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의료행위 형벌화·행정처분 제문제' 토론회
의사 형사사건 일방적 마녀사냥 보다 의료 질 향상·예방 중심 접근
면허관리기구 설립 절실…의료법이 전문가단체 통제 수단되면 안 돼
"미국·캐나다는 의료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금고형 이상 형량을 받은 의사에 대한 면허취소 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의료행위 형벌화 경향과 행정처분 관련 적정성을 톺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4일 용산임시회관에서 '의료행위의 형벌화와 행정처분의 제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국내외 사례 및 객관적 지표를 근거로 한 올바른 입법 방향을 진단했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첫 발제에서 '국내외 의료인 형벌화 경향 분석과 제언' 발표를 통해 프랑스·영국·독일·캐나다·미국 등 사례를 들며, 한국은 이미 과도하게 의료 형사범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실상을 알리고 모든 형사법 유죄판결에 따른 의사면허 취소는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프랑스를 예를 들었다. 지난 26년(1986∼2011)간 일반의에 대한 형사입건은 39건에 그쳤으며, 유죄판결을 받은 14건도 처벌은 집행유예(13명)·벌금형(1명)이었다. 오히려 자율규제가 더욱 강력하게 작동했다.
안 소장은 "프랑스의 경우 26년간 일반의에 대한 형사 처벌이 14건에 그쳤고, 그마저도 집행유예·벌금형이었다"며 "반면 자율규제 현황을 살펴보면 같은 기간 면허정지 25건, 무처벌 15건, 비난 9건, 경고 7건, 면허영구박탈 4건 등으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의사수는 1986년 15만 7290명, 2011년 26만 4466명이었다. 지난해 6월 5일 기준으로 일반의 10만 2299명, 전문의 12만 1272명 등 총 22만 3571명이 활동하고 있다. 인구 1000명당 3.4명 수준.
또 다른 연구자료에서 프랑스는 지난 26년 간 의사 형사사건 해당자는 543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268명이 유죄판결을 받았고, 무죄방면 131명, 수사종결 144명 등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10명 안팎 의사가 유죄로 인정됐다.
의사의 과실치사상죄를 처벌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2010∼2013년 사이 검사의 형사소추 건수는 '0'이었으며, 2014∼2019년에는 해마다 1건씩뿐이었다. 그것도 처벌은 모두 벌금형에 그쳤다.
영국은 과실치사죄로 30년(1970∼1999)간 총 17건 22명의 의사가 기소돼 8명이 최종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2013∼2018년 6년간 의료과실치사상 소송에서는 총 151건 가운데 4건만 유죄가 확정됐다.
안 소장은 "영국의사들은 경찰조사를 받은 151건만으로도 진료의 자주성·독립성 훼손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알렸다.
한국은 2013∼2018년 업무상 중과실치사상죄 판례가 670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0년 10건, 2011년 5건에 그쳤으나, 2012년(71건)부터 급증 추세를 보이면서 2013년(92건)·2014년(95건)·2015년(112건)·2016년(117건)·2017년(124건)·2018년(130건)·2019(142건)·2020(133건) 등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과 캐나다는 한국과는 달랐다.
안덕선 소장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의료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의료형사처벌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지난 108년간 의료형사처벌 사례가 단 1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배상과 자율적인 분쟁해결에 맡긴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9년 11월 1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학술대회 '국제 자율규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브라운스톤 온타리오주 면허기구원장·JD 휘트모어 온타리오주 면허기구 변호사·초드리 세계면허기구협회 사무총장 등은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관련 반복된 질문에도 "하지 않는다"고 명토박았다.
의료 형사 사건에 접근은 일방적인 마녀사냥 보다는 의료질 향상과 예방 중심으로 이뤄지며, 형사 처벌에 따른 면허취소도 별도의 면허기구가 심사하고 있다.
국내 현실에 대한 문제점도 짚었다.
'배상과 자율'이라는 국제적 경향과 무관하게 의료형사범죄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의료에 대한 기존 악법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자율 조정과 배상 전문기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며 관련 제도 역시 미비하다는 판단이다.
안덕선 소장은 "이미 과도한 의료 형사범죄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형사법 유죄 판결에 따른 면허취소는 부당"하며 "의료와 관련성 판단이 중요하고 면허취소에 대해서는 반드시 면허관리 전문기구를 설립해 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에서 이얼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영국에서의 중과실치사죄 논의 현황과 GMC 징계절차' 발표를 통해 국내에는 의료 형사 범죄화 관련 행정처분 절차(접수·조사·심의) 뿐만 아니라 행정처분에 대한 불복절차도 없다고 지적하고, 의료인 행정처분의 전문성·공정성·투명성 확보가 절실하다고 피력했다.
영국에서는 2013∼2018년 151건의 중과실치사죄 혐의를 검토했으나, 대부분(85건)은 초기에 경찰수사를 정지했다. 43건에 대해 기소여부를 검토했으나 최종적으로 불기소했으며, 기소된 7건 가운데 유죄판결은 4건이었다.
이얼 전문연구원은 "영국 검찰은 중과실치사죄에 대한 지침으로 '안전하다고 입증된 시스템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경우', '다른 직원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팀원에 의한 경고·조언을 무시하는 행위' 등에 한정에 의법조치를 고려하는 것을 지침으로 하고 있다"며 "또 다수의 의료인의 실수가 결합된 경우 중과실에 해당하는 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에서 의사 징계 절차는 접수-조사-심리 등 단계별로 이뤄진다고 밝혔다.
먼저 GMC(General Medical Council·의료위원회)는 접수단계에서 초기조사를 진행해 경미한 사안인 경우 사건을 종료하고, 혐의점이 발견되는 추가조사를 진행한다.
조사단계에서는 조사관을 임명해 조사를 진행하며 조사결과에 따라 사건 종료, 경고, 의료재판소(MTPS) 회부 등을 진행한다.
심리단계는 MTPS가 맡는다. 임시명령재판은 접수·조사 단계에서 즉시 면허등록을 정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돼 회부된 경우이며, 일반재판은 청문회 후 무혐의·경고·벌금·등록정지·등로 삭제 등을 결정한다. 심리결정에 대해 불복할 수 있으며, 고등법원 항소는 GMC·전문직규제기관연합회·해당 의사 등 모두가 신청할 수 있다.
이얼 전문연구원은 "한국은 행정처분(징계)에 대한 절차 자체가 없으며, 처분에 대한 불복절차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환자·의사에 대한 지원절차 역시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차제에 의료인에 대한 행정처분에서는 전문성·공정성·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형선 의료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의료인 결격사유의 위헌적 요소와 행정권 남용' 발표를 통해 의료법이 입법 통제의 수단 또는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면허취소 사유와 자격정지 사유의 명확한 구분과 구제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법은 의사가 국민의 건강권과 의료권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의료행위 외 모든 법률 위반행위로 인해 환자를 진료할 수 없는 피해와 징벌적 행정처분 행위로 인해 얻는 이익을 따져봐야 한다"며 "윤리적 기준을 법제도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헌법상 직업의 자유 제한 원칙 준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 유형과 상관없이 모든 금고형 이상으로 인한 결격사유가 윤리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면허취소 사유와 자격정지 사유의 명확한 구분과 구제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직무와 관련 없는 범죄까지 광범위하게 배제하는 방법이 '직무관련 규정을 준수하게 함으로써 해당 자격을 적정하게 수행하게 한다'는 입법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인지 의문"이라며 "목적달성에 적합한 수단이더라도 필요한 정도를 넘는 과도한 규제로서 최소침해 원칙에 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패널토의에는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대한의학회 법제이사)·김준래 변호사(김준래법률사무소)·이의주 중원대 법무법학과 초빙교수·한성훈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등이 참여했다.
토론자들은 의료법 개정안이 헌법이 정한 기본권 제한 법리인 과잉금지원칙을 준수해야 하며, 그 가운데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지켜야한다는 데 중론이 모아졌다. 의료계 차원의 자율성 확보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박형욱 교수는 "의료법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환자 안전이다. 미국·캐나다 등에서는 환자 안전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환자 안전을 위해 의료인 스스로 관리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만약 의료 소송이 개시되면 그 정보들은 보호된다"며 "형사처벌을 앞세우면 정보를 숨기게 된다. 면허관리가 환자 안전을 위해 중요하지만 직무관련성을 고려한 면허관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형법이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만능의 수단, 최고의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의사의 면허관리는 의료계를 떠나 사회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본권 제한 법리인 침해 최소성의 원칙도 재차 강조됐다.
김준래 변호사는 "의료인의 면허를 박탈하는 것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이 정하는 기본원 제한 법리인 '과잉금지원칙'과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강력 범죄나 파렴치 범죄가 아닌 경우에도 곧바로 면허를 박탈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행정기관의 행정활동에서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반대급부와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는 행정법상 원칙인 '부당결부금지원칙'도 따라야 하는데 입법안은 법률이 부당결부를 강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의료법 개정안이 법 정의 측면에서 배분적 정의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의주 교수는 "법은 배분적 정의를 통해 절대적 평등에 다가선다"며 "이번 개정안은 의료인에 대한 처벌에서 일반 예방을 강조한다. 매우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무섭게 만들면 범죄가 예방될 것이라는 식의 접근이다. 일반 예방보다 특별 예방이 강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법 편의주의라는 문제의식과 함께 의료 단체 내부의 자구적인 자율시스템 마련도 제안됐다.
한성훈 교수는 "면허관리에서 결격사유와 면허취소 요건을 광범위하고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의료인이라는 특수 직업군에 대한 본질적인 고려가 없는 입법편의주의"라며 "의료인의 불법행위가 의료업무 수행과 관련해 어떤 결격이 있는지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런 과정이 없으면 실질적으로 이중처벌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법 문제는 존중받아야 한다. 의료인 면허관리 분야는 법률적·사회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일이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고 생각한다"며 "의료계가 무감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직업적 성역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의료계 내부의 자구적인 노력에 대한 자율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