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이은 또 하나의'판도라 상자'
'무상복지' 차기 총선·대선 이슈 부각
Cover Story
민주당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2000년 건강보험통합과 의약분업제도 도입에 이어 이번에는 민주당이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 등록금 등 이른바 '무상복지'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민주당은 1월 6일 정책의원총회에서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입원진료비의 건강보험 부담률을 현행 61.7%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수준인 90%까지 획기적으로 높여 의료비본인부담률을 10%까지 줄이고, 본인부담 병원비 상한액을 최대 100만원으로 낮춰 실질적인 무상의료를 실현한다"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민주당은 8조 1000억원만 더 확보하면 실질적인 무상의료 실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무상의료(8조 1000억원)·무상급식(1조원)·무상보육(4조 1000억원)·반값 등록금(3조 2000억원) 등 이미 당론으로 정한 16조 4000억원에다 추가로 '일자리'와 '주거 복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재원을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민주당은 부자감세 철회·조세 감면 축소·건강보험 징수체계 개혁 등을 통해 보험료 인상 등 증세를 하지 않고도 20조원 가량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평균 건강보험료가 7만 6000원인데 각 개인당 14만 4000원을 내야만 민주당이 주장하는 무상의료가 가능하다"면서 "민주당이 말하는 이른바 무상의료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이 30조원 더 필요하다.
이 또한 국민의 혈세로 가능한 것"이라며 "민주당 무상 시리즈는 '공짜'로 포장한 세금폭탄이자 국민 기만극"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무상의료'에 대해 각계각층의 진단과 대안도 엇갈리고 있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방향성과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보편적 복지프로그램 4개 한다고 나라가 망하진 않는다"는 무상복지 지지자들이 있는가하면 "우리나라 재정은 현재의 복지수준을 유지해도 20∼30년 후엔 재정 부담이 2배 이상 늘어날 수밖에 없다.
복지예산을 급격하게 늘리면 재정이 버텨낼 수 없다"는 비판적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열쇠는 역시 돈이다. 여야 간에 재원 조달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세금·세수 조정·보험료 등 모든 대안이 결국 재정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정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무상의료의 취지가 국민을 위한 건보 보장성 강화라는 면에서 방향성에는 공감하나, 무상이라는 용어가 국민에게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의료공급자와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재원 마련과 함께 진료비 지출에 대한 합리적 대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무상의료' 실체는
민주당 정책위원회가 제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의 목표는 향후 5년 간 단계적으로 전국민의 입원진료비 본인부담을 10%로 축소하고, 외래진료비 본인부담을 30∼40%로 줄이며, 병원비 본인부담상한액을 100만원(현행 400만원)으로 인하해 실질적인 무상의료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4대 원칙으로 ▲의료보장의 원칙(필수의료 이용 보장·의료비로 인한 가계파탄으로 국민을 보호) ▲재정부담의 순차적 부담 원칙(정부→의료계→국민) ▲단계적 시행의 원칙 ▲민주당 책임의 원칙 등을 제시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필수의료 중 비급여 의료를 전면 급여화하고, 서민부담이 큰 간병·상병 등의 비용도 급여 대상에 포함시키는 안이 들어있다. 여기에 차상위 계층을 의료급여 대상으로 재전환시키고, 저소득층 보험료 면제와 무이자 대출 등의 방안도 담았다.
민주당은 진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지출구조 합리화를 위해 단계적으로 포괄수가제(입원)와 주치의제도(외래)를 도입하고, 중장기적으로 총액계약제를 도입하는 등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병상과잉 현상 억제 및 지역간 불균형 해소와 주치의제도 도입을 통해 적정진료를 확보하고, 지방의 공공의료기관 설립을 유도해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심사평가원의 기능 강화와 진료수준·진료비 공개 등을 통해 소비자의 합리적인 선택을 보장하고, 건강마일리지제도를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참여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의 가입자 권한을 확대하고, 민간의료보험법(가칭)을 제정,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분담시키는 안도 내놨다.
8조 1000억원 VS 30조원 이상
민주당은 8조 1000억원이면 실질적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데 반해 한나라당은 30조원 이상이 들 것이라며 반박했다.
이규식 연세대 교수(보건과학대학 보건행정학과)는 민주당의 무상의료안이 시행될 경우 2009년 48조 4000억원인 총 의료비가 2015년 120조 9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계했다. 현행 건강보험료를 3배 이상 인상해야 재정수지를 맞출 수 있는 규모다.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1월 24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이 '무상복지 시리즈'가 국민으로부터 '세금폭탄,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는 질타를 받자 당 내부에서 '이름 바꾸기'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며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선거용 인기영합 정책에만 혈안 되어 있는 민주당의 태도는 국민에게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배 대변인은 "민주당의 교묘한 '이름 바꾸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면서 "지난 해 9월, 민주당은 무상의료의 전신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을 내놓았으나 국민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러자 올해 1월 '무상의료'라는 파격적인 이름을 달아 재탕·삼탕의 정책을 발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배 대변인은 "국가재정은 물론 국민세금과도 직결된 복지정책에 대해 진지한 검토도 없이 '이름 하나 잘 지어서 폼 나게 팔아보겠다'는 민주당의 발상은 전형적인 국민 기만"이라고 날을 세웠다.
파이 키우는 건 맞지만 '재원' 마련 어떻게
어떤 방안이 됐건 보험재정의 파이를 키운다는 면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8조 1000억원으로 과연 '실질적 무상의료'가 가능한지, 민주당의 세부적인 정책 대안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정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재정 추계를 잘못하거나 현실성 없는 재원조달 방안이 정책으로 추진될 경우에는 결국 추가 비용에 대한 부담은 사용자(국민)·공급자(의료계)·정부(채무)가 짊어져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어 여건이 좋지 않다. 건강보험 재정은 2009년 32억원에 이어 2010년 1조 2994억원의 당기적자를 기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올해에도 5000억원 가량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최근 공개한 <건강보험 중·장기 재정전망 연구> 보고서를 통해 국고에서 20%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보험료·수가·신규 보장성 등을 반영하지 않은 채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가정하면 2020년 재정적자가 16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5% 수가인상이 이뤄질 경우에는 전체지출이 2022년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2.5%의 수가인상을 감안해 당기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2010년 5.33%인 직장 보험료율을 2030년 11.69%까지 인상해야 할 것으로 추계했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이같은 전망에는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변화·신의료기술 도입·보장성 추가 확대 등과 같이 큰 폭의 새로운 지출요인을 포함하지 않았다. 정책 변화에 따라 이보다 더 많은 재정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익은 보건의료제도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과 공급자인 의료계의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로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는 2001년 사상 초유의 건보재정 파탄사태가 벌어지자 진찰료와 처방료를 통합하고, 하루 75명 이상 진료한 경우 진료비를 깍는 차등수가제 등 '건강보험재정 안정화대책'을 통해 의료계의 고통분담을 강요했다.
복지부가 이 대책을 통해 절감했다고 공개한 내역을 보면 ▲진찰료·처방료 통합(8745억원) ▲진찰료·조제료 차등수가제 실시(3158억원) ▲야간가산율 적용 시간대 조정(2076억원) ▲주사제 처방료 및 조제료 삭제(5350억원) ▲일반의약품 비급여 확대(4397억원) 등 2조 3726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심사기준 강화(9331억원)·급여기준 합리화(5485억원)·약제비 적정성 평가(2744억원) 등을 통해 1조 7560억원의 재정을 절감한 것을 감안하면 4조 1286억원의 급여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재정 적자의 주된 해결책이 보험료 인상보다는 의료공급자 쥐어짜기에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담배부담금 지원과 함께 의료계에 집중된 건강보험재정 절감 대책이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재정' 문제에 의료계가 민감한 것은 이같은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료비 증가 요인·비급여·보장률 파악 미흡…과소 추계
8조 1000억원이면 실질적인 무상의료가 가능할까? 민주당이 추산한 추가재정 8조 1000억원은 ▲비급여 급여화 및 입원진료비 90% 보장(최대 3조 9000억원) ▲간병(최대 1조 2000억원) ▲틀니(4000억원) ▲치석 제거(1조 1000억원) ▲병원비 본인부담금 상한제(7000억원) 의료 사각지대 해소(8000억원) 등이다.
건강보험 재정 추가조달 방안으로는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범위를 근로소득에서 종합소득으로 확대(2조 9000원) ▲피부양자 범위 축소(1조 3000억원) ▲건강보험 재정수입의 30%(현행 20%) 수준으로 국고지원금 확대(2조 7000억원) ▲국고지원 사후정산제 도입(6000억원) 등 7조 5000억원 규모를 제시했다.
민주당이 추산한 무상의료 재정에 대해 사공진 한국보건행정학회장(한양대·경제학부)은 "보장성을 1% 올리는데 5000억원이 든다"며 "이것만 15조원 이상이 들고, 상병수당·간병서비스 급여화 규모에 따라 20조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2010년 건강보험 입원진료비 11조 5000억원을 기준으로 입원진료 보장률 61.7%를 90%까지 달성하기 위해서는 5조 3000억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계산했다.
본인부담 100만원 상한제·의료 사각지대 해소·간병서비스·상병수당·노인틀니 등을 합하면 최소 10조원 이상이 들며, 민주당이 목표 달성 시점으로 상정한 2015년에 이르면 추가재정은 이보다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이 뿐 만이 아니다.
적게 내고, 적게 서비스를 받는 소위 '저부담-저급여-저수가' 체계는 30년 전에 설계했다. 국민소득과 생활수준은 물론 의료 요구와 의료서비스 수준이 현저하게 높아졌다. 언제까지 30년 전에 설계한 낡은 체계를 끌고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계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의료수가의 원가 보상문제도 있다. 원가 100%를 기준으로 응급의료기관의 원가는 69%, 산부인과 분만실은 58%다. 환자 한 명을 볼 때마다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산부인과에서 분만실이 사라지고 있다. 2010년 상반기 산부인과가 설치된 전국 병의원 3668곳 가운데 분만실이 없는 곳이 72.5%(2661곳)에 달했다. 전국 230개 시군구 가운데 분만실이 없는 곳이 24%(55개)에 이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파악한 전체 의료기관의 평균 원가보존율은 73.9%에 불과하다. 원가에 못미치는 저수가체계가 30년 넘게 계속되면서 생명을 살리는 필수영역이 외면을 받는 대신 비만·피부관리 등 비급여 영역으로 눈을 돌리는 의료왜곡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원가 수준만 보장해도 26%의 진료비 인상요인이 있다.
민주당의 무상의료 정책에는 '저부담-저급여-저수가' 체계를 어떻게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체계로 전환할 것인지, 원가는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건강보험 보장률 62%라는 통계도 명확치 않다.
건보공단이 2008년 실시한 조사결과를 인용했다지만 6만 2462개 기관의 0.95%(595개)에 불과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정확성에 한계가 있다. 실질 보장률이 50% 안팎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62%와 50% 사이엔 12%의 간극이 있다. 보장성을 1% 올리는데 5000억원이 든다고 하면 무려 6조원의 차이가 난다.
비급여의 경우 현황 파악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은상준 계명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의 발표에 의하면 비급여 진료비 규모 현황 파악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2008년 6조 2267억원에서 2009년 6조 7744억원으로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진료현장에서 환자에게 필요하지만 급여로 인정하지 않아 청구하지도 못하고, 환자에게도 비용을 받을 수 없도록 한 '사각지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가격 낮추면 서비스 이용량 증가 당연
의료비 부담이 낮아지면 의료이용량이 증가하리라는 것은 경제학 원리를 동원하지 않고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민주당 관계자는 "보장성을 확대했다고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병원에 가겠냐?"고 반박하고 있지만 무상의료를 하면 의료서비스 이용량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과거 보건의료정책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2006년 1월 '6세 이하 무상 입원비 정책'이 도입되자 제도 도입 이전 2650억원이던 입원비는 시행 첫 해 3688억원으로 무려 39.2%가 늘어났다. 2007년에도 4513억원의 입원비가 지출되자 정부는 2008년부터 무상 입원비 정책을 포기했다. 식대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었다. 정부는 2006년 6월 병원 식대에 대해 전액 본인부담에서 20%만 부담하도록 건보 지원을 늘렸다. 하지만 재정 지출이 2006년 하반기 2087억원에서 2007년 5775억원까지 늘어나자 2008년 상반기에 환자 본인부담률을 50%로 올려야 했다. 건보 지출은 2008년 상반기에 2392억원 수준으로 다시 하향 곡선을 그렸다.
2006년 참여정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급여제도 혁신에 대한 국민보고서>를 통해 1종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무상의료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몸이 불편하면 곧장 병원에 가는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유 장관은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비난을 무릅쓰고 의료급여제도를 개선하는 악역을 맡기도 했다.
사공진 한국보건행정학회장은 "가격이 떨어지면 서비스 이용이 늘어나는 것은 기본 원리"라며 "6세 미만 아동의 입원비를 무료로 했을 때 이용이 늘어났던 것처럼 무상의료를 하면 의료서비스 이용량이 빠르게, 많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은 보건의료정책의 역사 속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의료계·국민 '민심' 듣지 않은 채 제도 설계
민주당의 '실질적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안에는 ▲종합소득으로 부과 기반 확대 ▲피부양자 범위 축소 ▲국고지원 확대 및 사후정산제 등 당장 법안만 개정해도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안들도 있어 눈길을 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도 설계 과정에서 국민과 의료계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고 동의 과정을 거쳤느냐는 점이다.
국민 대상 공청회나 토론회 등 여론수렴 과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보건의료 분야와 관련해서는 의료공급자단체와 어떠한 교감도 없었다. 특히 총액계약제와 같은 획기적인 지불제도 개편안에 대해 이미 의료계는 '수용 불가' 방침을 천명, 정책이 가시화됐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반발이 예상된다.
민주당 무상의료 정책의 상당부분은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에서 제안한 <건강보험 개혁과 향후 과제>를 차용하고 있다. 이 교실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 중 일부는 2000년 건보재정 통합과 의약분업제도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장본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은 "부자조합들이 쌓아놓은 건강보험 재산을 활용하면 보험료 인상을 하지 않고도 보험혜택을 확대할 수 있고, 의료의 질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데 이어 의약분업까지 시행하면 의약품 사용량이 줄어들어 의료비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정치권과 국민을 선동했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경제학과·한국연금학회장)는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로 1월 19일 열린 '대한민국 20대가 알아야 할 진실:20대에게 등짐을 지우는 무상·공짜·복지 포퓰리즘의 함정' 주제 연속 토론회에서 "복지부문은 그 속성상 포퓰리즘(populism)적인 요소가 강해 한 번 선심성 제도가 시행되면 이를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특성이 있다"며 "이미 복지국가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과도한 사회보장급여로 인한 장기실업자 증가와 정부에의 의존 성향 심화와 경직적인 복지비 지출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약화와 경제성장의 둔화 등 이른바 '복지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복지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구조적 접근을 하지 않으면 막대한 지출에도 불구하고 빈곤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급증하고 있는 사회보장지출 및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는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재정 안정화를 위해 본격적인 개혁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중근 한국지속가능기업연구회장(장안대 경영학)은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포퓰리즘이 되지 않으려면 정책을 제시할 때 구체적인 재정 규모와 재원조달 방안은 물론 실행계획까지 제시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고, 동의를 거쳤냐 하는 점"이라고 했다.
조 회장은 "국방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분단 현실을 망각한 채 환경이 다른 서유럽식 복지 모델을 강조하면 어떻게 재정을 감당할 수 있겠냐"면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한 대안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공진 한국보건행정학회장(한양대·경제학부)은 "상병수당·간병비 등까지 모두 지원할 경우에 30조원이 넘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제시한 8조 1000억원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지적했다.
"재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정치권이 이런 정책을 내놓으려면 국민에게 비용이 얼마나 들고, 부담이 늘어나는 부분에 대해 정확히 공개하고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사공진 회장은 "'무상의료'는 달콤하지만 결국 국민이 내는 세금이나 보험료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의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 정책을 '무상'이라며 내놓는 것은 책임있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무상이 성행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의료수요도 폭증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사공진 회장은 "재원은 한정돼 있는데 복지에 과다하게 투자하면 반드시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를 공부한 학자들이라면 이런 정책을 제안하지 못했을 거예요. 경제학을 알면서도 그랬다면 위선자라는 소릴 들을 겁니다."
사공진 회장은 "무상의료를 하게 되면 세금과 보험료가 2배 이상 오르고, 결국 진료비 총액에 메스를 댈 것"이라며 "의료서비스의 질도 퇴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상이라는 광풍이 한 번 불기 시작하면 재원 조달이나 확보 같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묻혀버릴 수 있습니다."
사공진 회장은 "적자 상태인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보험료와 보장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라고 조언했다.
사공진 회장은 1979년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해양연구소 연구원·KDI 초빙연구원·한국보건사회연구소 초빙연구원·한국의료관리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1997년부터 한양대에 몸담고 있다.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장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자문위원·건강복지사회를 여는 모임 상임대표를 맡고 있으며, 지난해 한국보건행정학회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