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박원순 시장 전격 면담
필요성 공감한다면서도 지원 인색…의료계 후원 절실
김현주 아주의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희귀병의 대모(大母)로 불린다. 40여 년 간 미국과 한국에서 유전학을 연구한 김 교수는 지난해 6월, 척박한 국내 치료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뜻있는 시민과 지자체, 기업 등의 참여로 한국희귀질환재단을 설립했다. '사랑의 릴레이' 운동을 전개한지 11년. 연맹에서 공익법인으로 단체를 승격시키고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김현주 한국희귀질환재단 이사장을 지난달 30일 서울시청 별관에서 만나봤다. 다음은 김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
박원순 서울시장과 전부터 알고 지냈다고 들었다. 면담에서 무슨 대화를 나눴나.
-한국희귀질환연맹을 재단으로 바꾸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닐 때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던 박원순 시장을 만났다.
아름다운재단을 운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알려주면서 힘내라고 얘기하는데, 여러 장벽에 부딪혀 지쳐 있던 내가 다시 마음을 다지는 데 많은 힘이 됐다. 공익적인 사업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풀어낼 수 있는 인재란 걸 그 때 알아봤다.
오늘 면담에서는 시장 일정이 바빠 15분 정도밖에 대화를 못했다. 서울시 희귀난치성질환 환자와 가족을 위한 전문 유전상담 서비스 지원 사업의 필요성을 말씀드렸다.
시장의 반응은 어땠나.
-한 달 전 사업 제안서를 보내고 약속을 잡아 여기까지 온 거다. 필요성은 알겠으니, 담당부서를 연결해 주겠다고 해서 관계자까지 만나고 왔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경기도 등 어딜 가도 반응은 비슷하다.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런저런 문제로 어렵겠다고…(이 시점에서 김 이사장은 서러운 듯 눈물을 쏟아냈다).
올해 2월부터 12월까지 상담을 필요로 하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데 1억 6천만 원의 예산이 든다. 이게 그렇게 큰 액수인가? 막대한 시 예산에서 부담스런 규모가 아닐 것 같은데 다들 곤란하다고 하는 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서울시에 제안한 유전상담 사업에 대해 설명해 달라.
-희귀병은 대부분 유전질환인데, 환자와 가족들에게 의학적·유전학적 정보를 제공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특수 전문 의료서비스 과정이 유전상담이다.
비극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임에도 외래에서 한 환자에게 10분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는 게 어려운 국내 의료현장에서 최소 30분이 소요되는 유전상담을 실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라서 서울시민 가운데 유전성질환으로 재발 가능성이 있어 전문 상담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 희귀난치성질환 환자와 가족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교육 및 캠페인을 전개하는 게 목표다.
연맹에서 공익재단으로 출범한지 6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 중점적으로 진행한 사업과 성과는.
-유전상담 서비스 지원사업의 첫 단계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후원을 받아 지난해 9월부터 전문 의료기관과 연계해 관련 세미나를 열었다.
4개월 동안 4개 병원(양산부산대병원 뇌질환센터·이대목동병원 신경과·고대구로병원 희귀난치성질환센터 & 척추측만증센터·아주대병원 유전질환전문센터)에서 세미나가 진행돼 환자 262명, 유관 의료복지 관계자 436명이 참석했다.
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81%가 이전에는 유전상담에 대해 접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지만, 강좌를 듣고 96%가 유전상담이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환자와 가족들이 원하는 유전상담 서비스가 국내 의료현장에서 전문 의료서비스의 일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힘쓸 계획이다.
끝으로 의료계에 한마디 한다면.
-공익재단은 태생적으로 후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의사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고수익 전문가 이익집단으로 매도되고 있지만, 환자에 대한 애정으로 사명을 다하는 의사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희귀질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료인들이 적극적으로 후원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달 1만 원 이상 후원자 1만 명을 모집하는 '만만나눔운동(www.kfrd.org 참조)'을 전개하고 있는데, 십시일반으로 보탬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다. 어려운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도 진정한 환자 사랑을 실천한다면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