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교양서적 집필·클래식 라디오 MC·환우 위한 연주회까지
"가장 큰 행복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일"
오재원 교수와의 첫 만남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 창단연주회
제법 공기가 차가워진 어느 겨울밤, 한산한 연세대학교 캠퍼스 정원 사이로 유독 한 건물에는 점잖게 차려입은 관객들이 삼삼오오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바로 지난해 11월 27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열린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Korean Doctors' Orchestra)'의 창단연주회를 보러 온 관중이다. 지역과 전공, 나이와 성별과 관계없이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의사들이, 기획한지 2년만에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첫 무대이다. 800석의 거대한 홀을 가득 채운 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연주자들은 놀랍게도 의사다. 이날 만큼은 이들 모두 잠시 흰 의사 가운을 벗어두고, 검은색 연주복을 입고 무대에 올라선다. 수준급 연주에 모두가 잠시 몸을 뒤로 젖혀 숨죽이고 아름다운 선울에 귀 기울인다.
그렇게 음악에 심취해 있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오케스트라를 응시하니, 유독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이올린 활을 따라 몸이 들썩들썩, 무아지경으로 연주에 심취한 흰색 나비넥타이의 이 연주자가 바로 오늘 취재의 주인공, 오케스트라의 퍼스트 바이올린이자 악장을 맡고 있는 오재원 교수다(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음악으로 가득한 오재원 교수의 보금자리
취재를 위해 오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안에 발걸음을 내려놓자 진풍경이 펼쳐진다. 벽면 한 쪽은 밀스타인과 호로비츠를 비롯해 역사를 장식한 음악가들의 명 음반들이 천장 바로 밑 손이 닿지 않는 선반까지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사무 책상과 가장 가까운, 손이 바로 뻗치는 칸에는 LP판들이 바람 샐 틈 없이 메워져 있다. 제작된 지 수십 년은 되었을 터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맞은편에는 턴테이블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누가 봐도 예술을 깊이 사랑하는 이의 공간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그가 수많은 LP판 중 하나를 꺼내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이윽고 바늘 끝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LP판을 찬찬히 훑으면서 베토벤 교향곡 3번이 흘러나온다. 커다란 스피커 두 대를 마주 보고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니, 예술의전당 R석을 방불케 하는 서라운드에 잠시 취재를 잊고 음악에 잠기게 된다.
"클래식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은 마치 최고의 요리사가 정갈하게 만든 음식을 통조림 껍데기에 넣어 먹는 것과 같아요. 디지털 신호로 변환된 음악은 본래의 예술적 혼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 손이 더 가더라도 LP판으로 음악을 듣거나, 직접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온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음악에 대한 그의 비범한 애정에 금세 매료되고 말았다. 무언가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축복에 감사한다고 오 교수는 말한다. 그가 그동안 음악과 함께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Q. 지난 11월 '코리안 닥터스 오케스트라'의 창단연주회가 성공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의사들이 힘을 합쳐 이렇게 큰 음악적 결실을 맺은 것이 놀라운데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모두 진료에 바쁘다 보니 개인 연습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무엇보다 합주를 위해 함께 시간을 맞추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죠. 단원 70명 중에 40명 정도가 교수고 30명 정도는 개원한 선생님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실상 지금까지도 70명이 한꺼번에 모인 적이 별로 없습니다(웃음). 지금 우리 오케스트라 연습 시간은 토요일 4시부터 8시로 정해져 있는데, 4시에 연습실에 모이면 절반 정도밖에 없습니다. 개원한 선생님들은 주말에도 오후까지 진료가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연습 도중에 갑자기 응급으로 연락이 오거나 병원에서 입원 환자한테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봐야 하는 일도 왕왕 있습니다.
4시부터 8시까지 이렇게 귀한 시간에 모이다 보니, 밥도 못 먹고 그냥 생수 한 병 정도만 가지고 집중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다들 그만큼 음악이 좋으니까 오는 거죠. 그런 열정이 없으면 아마 이렇게 하기 힘들 겁니다.
Q. 교수님께서도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신 것 같은데, 아예 음대에 진학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셨나요?
음악이 좋아서 사실 음대에 진학하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죠. 초등학생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공부보다도 바이올린 연습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공을 하려면 더 어린 나이부터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제가 시작한 나이는 현실적으로 너무 늦은 나이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음대의 꿈은 포기했지만, 그게 의대에 진학하고서도 약간 미련이 남았는지 음대생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어요. 예과 때는 4중주나 3중주를 결성해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하면서 용돈 벌이도 했습니다. 우리 모교(한양대학교의과대학)의 오케스트라에서도 악장 자리를 맡아서 활동했는데, 지금 오케스트라 공식 명칭인 '키론 오케스트라'는 40년 전 제가 본과 1학년 시절에 지은 이름입니다.
오재원 교수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어디든 음악이 함께하고 있다
□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Chiron Orchestra 악장 역임
□ 미국 Tennessee German Town symphony orchestra 제1바이올린
□ 미국 Johns Hopkins Medical Ensemble 제1바이올린
□ 미국 Stanford Palo Alto Philharmonic Orchestra 제1바이올린
□ 한양의대 Chiron Orchestra 지도교수 역임
□ KBS 제1라디오(97.3Hz) '뮤직테라피' MC 역임
Q. 대학병원 교수로 계시면서도 음악 교양서적 '필하모니아의 사계 I-IV'를 집필하고, KBS 제1라디오 '힐링 뮤직' 코너 MC 자리까지 무려 4년간 지켜오셨다는 것이 놀라운데요, 이런 음악 활동들을 어떻게 시작하고 이어나가실 수 있었나요?
사실 그게 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책 <필하모니아의 사계>도 처음부터 책으로 내려고 생각한 건 아니었고, 원래는 작은 칼럼으로 시작했습니다. 여기 병원(한양대학교구리병원) 원보에 지금까지도 제가 매달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글을 써내고 있는데, 우연히 <의사신문> 기자가 그걸 본 거죠. 어느날 연락이 와서 <의사신문> 한 면을 줄 테니 연재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더군요. 그렇게 <클래식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2008년부터 매주 정식 연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많은 분이 찾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총 12년 동안 총 500곡의 글을 투고했고, 이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필하모니아의 사계>입니다.
라디오도 정말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습니다. 처음 라디오에 출연한 건 KBS의 이충헌 의학 기자가 진행하던 '라디오 주치의'에서였는데, 제가 소아과 알레르기 전문의 패널로 거기에 몇 번 나가서 의학적인 이야기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충헌 기자가 제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프로그램 끝나는 시간에 10분 정도 시간을 줄 테니 거기에 음악을 한 곡씩 틀어주고 끝냈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하더군요. 그렇게 '힐링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코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라든지,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처럼 라이트한 클래식들,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이 곡 좋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곡들을 위주로 했습니다.
Q. 환자 진료나 연구 일만으로도 무척 바쁘실 텐데, 본업 외에 음악적으로도 이렇게 다양하게 활동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사실 당연히 힘듭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경우도 일주일에 주말만 제외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니까, 제가 진료를 보면서 매일 거기에 갈 수는 없죠.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 치 녹음을 하는데, 그날 총 20회분을 녹음하고 오는 겁니다. 녹음을 마치고 오면 하루 반나절 정도가 지납니다. 굉장히 바쁘지만, 그렇게 4년 정도 라디오 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것도 있지만,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어야만 끝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글 쓰는 게 즐거웠고, 어디 가서 누구한테 이런 음악 얘기해 주는 게 되게 즐거웠습니다.
"대학병원 교수이자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입원한 아이들, 외래로 찾아오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연구논문 쓰고, 의과대학생들을 교육하고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면서 내 뒤치다꺼리도 못 하는 주제에 이를 어찌 매주 쓸 수 있겠나?는 고민이 엄습해왔고 중간에 힘들면 적당히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내가 기댈 수 있는 '나만의 옹달샘'에서 샘물을 조금씩 퍼다가 나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쩐 일이지 샘물은 퍼내면 낼수록 더 청량하고 맑은 물들이 더 넘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필하모니아의 사계 III, 프롤로그 중
Q. 병원 내에서 환우들을 위한 음악회 '키론 트리오와 함께하는 음악 산책'을 꾸준히 이어가고 계시는데요. 처음에 어떻게 음악회를 기획하게 되신 건지, 환우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어느 날 회진을 도는데 한 10살쯤 된 아이가 "선생님 사진 보니까 바이올린 하던데" 하며 대뜸 자기가 선생님 앞에서 연주를 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며칠 후에 진짜로 다인 병실 앞에서 그 아이가 연주 했습니다. 연주를 끝까지 하고는 저에게 3/4사이즈의 그 조그만 악기를 내밀면서 연주해달라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저도 답가를 해줬더니 환아들도 되게 좋아하고 옆에 있던 보호자들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제가 회진 끝나고 나갈 때쯤, 보호자 한 분이 "환자를 위한 콘서트를 한 번 제대로 해보는 건 어떠냐"고 말씀하셨는데, '환자와 보호자도 원한다면 정말 뜻깊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연주회를 처음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피아노도 구매해서 로비에 놓고, 주변에 계신 첼리스트 그리고 피아니스트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어 삼중주를 결성했습니다. 음악회 이름을 '음악 산책'이라고 붙였는데, 환자들이 편한 때에, 언제든 늦게 와도 되고 그냥 몸이 힘들면 일찍 올라가도 되고, 편한 마음으로 들르시라는 취지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휠체어나 침대 같은 것도 들어올 수 있게 장소도 병원 강당 말고 로비로 정했습니다.
저녁 6시 이후가 되면 회진도 끝나고 식사도 끝나고 환자들이 무료하게 TV만 쳐다보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7시에 하면 환자들이 많이 내려와서 봅니다. 한 70, 80명씩 내려와서 볼 때도 있고 그랬어요. 그리고 음악도 너무 어려운 것보단, 영화 음악이나 팝송, 어떨 때는 조용필·최백호 분들의 가요까지도 삼중주로 편곡해서 많이 했습니다. 그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참 좋아했습니다.
사실 환자들하고 의사들의 관계를 보면, 의사는 딱딱하게 의학적인 얘기만 하게 될 때가 많고, 특히 소아청소년과는 어린아이들도 많다보니 의사를 어렵게 생각하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환자를 위한 음악회를 여니까 환자들이 관심을 둔다고 느끼고 더 가깝게 느끼는 것 같아 뿌듯하죠.
Q.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할 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환자들에게 다가간다는 점이 무척 특별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이상향이 있으신가요?
그리스 신화에 '키론(Chiron)'이라는 신이 있는데, 특이하게 음악의 신이면서 동시에 의학의 신으로 묘사됩니다. 고대에는 의학이라는 게 과학적인 치료를 하지는 않고 주술과 비슷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술이라는 데는 항상 음악이 따라다닙니다. 몸이 상처를 입거나 마음에 좌절이 있는 사람을 치료하면서 편안하게 옆에서 류트를 타준다든지, 노래를 불러준다든지, 그렇게 음악을 통해서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가 되는 겁니다. 아픈 아기의 곁에서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한 가지 더하자면, 키론은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들에게 무술을 가르쳤던 교육의 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게는 닮고 싶은 상징과 같은 존재입니다.
Q. 현재 개인적인 목표나 꿈이 있다면?
여러 가지 행복 중 최고의 것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일입니다. 인생은 결국 빈손으로 나서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죠.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 내가 가진 것들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지금까지 학술 서적과 교양서적도 많이 썼고, 거기에 논문도 쓰고 음악 활동도 하려다보면 사실 저녁 10시까지도 집에 못 가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하지만 그게 저한테는 행복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로 나중에는 의료봉사를 해보고 싶네요.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나 외국으로 나가서 의술을 베풀고 싶습니다.
Q. 끝으로, 의대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합니다.
의사는 정말 자기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바쁘고 힘든 일이 많아도 자기만의 시간에 몰입하는 동안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의사가 환자에게 더욱 관대하고 보살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의학적 지식을 쌓는 데만 몰두할 게 아니라 다방면으로 관심과 취미를 가지며 진정으로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다양한 아픔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환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가족이 생기고 업이 생기면 굉장히 바쁘고 30, 40대는 금방 지나갑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당장 시작하고, 열정을 쏟고 싶은 일에는 서슴지 말고 도전하길 바랍니다.
후학에게 지혜를 전하는 오재원 교수에게 문득, 류트를 든 키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