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기생충' 오염…농축산 식품군 실태조사 필요
기생충 오염 우려 식품, 안전 처리 후 유통해야 '안심'
식품안전성 검사·검역 종사자 교육 커리큘럼 개발해야
도시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생충이 인식되는 것은 무리일까?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나, 질병학적인 임상증상을 동반한다면 쉽게 인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기생충의 존재를 우리는 긴 시간을 통해 서서히 인식하게 될지 모른다.
기생충과 미나리 그리고 간질
영화 '기생충'과 영화 '미나리'가 아닌 진짜 '미나리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해 4월 지역보건환경연구원에서 문의전화가 왔다. 미나리에 기생충 오염이 의심된다는 민원 대응을 위한 전문가 자문이 필요해 연락이 온 것이다. 미나리가 기생충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교과서적으로는 수초를 통해 간질(Fasciola sp.)이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확인된 적이 없다.
미나리가 간질 감염 경로라는 사실을 처음 학계에 보고된 것은 불과 10년 전인 2013년이다. 당시 임재훈 성균관의대 교수(영상의학과)께서 정년을 앞두고 대한소화기학회에 투고한 '기생충 쫓아 40년'에서 간질 외에도 영상소견을 통해 다양한 기생충과 그 기생충이 방황한(?) 흔적까지 살폈다는 부분은 실로 감탄과 존경을 금치 못하게 된다. 임 교수는 환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확신을 갖고 미나리가 중간숙주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미나리 채집까지 다녀왔다고 밝혔다. 이후 많은 기사에서 미나리 기생충에 대한 우려가 보도되었으며 미나리 농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국립농업과학원은 2014년 농산물 안정성 연구로 논미나리 재배 시 간질 유충 오염 방지 방안에 관한 연구에 착수, 미나리 오염 조사를 진행했다. 2015년 2∼3월 미나리 농가 세 곳에서 채집한 500개 중 2개의 샘플에서 간질 유충 오염을 확인했다. 논문을 보면 오염률이 굉장히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물달팽이가 활동하지 않는 시기인 2월과 3월에도 간질 유충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본격적으로 물달팽이가 활동하는 시기에는 농작물이 기생충에 오염될 위험이 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식물매개 흡충류는 6종이 보고됐다. 국내에는 간질(Fasciola hepatica)과 거대간질(Fasciola gigantica) 그리고 외국에서는 비대흡충(Faciolopsis buski)과 인위반충(Gastrodiscoides hominis)이 여러 나라에서 보고된 주요 인수공통 식품매개성 흡충이다. Watsonius watsoni와 Fischoederius elongatus (Paramphistomidae)는 주로 반추동물을 숙주로 하는 기생충이지만 인간에서 우연히 발견된 예가 있다. 2종의 간질을 제외하면 나머지 4종은 장내를 서식처로 삼는 기생충이다.
간질은 반추동물인 소나 염소의 기생충으로 잘 알려졌고, 국내 감염률도 낮다 보니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에서 조차도 인체기생충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WHO에서 주요 인수공통기생충 중 하나로 간질을 명시하고있다.
필자는 가축의 간질 감염 실태를 조사하고 간질과 거대간질의 분류학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차례 연구 제안서를 신청한 적이 있으나, 심사자들의 마음을 끌지는 못했다. 과거라면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간질 감염이 없다는 심사의견은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다양한 기생충 감염 경로
가축의 분뇨를 통해서 배출된 간질의 알들이 냇가로 흘러가면 유충이 깨어나와 물달팽이에 감염된다. 그리고 그 유충은 물달팽이 내에서 무성생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린 후 물달팽이 밖으로 빠져나와 수면 위의 수초에 피낭을 형성하고 소나 염소가 그 수초를 뜯어 먹기를 기다린다. 대부분 기생충은 이와 같은 복잡한 생활사를 통해 삶을 영위한다. 그들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한 새로운 경로를 찾아서 기생충은 지금도 번식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서 농작물 등 식품에 기생충이 오염되는 비율이 확연히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급속한 기후 및 환경 변화는 기생충과 매개동물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의 상승은 물달팽이의 서식지 변화 및 성장 속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식품기생충 안전성에 관한 모니터링은 필요하다.
문제는 가공식품이다. 최근에는 녹즙도 간질 감염의 원인일 수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김민재 울산의대 교수팀(서울아산병원 감염내과)은 2022년 12월 국제학술지 <원 헬스(One Health)> 최신호에서 녹즙 섭취가 간질 감염증의 원인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교수팀은 2021년 1월부터 2022년 6월까지 간농양과 호산구 증가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30명 중에서 간질 감염군(15명)과 비감염군(15명)의 식습관을 비교하였다. 김 교수팀은 간질감염군에서 녹즙을 섭취하는 비율이 비감염군보다 유의한 수치로 높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간질감염군에서 녹즙을 먹지 않았어도 미나리나 다른 채소를 생식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만, 녹즙에서 직접적인 감염의 원인이 되는 기생충 피낭 유충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추후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필자는 충분히 녹즙을 통해 간질이 전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험적으로 동물감염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간흡충(Clonorchis sinensis)의 피낭 유충을 수집을 할 때가 있다. 이때 피낭 유충은 그라인더로 파쇄되지 않는다는 점을 필자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효과적인 식품매개성 기생충 관리 방안 필요
보건복지부는 제8차 전국 장내기생충 감염실태조사(2012) 이후 질병관리청 매개체분석과에서 장내기생충 퇴치사업을 맡아 매년 장내기생충 감염률을 조사하고 치료 및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2019년 사업지역 주민 30,415명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장내기생충 감염률은 5.1%였다. 장내기생충 11종 중 4종의 기생충이 검출되었다. 간흡충이 3.1%로 감염률이 가장 높았으며 장흡충이 1.7%였다. 지역적으로 분석한 결과, 낙동강 유역에서 가장 높은 감염률을 보였다.
국내 장내기생충 감염률은 제8차 실태조사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식품매개성 기생충은 많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생충 감염률이 낮은 우리나라로서는 기생충 감염 고위험지역을 대상으로 식습관 관리를 통한 식품매개성 기생충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으나, 이제는 이와 더불어 기생충 감염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일반 대중이 다양한 식품을 통해 감염될 수 있는 기생충을 알고 하나하나 조심해서 선택하고 조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기생충에 감염되기 전에 감염원이 될 수 있는 식품을 안전한 방법으로 처리해 시중에 유통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책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꾸준한 감염 조사와 예방 교육에도 감소하지 않는 식품매개성 기생충의 효과적인 감염관리를 위해서는 농산물과 축산물 등 식품군에서의 기생충 실태조사를 통해 효과적인 방지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나리 외에도 기생충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도록 식품안전성 검사과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산물과 축산물에 기생충 오염실태에 관한 기초자료를 수집해야 하며, 식품 기생충 검역 종사자를 위한 교육 커리큘럼 개발 및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