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혁 서울대 명예교수
제마(濟馬) 하권익(河權益) 박사가 췌장암으로 2010년 4월 25일 오전 6시 40분 삼성서울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0세이니 필자보다는 17세 연하인 후배인데, 후배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한 분이다. 필자와의 친교는 각별한 바가 있어 애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하 박사는 제주시에서 태어났으며 1968년에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국립경찰병원 진료부장,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스포츠의학과장, 대한정형외과학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의무의원 등을 지냈다. 1980년대 초반에는 국내 처음으로 대한스포츠임상학회를 만들어 초대, 2대 회장을 지내는 등 스포츠 의학발전을 이끌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찬호·박세리·이승엽·김동성 등 최정상급 선수들이 고인에게 재활치료를 받았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96~2000년 2대와 3대 삼성서울병원장을 맡아 삼성의료원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일은 주지되어 있는 사실이다. 그 후 병원경영자로 변신해 보훈병원장, 을지의대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2월에는 중앙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맡았다. 두산그룹회장이 된 박용현 전 서울대병원장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중앙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으로 취임한 후 필자는 여러 차례 고인과 만나 그의 포부와 계획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재빠르게 움직이고 예리한 판단력과 추진력을 발휘하는 분이었기에 나는 중앙대의료원의 급속한 발전을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그는 췌장암 진단을 받고 8개월 후인 2009년 10월에는 의료원장직을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고인은 모교인 서울의대 동창회장직을 2005년부터 4년간 2대에 거쳐 맡아서 봉사했다. 재벌이 아닌 봉급자이지만 그의 활동은 눈부셨다. 강신호·이길여 전임 회장들의 뒤를 이어 받은 그는 동창회 발전을 위해 헌신적 노력을 했으며, 동창회 기금으로 거액을 마련하기도 했다. 2005년에 우리들병원 명예원장직을 맡기도 했는데 그가 보수를 전액 동창회에 희사한 것은 유명한 실화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기적을 만든 인물같이 느껴졌다.
필자와의 인연 가운데 잊지 못하는 것은 서울의대 제1회 동창 중 일제강점 당시 소위 조선민족독립협동당에 가담했던 학우가 11명이었는데 그중 생존자인 정성장(鄭聖璋)·김교명(金敎命)·임광세(林光世)·이상일(李相一)·필자와, 건국동맹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김종설(金鍾卨) 형들에게 동창회장의 이름으로 현창패(顯彰牌)를 마련해준 일이다. 고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창패를 받은 선배들에게 칭송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고인에게 충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뜻을 올린다.
하 박사의 언변은 유명하다.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新造語)도 수 없이 많다. 모임 때마다 분위기를 잡고, 좌중을 웃기던 그의 모습을 이제는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아쉽고 쓸쓸한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하'씨는 하나님의 손자들이니 잘 알아두라는 그의 농담은 상당히 진지하기도 했다.
지난 3월 30일(화) 롯데호텔에서 서울의대 동창회 총회가 열렸다. 고인에 이어 동창회장직을 맡은 박용현 회장이 마련한 만찬모임이었다. 필자는 이날 저녁 참으로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모자를 쓰고 휠체어를 탄 하 박사가 나타난 것이다. 하 박사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야위었고,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헤드테이블에 마련된 자리에 휠체어가 섰다. 이길여 경원대 총장과 필자 사이였다. 필자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이제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으로 인사 올립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하 박사, 무슨 말씀을 하는거요, 하 박사 파이팅"하면서 이길여 총장과 함께 격려하기는 했지만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날 하 박사는 역대동창회장에게 수여하는 공로패를 받기 위해 일부러 나온 것이었다. 참으로 그의 애교심과 불굴의 정신은 대단했다. 결국 이날이 그를 이 세상에서 만난 최종의 날이었다. 그는 가냘픈 목소리로 동창회원들에게 인사를 한 후 먼저 떠났다. 지금도 그의 뒷모습이 눈앞에 방불한다.
26일 오후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그의 빈소를 찾아갔다. 가운을 입고 펜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을 보고 또 보았다. 반갑다고 인사하는 듯한 그의 모습이 몹시나 인상적이었다. 두 아드님은 선고의 뜻에 따라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3월 30일 고인을 만난 것이 끝이라고 했더니 나가지 말라고 무던히 말렸지만 결국 동창회에 참석하더라는 미망인의 말씀이 고인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정형외과와 스포츠 의학의 대부이고, 병원행정의 권위자였던 하 박사에게 마음으로부터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손인 그에게는 영원한 축복이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