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법인 의료법에 정면 배치…진료행위 주체·보조자 구분 없애
3년주기 타당성 검토 조항 삭제…"더 이상 손 못대게 하려는 의도"
국민 생명·건강 문제는 원칙적 접근 필요…개정안 원점 재검토 촉구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 입법예고한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안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상위법인 의료법에 거스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의료법은 간호사의 업무에 대해 명확하게 '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를 규정(의료법 제2조제2항제5호)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지도에 따른 처방 하에'라는 개념을 보건·정신·산업·노인 등 4개 분야 전문간호사 업무범위에 추가했으며, 13개 전문간호사 업무범위로 '진료 보조'가 아닌 '…처치·주사 등 그밖에 이에 준하는 ○○환자 진료업무'로 규정해 진료행위의 주체와 보조자 구분을 없앴다.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변호사·법무법인 한별)는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의료정책포럼> 최근호에 '전문간호사 규칙 개정안의 법적 문제점' 기고를 통해 개정안의 위법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보통 법률에 모든 내용을 상세히 규정하는 것은 법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다. 이런 연유로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회는 법률 제정 대 본질적·핵심적 내용만 규정하고, 구체적·세부적·실무적 내용은 행정부가 하위법령에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가 제정한 모법에서 위임한 취지와 본질을 행정부가 하위법령을 통해 바꿀 수는 없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국민의 선거를 통해 직접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국회의 의사결정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아 간접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았을 뿐인 행정부가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개정안은 의료법의 하위법령인 보건복지부규칙임에도 의료법이 예정하거나 위임하지 않은 '지도에 따른 처방' 개념을 4개 분야 전문간호사에게 추가했다. 명백히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났고 상위법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의료법에는 간호사의 업무로 '진료 관련 업무'가 아닌 '진료의 보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의사가 진료의 주체이고 간호사는 그 보조자임을 명토박았다. 그러나 개정안은 13개 전문간호사 업무범위로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함으로써 진료행위의 주체와 보조자 개념을 없앴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진료에 필요한 업무'에 해당하기만 하면 전문간호사가 진료행위의 보조자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행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이라며 "이 역시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났으며 상위법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의료법에 명확하게 규정된 용어를 뒤섞어 새로운 개념을 굳이 추가하면서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도 이어갔다.
의료법에서 처방은 '의약품 투약에 관한' 의사 등의 의사(意思) 표시라고 규정돼 있다. 비록 의료현장에서 '처방'과 '오더'가 구분없이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명확한 개념이라는 견해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개정안은 상위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용어 2개를 혼합해 '지도에 따른 처방'이라는 개념을 추가하면서, 그 해석·이행 과정에서 불필요한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라며 "처방과 오더를 혼용하는 현실이더라도 그대로 법률에 들여와 기존 법률이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는 용어와 혼란을 일으키게 하는 입법은 법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고 일갈했다.
차라리 의사의 '오더'를 '지시'라고 규정하고, '지도'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그 정의를 입법하는 게 더 적절하다는 판단이다.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정신·응급·중환자·호스피스·종양·아동 분야 같이 의사의 업무가 명백한 사안에 대해 '의사의 지도 하에'라는 제한없이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문간호사에 대한 3년 주기의 타당성 검토 후 개선 조치 규정도 삭제했다.
의료법 시행규칙(제79조의2)에는 의료법상 여러 가지 요건·기준에 대해 3년 또는 2년 마다 타당성 검토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타당성 검토 대상은 의료기관의 종별 시설기준 및 규격, 의료기관 종류에 따른 의료인 정원 기준, '리베이트' 범위, 원격의료시설 및 장비, 의무기록 열람 등의 요건, 의료인 실태 등의 신고·보고 등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요건 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타당성 검토 규정을 삭제한 것은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요건을 앞으로는 더 이상 변경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며 "보건복지부가 직역간 합의도 되지 않은 내용에 대해 자신의 관리·감독 권한까지 포기하면서, 향후 수정·보완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칙 개정은 다른 영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전문간호사 규칙 개정안은 원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전성훈 법제이사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관한 문제는 원칙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실무적 요구가 있더라도 법을 지키는 범위에서 논의해야 한다"라면서 "현안에 매몰돼 잘못된 시스템을 고착화시킨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