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데일 패러독스에 빠진 의료계, 석방은 언제쯤?

스톡데일 패러독스에 빠진 의료계, 석방은 언제쯤?

  • 채동영 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desk@doctorsnews.co.kr
  • 승인 2025.02.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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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영 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부대변인

ⓒ의협신문
채동영 전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겸 부대변인

“곧 석방될 거야.”

“크리스마스 전에는 풀려나게 될 거야.”

“부활절 전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베트남전에 포로로 잡혀있던 미군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석방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으로 버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하루하루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환경을 버티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 치부되고는 한다. 그러나 기대가 실현되지 않는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군 포로들은 석방되지 않았고 이번에는 다음 추수감사절을 기다렸다. 수년간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며 그들은 빠르게 지쳐갔다. 근거 없는 낙관이 결국 절망을 더 키운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 반면에 이 사연의 주인공인 제임스 스톡데일은 완벽하게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언제 석방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닥쳐올 어려움에 대비하고 견뎌야 해.”

미 해군 장교였던 제임스 스톡데일은 8년 간의 수용소 생활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않고 버텼다. 그는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며 동시에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잃지않았다. 결국 숱한 압박과 어려운 환경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는 데에 성공했다.

지난 1년간의 의료계 상황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과연 죽은 포로에 가까웠는지 스톡데일에 가까웠는지 생각하면 그 답은 명확해진다.

“4월에 총선이 끝나면 포기할 거야.”

“6월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정부도 손 놓을 거야.”

“9월이 되면 내년 의사 배출이 중단되는데 정부는 그걸 견디지 못할 거야.”

결국 의료계의 투쟁은 만 1년이 되었고 봄이 다가오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의개특위를 비롯해 국회에서는 의료계에 불리한 각종 법안만 다수 통과되었을 뿐이다.

대통령의 탄핵은 분명 의료계에 불리한 이슈다. 잘못된 정책을 추진한 총책임자가 없어졌다면 우리는 그 누구와도 이 피해에 대해 협의를 거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지금이 가장 유리한 상황이라며 낙관하고 있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지난 1년간의 투쟁의 피해를 보상받아야 돌아가겠다는 의견 역시 나오고 있다. 탄핵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 뒤에 어떻게 대응할지, 만약 탄핵이 기각당하면 어떻게 할지 그에 대한 대책조차 세우지 않고 있는 상태로 말이다.

이들이 이렇게 강경한 이유는 이번 싸움에서 모든 것을 얻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잘 들어보면 다른 뜻을 하나 더 내포하고 있다. 이번에 돌아가서 다시는 이러한 상황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연약한 속뜻 말이다. 의료계는 2000년에도 2014년에도 2020년에도 2024년에도 투쟁을 했지만, 투쟁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바쁜 일상과 힘든 수련, 공부 시간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세상은 0과 1이 아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투쟁하고 패배하면 절망에 빠지는 의료계의 방식으로는 매번 패배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투쟁이 끝나도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는 긴 싸움을 준비해야 하고 지난 1년을 허무하게 날린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얻어야 할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지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람시는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고 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석방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을 먼저 직시하고, 그럼에도 승리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일어서서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앞에는 석방되지 못한 채 쌓여가는 동료의 시체만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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