들을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각 시민들과 국가는 이러한 public official들이 개인적, 사적인 이익에 의해서 영향 받지 않고 시민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린다는 공적 신뢰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정부와 공공기관들에 대한 신뢰가 없어질 것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이공계 연구윤리 및 출판윤리 매뉴얼'을 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의 공약 타당성에 대해 연구 의뢰를 받은 경우 (향후 장관 등의 대가가 기대되는 경우)'가 이해 상충의 사례로 나온다.
실제 현재도 의료관리 및 예방의학 출신의 교수 상당수가 청와대, 복지부, 그리고 건강보험공단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고위직으로 근무중이다. 이러한 자리는 자신의 정책안을 현세에 구현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위나 명예, 연구비도 넓게 보면 이해관계의 소지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공공'이라는 말은 마치 이해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공공의대는 누군가에게는 정치적인 카드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퇴직 후 갈 자리, 누군가에게는 제자들을 보낼 자리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뉴스를 보니, 청와대가 원전의 경제성이 낮게 나오도록 압력을 넣었고,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를 맡은 회계사는 경제성 평가가 정부가 원하는 결과에 맞추는 작업이 되어 씁쓸해 했다고 한다.
공공의대가 실제로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간에, 적어도 왜곡된 설문 조사 같은 것으로 사익을 챙기면서 마치 공익인양 포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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