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MLE 접수해놓고 못보는 기막힌 사연

USMLE 접수해놓고 못보는 기막힌 사연

  • 이현식 기자 harrison@doctorsnews.co.kr
  • 승인 2010.04.0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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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 응시자 항공편·호텔 다 예약했는데 복지부 지침개정 '불가'
차년도 연가라도 미리 쓸 수 있게 '협조공문' 보내는 관심 필요

최근 미국 의사시험인 USMLE에 응시하기 위해 접수를 해놓은 공중보건의사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지난해 신종플루 때문에 하루에 수백명의 환자에게 접종하는, '중노동'을 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준비했던 USMLE다. 그런데 올해 보건복지부는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을 개정해 기존에 외국에서 USMLE를 보는 경우, 즉 국외시험에 허용하던 공가 3일을 없애버렸다.

'군 복무기간에 꼭 USMLE을 봐야 하나. 그것도 공가(공적 휴가)까지 받아가며?' 처음 이 문제를 접했을 때 기자도 이런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사연을 취재해보니 그리 간단하게 넘길 사안이 결코 아니었다.

복지부가 이 지침을 개정한 것은 지난 2월 27일이었고, 시행일은 불과 이틀 뒤인 3월 1일이었다. 여기에 주목하면서 이 '기막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사례1: 보건소장·병무청장 허락 받고도 '퇴짜'

공중보건의사 이수혁 씨(가명)는 올해 1월 초 USMLE 스텝 3에 접수했다(※USMLE는 스텝 1·2·3이 있고, 스텝 2는 필기인 CK과 실기인 CS로 구분된다). 스텝 3의 경우 전 단계와 달리 100일 이내에 시험에 응시해야 하기 때문에 그는 3월 22(월)~23일(화) 괌에서 보는 일정을 택했다.  비행기표와 호텔을 예약하고 비용을 지불한 뒤 보건소장에게 허락을 받고 군 복무 중이기 때문에 필요한 병무청장의 허가까지 받아놨다.

문제는 2월 27일 복지부 지침이 갑자기 바뀌어서 공가 3일을 받을 수 없게 된 것. 2년차 공보의에게는 한 해 9일의 연가가 주어지지만 보통 4월 20일께 배치를 받아 1년 단위로 계산되기 때문에 3월에는 이미 다 써버린 경우가 많다. 큰일 났다 싶어 확인해보니 연가가 하루 남아 있었다. 다시 이리저리 수소문한 결과 1년차 때 안 쓴 연가 하루를 더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괌에서 3:00 AM 비행기 탑승, 9:00 AM 보건소 출근

결국 그는 이틀 연가를 내고 토요일인 3월 20일 출국해 괌에서 22일과 23일 시험을 본 뒤 수요일인 24일 새벽 3시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해 당일 아침 9시에 보건소로 출근했다.

"그래도 나는 시험을 봐서 다행인 경우"라고 말하는 그에게 "근데 시험 보기 직전에 공부는 했냐"고 물었다. "공부는 많이 못했다"는 대답이 한참 뒤에 돌아왔다. 그는 "공보의에게 꼭 USMLE를 보는 데 공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비행기와 호텔까지 비용을 완납한 상태에서 복지부 지침이 갑자기 개정된 것을 나중에 알았을 때 시험을 못 볼까봐 너무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에 문의했을 때 3월 1일 이전에 공가 결재를 받지 않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휴가문서의 결재는 보통 휴가 떠나기 일주일 전쯤에 받기 때문에 구두로 보고하고 허락을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3년차 때 쓸 연가를 미리 당겨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에 소속 보건소에 제출할 공문이라도 보내달라고 복지부에 요청했을 때 퇴짜맞은 것은 쓰라린 기억이었다고 전했다.

#사례2: "연가를 안 주니까 공가를 쓰려고 하죠…"

보건지소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 강태양 씨(가명)는 올해 2월 USMLE 스텝 2 CS(Clinical Skills)에 접수했다. 스텝 2 CK는 접수 후 1년 이내에 횟수의 제한 없이 응시할 수 있는데 한번 떨어지면 6개월 동안은 다시 못보기 때문에 되도록 빠른 응시날짜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10월에나 볼 생각이다. 복지부 지침이 개정돼 공가 3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연가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제도와 현실과의 괴리에 대한 답변이 돌아왔다. 연가 결재를 보건소장이 아닌 면장이 하도록 돼 있는데 월요일이나 금요일은 휴가를 안 준다는 것이다. 공보의 2년차인 그는 연가 9일과 반가를 포함해 10일의 휴가를 쓸 수 있지만 미국에 갔다오는 데에만 3일이 걸리니까 연가를 쓸 수 있더라도 정말 시험만 달랑 보고 와야 한다.

그는 "미리 가서 공부를 하기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쉬려면 공가라는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며 "스텝 1이나 스텝 2 CK(Clinical Knowledge)는 국내에서 볼 수 있어서 연가를 사용해도 되지만 이건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공보의 이후 생활도 대비해야죠"

그는 매년 신규 배치되는 의과 공보의 700~800명 중 100명 정도는 USMLE 응시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원 120명인 의대를 졸업한 그는 자신을 포함해 함께 온 13명 중 7명이 USMLE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만큼 이번 지침 개정으로 타격을 받은 공보의들이 많다는 것이다.

공보의들이 USMLE에 응시하는 이유로는 미국에서 수련을 받거나 활동하고 싶은 경우도 있고, 송도에 들어오는 NYP나 존스홉킨스 같은 미국계 병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란다. 또한 인기 있는 수련기관인 서울아산병원은 인턴을 선발할 때 USMLE 스텝 1에 합격하면 가산점 0.5점, 스텝 2 CK는 가산점 1점을 부여하고 공보의 임상경험 3년에 대해 가산점 3점을 주기 때문에 일부러 인턴과정을 밟지 않고 공보의로 입대해 USMLE에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미리 알았더라면 휴가 남겨놨겠죠" 

이상의 사례들을 보면 공보의들의 푸념은 외국에서 USMLE에 응시하는 데 주던 공가 규정을 삭제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유예기간이나 경과규정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리 알았더라면 개인 연가를 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연가의 기준이 4월 20일께부터 1년이기 때문에 복지부 지침이 3월 1일로 개정되면 3~4월 응시자들은 시험장에 가보지도 못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이다. 특히 5~6월에 응시할 예정인 공보의들도 많은데, 앞서 언급했듯이 연가는 공가와는 달리 자유롭게 쓸 수 없어 고민하고 있다.

복지부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문변호사에게 자문까지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3월 1일 이전에 USMLE에 접수한 공보의들을 구제할 경우 역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복지부, 고민은 했지만 답변은 'NO'

복지부 관계자는 "언제 시험에 접수했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공가 결재를 개정된 지침이 시행되기 전에 받았느냐는 것"이라며 "3월 1일 이전에 접수했다고 해서 공가 규정을 소급적용하는 것은 무리다"고 말했다.

그는 "자문변호사의 검토 결과 3월 1일 이전과 이후에 접수한 공보의들을 다르게 대우할 경우 오히려 차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번 지침 개정이 공보의들에게 불리한 것은 아니다"며 "국외시험 응시를 위한 공가 3일이 없어진 대신 (인턴이나 펠로우 시험과 같은)승진·전직시험을 위한 공가 1일이 생겨났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공보의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USMLE 응시를 위한 공가 3일 규정은 불과 2년 전 인턴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부여하던 공가 7일을 없애는 대신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복지부가 이번 지침 개정을 독단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및 시도 공보의 대표들과 협의해서 진행한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복지부 관계자들도 공보의들의 딱한 사정에 공감도 표시했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규제만 하지 말고 배려도 좀 해달라"

하지만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공보의들은 대부분 배치되기 이전부터 USMLE 응시에 대한 공가 규정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즉 공보의들의 기대는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뢰라는 것이다. 이번 지침 개정으로 피해를 입은 공보의들은 행정소송까지 고려하면서 변호사에게 법률적 검토를 의뢰해 승소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까지 확보한 상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접수를 한 공보의들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선고까지는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실제 이득이 없을 수도 있고, 오히려 '소의 이익'이 없다고 각하될 수도 있다. 공가인지 연가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잖아도 일반 사병의 군 복무기간 축소 흐름과는 달리 의사들의 군 복무기간이 길다고 해서 헌법소원까지 준비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번 문제 해결의 열쇠는 결국 복지부가 쥐고 있다. 예를 들어 2년차 공보의의 경우라면 3년차 때 쓸 연가를 미리 사용할 수 있도록 복지부가 일선 보건소와 보건지소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방법이 있다. 일선 보건소에서 연가를 미리 주려면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보의 생활을 마치고 나서 큰 도움이 될 USMLE에 응시하기 위한 연가를 내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줄 수도 있다. 국방부의 경우에는 사병들의 복지를 위해 병영 내에서 대학 학점까지 취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음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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