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수도병원과 '테세우스의 배'

국군수도병원과 '테세우스의 배'

  • 황건 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전 인하의대 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5.04.0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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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전문의(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
황건 전문의(국군수도병원 성형외과)

약 6개월 만에 국군수도병원 안과에서 시력, 시야, 안저 검사를 받았다. 본원에서 근무하며 주기적으로 세 차례 검사를 받았는데, 나를 진료해주던 망막 담당 안과 군의관은 다음 달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후임이 누가 올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동안 진심으로 나를 돌봐준 그의 '고진선처(苦盡善處)'에 감사하며, 전임자처럼 좋은 후임 군의관이 오길 바랐지만, 문득 서운함과 함께 작은 걱정이 스쳐갔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지난주에 본 영화 미키 17이 떠올랐다. 미키 17은 인간 복제와 대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미키는 위험한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죽을 경우 자신의 기억과 인격이 새 복제체에 업로드돼 다시 '부활'한다. 이 과정에서 '테세우스의 배'라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즉, "모든 부품을 새로 교체한 테세우스의 배가 과연 여전히 같은 배인가?"라는 철학적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국군수도병원은 1949년 7월 설립됐다. 처음 '수도육군병원'으로 시작해 국군수도통합병원을 거쳐 1984년부터 '국군수도병원'으로 불리게 됐다. 

테세우스의 배에서 부품이 하나씩 교체되듯, 군병원에서는 군의관과 간호장교들이 일정한 기간마다 바뀌게 된다. 의사, 간호사, 행정 인력 등 주요 구성원이 순환하지만, 병원이라는 기관은 여전히 그 이름으로 존재하며, 환자들을 돌보며 항해를 계속한다. 그래서인지, 바뀌는 사람들 속에서도 '국군수도병원'이라는 배는 항로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병원에서는 교수들이 장기간 근무하며 자신만의 연구와 진료 스타일을 쌓고, 후학 양성을 통해 일종의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반면, 군병원은 인적 구성이 자주 바뀌는 구조상 이러한 연속성이 느슨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연속성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통해서도 유지될 수 있다.

테세우스의 배가 동일한 배로 간주 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부품이 바뀌어도 부품 간 연결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 한, 배는 계속 같은 배로 항해할 수 있다. 

군 병원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사람'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병원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군수도병원의 궁극적 목적은 군인과 군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전시 의료 시스템을 준비하는 데 있다. 이 비전이 흔들리지 않고 공유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바뀌어도 병원의 '정체성'은 유지된다. 선배 군의관들이 남긴 의무기록, 연구 성과, 진료 매뉴얼은 후임 군의관들에게 일종의 '지도'나 '설계도'처럼 남아, 배의 항로가 달라지지 않도록 돕는다. 또한, 군 병원에서 선후배 간의 전통과 가르침은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3년 정도 근무하는 단기 군의관일지라도, 그들이 그동안 쌓은 경험은 후임자에게 전수된다. 이 연결 고리가 유지되는 한, 군병원은 단순히 개인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적 공동체로 기능한다.

결국, 병원이 '테세우스의 배'처럼 영속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개인의 변화와 관계없이 지속되는 정신(spirit), 즉 공동체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축적된 지식과 전통 덕분이다. 군의관들이 남기는 연구 결과와 논문들, 후배들과의 연결은 그 이후 세대로 이어지며, 이 연결이 끊어지지 않는 한 국군수도병원이라는 배는 항해를 계속할 것이다.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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