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의 범위 벗어난 행정기관 자의적·임의적 판단에 의한 행정처분 "위법"
심평원 부족한 근거 기반 자의적 내부기준에 따른 감액조정처분 중단돼야
우리나라는 의료비용 지불과 관련해 공적 보험인 건강보험체계가 적용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의료공급자인 의료기관이 특정 의료행위를 한 후 비용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청구하면 심평원이 진료비(요양급여비용)와 진료내역을 심사해 그 결과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비용을 의료기관에게 지급한다.
위와 같은 비용지불체계에서 심평원은 법령이 정한 기준에 따라 진료비와 진료내역을 심사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심평원 내부 기준을 적용해서 심사한 후 의료기관의 진료비와 진료내역이 기준에 맞지 않다고 해서 감액조정(삭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가운데, 상위 법령에도 부합하지 않고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부족한 기준을 심평원 내부에서 수용해 해당 기준에 따른 진료비 감액조정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를 보면, 원고병원은 병리학적으로 혈전성 미세혈관병증(Thrombotic microangiopathy, TMA) 소견이 확인된 환자에 대해 비정형성 용혈요독증후군(aHUS)과 혈전성 혈소판감소성자반증(TTP)의 가능성을 고려해 총 30회에 걸쳐 혈장교환술을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혈액검사 등을 시행해 치료효과 등을 확인해 혈장교환술 시행횟수와 간격 및 투여약물 등을 조절했고, 이후 환자는 호전됐다.
그런데 심평원은 원고병원 의료진이 15회차까지의 혈장교환술을 실시했음에도 호전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ADAMTS-13 활성도 검사 결과가 혈전성 혈소판감소성자반증(TTP)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ADAMTS-13 활성도 검사 결과 확인 이후에도 계속해 추가적으로 15회의 혈장교환술을 시행한 것은 요양급여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가 혈장교환술 시행과 관련한 요양급여비용을 감액조정했다.
이에 원고병원이 감액조정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지만 기각되고 추가적으로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에 심판청구를 했으나 재차 기각돼 결국 의료전문변호사를 선임해 법원에 원고병원의 혈장교환술을 요양급여기준에 부합한다고 하며 감액조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한편 심평원은 혈장교환술 지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과 관련해 외국의 논문 1편에서 저자들이 임의로 설정한 기준을 근거로 해 원고병원의 혈장교환술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법원은 혈전성 미세혈관병증(TMA), 비정형성 용혈요독증후군(aHUS), 혈전성 혈소판감소성자반증(TTP)에 관해 개별적인 요양급여기준이 존재하지 않아 요양급여기준의 일반 원칙을 적용해야 하고, 요양급여기준의 일반 원칙에 따르면 원고병원의 처치가 적절한 것으로 보아야 함에도 심평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진료비 및 진료내역을 심사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법률우위의 원칙에 따라 행정주체의 행정작용은 법률에 위배되어서는 안되고, 법률유보의 원칙에 따라 행정작용은 법률의 수권에 의해 행해져야 하므로, 행정기관의 행정처분은 법률이 설정한 범위 내에서 법률에 기반해 행해져야 하고, 법률의 범위를 벗어난 행정기관의 자의적·임의적 판단에 의한 행정처분은 위법한 처분에 해당한다.
진료비와 진료내역 심사 및 그에 따른 감액조정처분도 행정처분으로 법률우위의 원칙과 법률유보의 원칙을 따라야 하므로, 진료비와 진료내역 심사를 위한 요양급여기준 역시 처치·투약 등 특정 행위에 관해 개별적인 기준이 존재해야 하고, 만약 개별적인 기준이 없다면 일반 원칙에 따라 의학적 타당성, 비용효과성을 고려해 적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의학적 타당성과 관련해 의학적으로 근거가 부족한 기준을 심평원이 내부적으로 수용해 소위 '심평의학'에 따라 진료비와 진료내역을 심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의료행위 후 이뤄지는 진료비 및 진료내역 심사 및 그에 따른 처분은 의료기관의 진료방식에 영향을 주어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에 중요한 파급력을 가지는 분야로, 의학적으로 높은 수준의 근거에 기반하지 않을 경우 그 파급력이 심히 부정적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의학적 근거가 결여돼 있거나 미약한 기준에 기반한 진료비 및 진료내역 심사 및 그에 따른 처분으로 인해 혈우병이나 희귀 암 등 특정 질환에 대해 소극적으로 진료하거나 아예 해당 진료를 중단해 환자들이 적절히 치료를 받지 못하는 등 잘못된 기준에 기반한 심사 및 처분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 세계에서의 부작용 사례 뿐만 아니라 앞에서 소개한 판례와 같이 법원에서도 법령의 범위를 벗어나고 의학적 근거도 부족한 기준에 따른 진료비와 진료내역 심사 및 감액조정처분이 위법함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심평원은 부족한 근거에 기반한 자의적 내부 기준에 따른 감액조정처분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
진료비 및 진료내역 심사 및 그에 따른 처분은 법령에 기반해 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구체적이면서도 실체적인 높은 수준의 의학적 근거에 의해 형성된 기준에 따라 수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