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고비' 언급 자제해야…팬데믹 앞으로 5∼6년 예상
코로나19 대응 위해 공공병원 강화? "잘못된 이야기"
'방역패스' 갈등 안타까워…대국민 메시지 전달 미흡 원인
코로나19 '종식'. 머지않아 손에 잡힐 것 같았던 이 두 글자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더 멀어진 듯하다.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 의료진과 국민의 협조에 따른 가파른 접종률 상승. 2021년 초기만 해도 백신 접종 등 집단면역을 통한 팬데믹 상황 종료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 연이어 등장한 오미크론 바이러스에 돌파 감염이 계속됐다. 여기에 백신 효과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감소하면서, n차 대유행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이제는 '코로나 엔데믹'을 고려하는 국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스페인은 최근 코로나19를 풍토병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폭스뉴스는 11일 "코로나19 전체 확진자 집계를 중단하고, 독감처럼 코로나19를 추적해야 한다"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의 라디오 인터뷰를 보도했다.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은 불가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국내·외에서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과 관련해 전문가 의견을 적극 개진하고 있는 엄중식 가천의대 교수(감염내과) 역시 인터뷰를 통해 "이제는 희망고문을 멈춰야 한다. 코로나19 종식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국민을 설득해 함께 팬데믹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코로나19 4차 접종에 대한 빠른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오미크론이 마지막 고비가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감염력이 강한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면서 국민에게 긴장감을 유지해 달라는 강조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통해 확진자 급증 상황이 앞으로 반복되지 않을 거란 잘못된 '희망 고문'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엄중식 교수는 "방역에 있어서, 정부의 소통능력은 메르스때보다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라면서 "마지막 고비라는 말이 청와대나 정부 발로 여러 번 나왔다. 메시지 관리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신종 감염병인 만큼 상황에 따라 예측이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국민을 설득하는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 교수는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수집된 정보를 분석해 중·고등학생들이 봐도 이해할 수 있게 정리해 줘야 한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보인다"라며 "정보 업데이트 인력에만 200명 가까이 모여있는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비교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반발 역시 역시 이러한 과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짚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에 먼저 "직접 코로나19 중환자를 보는 입장에서, 방역패스 갈등 상황에 안타까운 심정이 들 때가 많다"고 입을 뗐다.
엄 교수는 "재택치료 시스템 강화나 중환자 병상 확보 등은 의료계와 논의하면서 진행하니까 비교적 큰 문제가 없다"라면서 "반면 방역패스는 반발이 크다. 미접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좀비…준비되지 않은 사각지대 집요하게 파고 들어
"코로나19 중환자들을 보면 미접종자 비율이 상당히 높다. 바이러스가 마치 미접종자들만 쫓아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언급한 엄 교수는 "좀비 영화를 보면 기가막히게 약한 벽·틈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약한 부분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바이러스가 좀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20~30대에게, 다음에는 요양원 등 고령자로 집중되다가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니 미접종자 고령자에서 다시 미접종 학생들까지 내려가고 있다"며 "임산부들의 백신 접종률이 1%도 안 된다. 얼마 전 사망한 코로나19 확진 산모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최근에는 생후 10일된 아기가 감염돼서 왔다. 현장에서 상당히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코로나19 종식 불가…현 팬데믹 상황 5∼6년 예상"
의료인이라면 '코로나19 종식이 언제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들을 것이다.
엄 교수는 가천의대 길병원 진료부원장으로, 병원 내 코로나19 환자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누구보다 이 질문을 지겨울 정도로 듣고 있는 의료인 중 하나다.
그는 이 질문에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전문가들은 종식이 불가하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도 지금까지 유행하고 있다. 다만, 현재 같은 전 세계적 대유행, 팬데믹 상황의 종료 시점을 예측한다면 5∼6년 정도로 필요하다고 본다"라편서 "오미크론의 빠른 확산을 통해 팬데믹 상황 종료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내놨다.
엄 교수는 "팬데믹 상황이 안정화되려면 전 세계 인구 절반인 30∼40억명이 항체를 가져야 한다. 현재는 6분의 1 정도"라면서 "오미크론이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중환자로 진행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역당국이 거리두기 완화를 발표하면 확진자가 급증했다가 방역을 강화하면 안정세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엄 교수는 "팬데믹 상황 종료 전까지는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방역 조치 강화·완화를 반복해야 한다"라면서 "풍토병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바이러스도 적응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팬데믹 안정화는 더 효과적인 백신 개발, 치료제의 신속한 보급, 의료 인력·교육 강화, 의료 시스템 관리 등 다각적인 대응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대응 위해 공공병원 강화? 잘못된 이야기"
팬데믹 상황 종식을 위해 공공병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잘못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한 일침이다.
엄 교수는 "전체 병원의 10%도 안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병원이, 그것도 취약한 환자들에 대한 진료에 집중하던 병원이 어느 날 갑자기 신종 감염병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면서 "10년 뒤를 보고 투자한다면 모르겠지만 당장의 유행을 막기 위해 공공병원을 강화한다는 것은 잘못된 얘기"라고 지적했다.
현재 방역 당국이 코로나19 중환자 전담 병상을 확장한 데 대해서도 "중환자실을 갖췄다고 했지만, 숙련된 의료인력 부족으로 사실상 가동률은 훨씬 낮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1일 오후 5시 기준, 전국 중환자 병상이 1731개라고 발표했다. 이 중 777개(44.9%)를 사용하고 있어 가동률이 절반 이하의 '안정세'임을 강조했다.
엄 교수는 "중환자실을 숫자로만 봐선 안 된다. 실제로는 많이 잡아도 전체 집계의 4분의 3 정도만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숙련된 의료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엄 교수는 코로나19 중환자 관리에서 중요한 의료장비인 에크모를 예로 들며 "국립의료원들이 에크모를 자체적으로 사용한 지가 얼마 안 됐다. 메르스 당시 가동할 수 있는 의료인이 없어 타 병원 흉부외과 교수들이 파견을 나갔을 정도"라면서 "숙련된 전문 의료인력을 고려한 실가동률 제고, 그리고 의료인력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