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휘 성애병원 PET-CT센터 소장
"공부하는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스승들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고픈 것도 말하자면 일종의 '호기심'이라 할 수도 있고, 또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촛불을 켜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박용휘 성애병원 PET-CT센터 소장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며 "요즘엔 뒤늦게 책장을 뒤적거리고 자료를 만지작거리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고 말했다. |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감마교정을 하기 전에는 판별해 낼 수 없었던 병변들이 마치 마술처럼 눈에 들어왔다. 감마교정을 거친 후에는 어느 부위에 어떤 유형의 골절이 있는지, 어느 부위에 부종이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게 됐다.
종전에는 두루뭉술할 수밖에 없었던 스캔 소견이 특정 병변까지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는 차원으로 지평을 넓힌 것.
"소견의 상세함과 진단가치는 MRI나 CT에 버금갑니다. 골절의 종류에 따라서는 진단하기가 더 분명하면서도 더 쉬울수도 있습니다."
성애병원 연구팀(전호승 정형외과·김장민 영상의학과)과 가톨릭의대 연구팀(박정미 여의도성모병원 영상의학과·정용안 인천성모병원 영상의학과·김성훈 서울성모병원 핵의학과·정수교 서울성모병원 핵의학과)을 비롯해 미국 텍사스대학의 에드먼드 김 교수(MD앤더스암센터 방사선 및 핵의학과)가 박 소장의 연구에 가세, 논문을 완성했다.
박 소장팀은 잠재성 골절의 MRI 소견과 핀홀 골스캔 영상을 감마 교정한 새로운 영상을 비교한 결과, 잠재성 골절의 특이한 소견을 정확히 포착해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 논문은 지난해 <Skeletal Radiology>(근골격계 방사선학)을 통해 발표됐다.
단순 X선사진에서는 보이지 않고, MRI나 MDCT를 이용해야만 진단이 가능한 잠재성 무릎골절을 저렴
박 소장은 이 논문을 근거로 특허를 신청, 최근 '잠재성 외상성 골병변의 정밀진단을 위한 바늘구멍 골 스캔의 감마교정방법 및 장치'라는 특허를 받았다.
"바늘구멍 감마카메라는 진단이 쉽기도 하고 검사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감마카메라는 개발도상국에도 널리 보급돼 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높다고 할 수 있죠."
"바늘구멍 골스캔의 감마교정방법을 이용하면 지금까지 진단이 어려웠던 잠재성 골절 뿐 아니라 골 타박·부종·출혈 등의 병변까지 진단할 수 있다"고 설명한 박 소장은 "최근에는 이 방법이 골절 이외에도 골감염·골종양 등 여러 골·관절·근육계 질환의 정밀진단에 크게 쓸모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귀뜸했다.
박 소장은 이번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종합해 자신이 집필한 <Combined Scintigraphic and Radiographic Diagnosis of Bone and Joint Diseases> 제4판 개정판에 대폭 반영하는 집필작업을 하고 있다. 신판에는 'Gamma Correction Pinhole Scan Analysis'라는 부제를 달기로 했다.
슈프링어 출판사가 발간한 이 책은 지난 1994년 초판 발행 이후 2000년 2판, 2006년 3판을 발행하면서 이 분야 전공자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제4판 개정판은 전자책(e-book)으로도 출판, 영구 보존하게 된다.
박 소장은 169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과학저서 전문출판사인 슈프링어에서 개정판을 포함 모두 5권의 영문교과서를 펴냈다. 슈프링어는 박 소장의 활발한 집필활동과 연구업적을 인정, 지난 2009년 명예고문으로 위촉했다. 아시아 의학자로는 처음이다.
최근까지 박 소장이 국내외에 발표한 논문은 모두 380여편. 1995년 가톨릭의대 정년 퇴임 이후에만 30여 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박 소장의 연구실에는 학문을 권유하는 주자(朱子)의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이란 글이 걸려 있다. 책장에는 낡고 허름한 서적과 학술지 그리고 해묵은 골 스캔사진과 X선 사진이 빼곡하다. 최근에 모은 귀중한 자료들은 컴퓨터에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아담한 연구실이야 말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라며 "많은 좋은 분들의 배려로 지금도 공부를 할 수 있고, 환자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을 가슴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애병원은 PET-CT·핀홀 전용 감마카메라·방사성 요오드 치료병실 등 대학병원 못지않은 핵의학 장비와 시설에 투자했다. 박 소장이 계속해서 새로운 연구와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지원이 뒷받침 됐기 때문.
"많은 연구비와 인력을 지원받아야 만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의 아픔을 낫게 해 드리고 건강을 지켜드리기 위해 무엇이 부족한지,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캐 들어가다 보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박 소장은 책장에서 1942년에 L. R. Sante 교수가 저술한 낡은 책 한 권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줬다.
"군의관 시절에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한 이 책은 나에게 가장 귀중한 보물 중 하나입니다. 70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참고할만한 중요한 내용이 꽉 차 있지요."
박 소장은 "오래도록 꺼내보는 책을 써보고 싶다"며 권학문의 마지막 대목인 '階前梧葉己秋聲(계전오엽기추선)'이란 글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