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실 찾아다니고, 전화·게시판·트위터 항의…의료계 공동대응
공동발의 국회의원 12명 중 6명 공식 철회 의사 표명
만성질환자가 처방전에 따른 복약이 끝나는 날부터 4일 이내에 1회에 한해 처방전을 재사용해 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처방전 리필제 법안)이 11일 철회됐다.
대한의사협회는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인천시 남구 을)이 7일 처방전 리필제 법안을 대표발의하자 각 시도의사회에 긴급 업무연락을 통해 공동발의한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발의를 철회해 달라고 설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의협은 처방전 리필제 법안이 발의된 직후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고, 의사의 처방권을 무시한 채 의약분업의 기본원칙마저 부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처사"라며 "처방전 리필제는 진료의 기본조차 몰각한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의협은 "만성질환자라 할지라도 환자의 증상 변화·상태·복약 순응도 등에 따라 그에 맞는 적합한 처방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환자 진료의 기본"이라며 "처방전을 재사용하게 된다면 환자에 대한 의사의 지속적인 추적관리를 차단해 고령환자의 합병증 등 더 큰 위협을 사전에 방지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우려한 뒤 "재사용 처방전 조제로 인해 병세가 악화되고, 약화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비판했다.
처방전 리필제 법안 발의 소식을 접한 지역의사회는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고, 의약분업의 기본 원칙을 뒤흔드는 위험한 법안이라는 사실을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실에 알리고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의협 입법조사팀도 공동발의에 참여한 의원실을 일일이 방문, 처방전 리필제 법안의 문제점을 알리는데 주력, 공동발의 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로 했던 A 모 의원으로부터 공동발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부산·인천·경북·강원 등 지역의사회는 공동발의에 참여한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의료계의 입장을 전달하며, 철회해 줄 것을 요청한 끝에 속속 발의철회 의사를 이끌어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역의사회 관계자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처방전 리필제 법안의 문제점을 잘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발의단계부터 의협과 지역의사회가 적극적으로 공동대응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국회에 따르면 처방전 리필제 법안 공동발의에 참여한 의원은 한나라당 박보환(경기 화성시 을)·송광호(충북 제천시 단양군)·윤영(경남 거제시)·이상권(인천시 계양구 을)·이종혁(부산시 부산진구 을)·이진복(부산시 동래구)·이철우(경북 김천시)·이학재(인천시 서구 강화군 갑)·장제원(부산시 사상구)·황영철(강원도 홍천군·횡성군)·이영애(비례대표) 의원 등 12명. 이중 이상권·이종혁·이진복·이철우·황영철 의원이 철회의사를 밝히면서 대표발의를 한 윤상현 의원도 발의를 철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닥이 잡혔다.
처방전 리필제 법안은 지난 7월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발의를 검토하다가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8월에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10명의 의원들과 공동발의 요건을 갖춰 의안을 접수했으나 면담 요청과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지역의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발의 철회를 이끌어 냄으로써 무산시킨바 있다.
처방전 리필제 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의 일반 회원들도 해당 의원실 게시판에 항의성 글을 올리고, 전화와 트위터 등을 이용,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법안 상정을 무산시키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