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 경중 따지지 않고 피신청인에게 조정절차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
개정안,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요건 충족 못해 위헌 요소 다분
변호사로서 종종 받는 상담 소재 가운데 하나는 성형수술 부작용에 대한 것이다.
무료상담은 지양하려고 하나, 유선상으로 연결되자마자 상담료를 고지할 틈도 없이 다짜고짜 울분을 토로하며 한참을 불만족스러운 결과에 대한 심경을 눈물로 호소하는 일부 사례에서는 속수무책이 된다.
최근 쌍커풀 수술 비대칭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한 고객은 해당 병원에서 6개월 뒤 교정수술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그 사이에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는지를 물었다. 언제 수술을 받으셨는지 묻자 한 달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필자는 객관적인 증거기록 확보를 당부하면서 부드럽지만 단호한 한마디로 그날의 상담을 마쳤다. "그 정도면 조금 더 경과를 기다렸다가 대응 여부를 결정하셔도 될 것 같아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최근 모든 의료사고 발생 시 조정신청을 하면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개시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앞서 강 의원은 지난해 10월 해당 법률안 개정안 발의를 예고한 바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피신청인(의료기관·의사)이 조정 의사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통지함으로써 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조항을 없애고, 중재원장이 조정신청을 받으면 지체 없이 조정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것이다.
조정 통보를 받은 피신청인은 14일 안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2주 안에 적법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조정절차는 그대로 개시된다.
피신청인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함으로써 조정제도의 실효성을 제고, 의료사고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자 한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대한개원의협의회가 이달 초 "개정안은 헌법 정신을 무시한 악법"이라며 즉각 철회를 주장한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월 21일 개정안에 대한 공식 반대입장을 국회에 전달했다.
취지는 훌륭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여서 의료계는 결사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모범답안은 이미 지난해 5월 27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제27조 제9항 위헌확인 청구를 기각한 헌법재판소 결정문(2019헌마321)에 나와 있다.
해당 조항은 조정신청을 하면 피신청인이 조정 의사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통지함으로써 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되, 사망,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중증 장애 등 악결과가 명백한 경우 지체 없이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구인은 정신과 전문의로,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해 유족측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환자의 기왕력, 나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기만 하면 조정신청으로 절차가 자동 개시되도록 하는 것은 일반적 행동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심판을 청구한 것이었다.
위 주장대로 심판조항이 기본권을 침해해서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오려면, 과잉금지 원칙에 따라 목적의 정당성·수단의 적합성·침해의 최소성·법익의 균형성 어느 하나라도 저촉된다는 판단이 요구된다.
통상적으로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은 인정되고 관건은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에 대한 판단인데, 이 사건에서는 다음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현행 자동개시 조항이 '사망 등 중대한 결과'에 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망과 같은 중대한 결과가 발생한 경우 일단 조정절차가 개시되도록 하고 그 후 이의신청이나 소 제기 등을 통해 조정절차에 따르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청구인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중략)… 사망이라는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신속·공정한 피해구제를 도모하고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할 목적으로 의료분쟁 조정제도를 활성화하고 그 실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공익은 청구인이 입게 되는 불이익에 비하여 훨씬 중대하다(2021. 5. 27. 2019헌마321).
즉, 서두에서 언급한 사례를 비롯한 모든 의료사고로 범위를 확대해 조정절차가 자동개시 된다면, 피해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피신청인으로 하여금 조정절차에 따르기를 강요하는 셈이어서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공익이 피신청인이 입게 되는 불이익보다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그 제한은 꼭 필요한 정도에 그쳐야 한다.
그 정도를 심사하는 기준이 앞서 설명한 과잉금지의 원칙이고, 일정한 잣대 없이 모든 의료사고로 인한 분쟁조정 신청시 피신청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절차를 개시토록 한 개정안은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위헌 요소가 다분하다.
조정절차가 자동개시 되더라도 조정안에 피신청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조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인적·물적 자원과 양측의 감정 소모를 공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