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당법' 직면한 의사들 "대책이 없다"

'응당법' 직면한 의사들 "대책이 없다"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2.07.2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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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시행 앞두고 큰 변화 없이 위기감 고조
온콜 제도 시간 준수 난제…첫 처분 사례 '주시'

▲시행 초읽기에 들어간 '응당법'을 두고 병원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
'비상진료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병원에 개설된 모든 진료과 전문의들이 직접 응급환자를 진료한다.'

다소 모호한 규정으로 혼동을 일으켰던 응급실 비상호출체계(이하 온콜 제도) 당직 개념에 대한 의문이 드디어(?) 해소됐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해 응급호출을 받은 전문의가 1시간여 안에 오는 것까지를 당직으로 인정한다는 것. 24일 국회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나온 임채민 장관의 이 발언을 두고 의료계는 "무슨 기준으로 정한 건지 모르겠다"며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온콜 제도 구축을 통한 당직을 허용하되, 개설된 모든 진료과목에 대해 전문의 당직을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안'을 이달 초 발표했다.

통상적으로 환자가 응급실을 찾을 때 근무의사→인턴 또는 1·2년차 레지던트→3·4년차 레지던트→전문의 순으로 이뤄지는 진료체계를 근무의사→전문의 직접 진료로 간소화해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이 같은 입법예고안은 의견수렴 과정에서 대폭 손질됐다. 사실상 3년차 이상 레지던트의 응급실 당직을 강제해 문제시된 당직 전문의 자격에 관한 규정은 삭제되고, 직접 당직이 아닌 온콜 제도까지를 법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당장 8월 5일 시행을 앞둔 제도를 맞닥뜨린 의사와 병원들은 요즘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실질적으로 현 체제에서 크게 변화시킬 것이 없는 상황에서 전에 없던 처벌 규정만이 존재감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문의가 응급실을 찾는 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을 경우 병원장은 200만원의 과태료를, 당직 의사는 근무명령 성실 이행 위반으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 등 제재조치가 엄격해진다.

"응급실 안 거치고 무조건 입원" 갖은 궁여지책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최근 개인 SNS를 통해 일명 '응당법(응급실 당직법)'에 대처하는 한 대학병원의 일화를 소개했다. 최근 모 대학병원에서 교수회의를 거쳐 확정했다는 대처법은 이렇다.

환자 응급실에 내원하면 들여보내기 전 코디네이터와 응급의학과에서 먼저 살펴본다. 응급환자가 아닌 환자는 돌려보낸다. 경증질환의 경우 응급의학과에서 진료하고, 각 과에서 봐야 하는 환자들은 무조건 해당 과로 입원시킨다.

이 때부터 환자는 '응급'이 아닌 입원환자가 되기 때문에,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가 진료해도 무방한 상황이 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 회장은 "역시 대한민국 의사들은 적응의 달인이다.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사람에게 '꼼수 대마왕'이란 칭호를 드린다"고 꼬집으면서 "그래서 근본적 개혁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씁쓸함을 표시했다.

대다수 병원에서 법 시행의 가장 큰 '희생양'으로 지목되는 직종은 임상강사(펠로우)를 포함한 봉직의들이다. 당직 의무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봉직의에게 전가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서울 Y대학병원 일부 진료과 교수들은 8월 시행에 대비해 임상강사들에게 당직표 짜는 업무를 맡긴 것으로 전해졌다. 교수 밑에서 기약 없는 업무과다에 시달리는 이들 임상강사를 빗대어 펠로우 대신 '펠노예'라는 은어가 회자되기도 한다.

봉직의들 '면허취소되면 어떡하나' 전전긍긍
뚜렷한 대책 없이 이전과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병원 소속 의사들도 답답한 심정은 마찬가지다.

신경림 새누리당 의원은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전국 권역응급센터의 경우 21곳 중 8곳이, 지역응급센터의 경우 115곳 중 100곳이 당직을 설 수 있는 전문의가 과에 1명뿐인 전문과가 있다며 사실상 당직근무가 불가능한 실정을 지적한 바 있다.

인천 A병원의 한 내과 전문의는 "병원장과 두어번 얘기해 봤는데, 응급의료센터 지정을 포기하지 않으면 다음달에 그만두겠다고 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반응"이라면서 "해당 의사는 면허가 취소되지만, 병원장은 벌금만 물면 되기 때문에 자기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털어놨다.

부산 B병원의 한 외과 전문의는 "봉직의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응당법"이라며 "실제로 중소병원 봉직의들이 법 시행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첫 희생타가 되지 않으려면 다같이 힘을 모아 조속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봉직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태동한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발족식 시기를 예정보다 앞당긴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병의협은 응당법 시행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발족과 동시에 성명을 발표하기로 계획하는 등 다각도로 전략을 모색 중이다.

"예전이랑 똑같은데 마치 전문의가 다 보는 것처럼…"
의료현장에서 전공의들이 갖는 부담감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직 전문의' 규정에서는 벗어났지만, 사실상 이전 체제로 회귀하는 제도인 만큼 문제 발생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전공의는 "만약 A라는 환자가 왔는데, 온콜 제도로 전문의가 오는 동안 10분 이내에 사망했다면 어떻게 되는 거냐"면서 "잘잘못을 따지는 과정에서 곁에 있던 전공의에게도 불이익이 갈 수 있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 두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 전공의는 "온콜이 허용되면서 예전이랑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도 그런데 마치 전문의가 응급환자를 다 보는 것처럼 호도되는 경향이 있다"며 "환자들이 왜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가 보느냐고 따져 물으면 골치아파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C대학병원의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상주해있는 전공의보다 1시간 안에 도착하는 전문의를 기다리는 게 말이 되냐. 응급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인데, 큰 폭으로 재정을 늘리지 않고 의사들에게만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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