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성 논란에 처방권 다툼...첩약 급여 '첩첩산중'

타당성 논란에 처방권 다툼...첩약 급여 '첩첩산중'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12.10.3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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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화보다 급여화가 먼저? 우선순위 평가는 왜?" 비난 봇물
"약사·한약사에 진단권 내주나" 한의협 내부갈등도 심화

▲ 첩약 급여화 결정에 따른 직역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1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한의사협회 앞마당에서 한의사평회원 회원들이 첩약의료보험시범사업 철회와 집행부 일괄사퇴를 촉구하고 있다.ⓒ의협신문 김선경
치료용 첩약 급여화 결정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급여화 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진단·처방권을 둘러싸고 직역내 갈등까지 빚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는 지난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의 하나로, 내년부터 치료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총 시범사업 기간은 3년, 이에 투입되는 예산은 내년에만 2000억원이다.

건정심 의결로 당장 내년 10월부터 시범사업이 시작될 예정이지만, 세부내용은 안개 속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은 근골격계 질환과 수족냉증 등 노인과 여성 대표상병을 정해, 이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용 첩약을 처방받을 경우 그 비용 중 일부를 건강보험 급여비용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전부. 정부는 한약관련 제도정비 및 이해단체 합의를 통해 급여대상 상병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화보다 급여화 먼저?

첩약 급여화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 중 하나는 과연 치료용 첩약이 급여범위에 들어올 만큼의 '과학적 검증'을 거쳤는가 하는 점이다. 보험급여를 적용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의과영역에서 급여권 안에 들어간 행위나 약제의 경우, 어떤 환자에게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를 급여기준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A·B·C라는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D라는 방법으로 검사해야만 검사비용을 급여로 인정한다던지, A 검사법을 통해 B라는 상병으로 진단받은 환자에게 C라는 방법으로 약을 투약한 경우에만 해당 약제비용을 급여로 인정하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깐깐한 심사기준도 존재한다. 심평원은 특정 행위나 약제에 대해 관련 근거문헌들을 바탕으로 용량·용법 등에 관한 심사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급여지급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급여·심사기준을 초과하거나 위반한 경우에는 급여비를 삭감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그러나 정부가 언급하고 있는 치료용 첩약 대상 상병들을 살펴보면, 이 같은 틀 안에서 정형화하기가 꽤나 까다로워 보인다.

첩약 급여화 대상 대표상병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수족냉증을 예로 들어보자. 수족냉증은 일반적으로 추위를 느끼지 않을 만한 온도에서 손이나 발에 지나칠 정도로 냉기를 느끼는 증상으로 정의되는데, 감별이나 진단법은 천차만별이다. 통상적으로 환자의 주관적인 호소에 의해 병이 진단되고, 치료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의과에서는 '수족냉증을 진단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보고 있다. 그 보다는 여러 다른 질병에서 동반될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에 다른 질병이 아닌지 감별을 위한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의과에서의 일반적인 견해다.

양쪽의 주장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현재까지 해당 질병에 대한 감별·진단에 있어 과학적 증명으로 해소하지 못한 이견이 존재한다는 점만은 명확해 보인다.

전문가들이 첩약 급여화 조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진단법 조차 표준화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 치료법에 대한 급여기준이나 심사기준을 짤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의협 한방대책특위는 첩약 급여화가 결정된 직후 내놓은 입장문을 통해 "첩약이 약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제기준인 생화학적 성분분석과 의약품 조제의 과학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면서 "또 보험급여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질병에 대한 과학적 치료효과가 전제되어야 하나, 첩약은 그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 건정심 의원은 "(첩약 급여화 결정 과정에서) 이번 급여화 조치를 한방 과학화의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건정심 스스로도 치료법이 과학화되기도 이전에 급여화 결정부터 내렸다고 자인한 셈이다.

준비없는 보장성 강화..건보료 폭증 이어질라

정부가 급여화된 의료행위에 대해 엄격한 급여기준을 들이대는 이유는 해당 행위가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더불어 급여화가 건강보험 재정에 미칠 부담까지 염두에 둔 조치다. 제한없이 빗장을 열어 둘 경우 건강보험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 보장성 강화방안을 의료수가·보험료율과 함께 조율해 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잘못된 비용 예측은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6세 미만 아동 입원료 면제' 정책의 실패가 대표적인 사례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06년 보장성 강화방안의 하나로 6세 미만 아동에 한해 입원료 본인부담금을 완전히 면제하는 방안을 내놨으나, 투입 예산이 추계치를 훌쩍 넘어서며 건강보험재정에 심각한 부담으로 돌아오자, 정책 추진 2년만에 10%의 본인부담금을 지우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첩약 급여화 조치가 과거 있었던 '입원료 면제 정책'의 재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오랫동안 급여권 밖에 있었던 만큼 치료용 첩약 시장 규모자체를 예측하기 힘든데다, 급여기준·심사기준 등 제동장치들의 적확성을 확신할 수 없는 만큼 그 결과 또한 예측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일단 빗장이 열리면 그 이후는 시장의 몫으로, 공이 어떻게 굴러갈지는 정부 입장에서도 예측하거나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통제장치가 제대로 준비 되자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급여화를 시도할 경우 과거 6세 미만 입원료 면제와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 있으며, 그로 인한 부담은 결국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객관적 평가점수 뒷전...첩약 급여 그리 급했나

첩약 급여화가 그리 급했느냐는 문제제기도 있다.

보장성 우선순위에 관한 문제로 급여화 필요성이 큰 의약품들이 즐비한데 경제성 입증이 명확하지 않은 약제들에 대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의문이다.

실제 정부가 건정심에 내놓은 보장성 강화 우선순위 평가결과에 따르면, 전문가들이 평가한 첩약 급여화의 우선순위 평가결과는 2.51점으로 전체 31개 항목 가운데 23번째로 하위권에 속하지만 당장 내년 보장성 강화계획에 반영됐다.

반면 갑상선암 방사성요오드 경구투여시 항구토주사제의 경우 3.39점을 획득해 6위를 차지, 보장성 확대가 시급한 것으로 판단됐지만 급여화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우선순위 평가점수는 △의료적 중대성: 해당 항목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불구가 되는 정도 △치료 효과성: 치료에 도움이 되는 정도 △비용효과성: 투입 비용에 대한 효과의 정도 △진료비 규모: 치료시 환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의 크기 △적용 대상자 수: 혜택을 받는 국민의 규모 등 5가지 기준에 의거, 각 항목별 우선순위를 객관적으로 점수화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방특위는 "정부는 보장성 우선순위 평가결과에 따라 우선순위를 차지한 항목과 암 등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선 시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첩약 급여화를 우선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전국의사총연합 또한 "건강보험 재정이란 모든 국민의 합의에 의해 조성된 금액인 만큼 이를 활용함에 있어서도 전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홍보와 합의·논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첩약 급여화 결정을 강력히 규탄했다.

"약사·한약사에 진단권 내주나" 직역내 갈등 불씨

한의사평회원 협의회 등 일부 회원들은 지난 29일부터 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의협신문 김선경
이번 결정을 두고 한의사협회도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다.

정부가 약국과 한약국에서 조제 가능한 초제, 이른바 100처방 가운데 일부 질환을 급여화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진단·처방권 이양논란이 일고 있는 것.

일부 회원들은 29일부터 한의사협회 점검농성까지 벌이며, 집행부의 결정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점거 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한의사평의원회 관계자는 "시범사업 대상에 한조시 약사와 한약사까지 포함한다는 것은 약사와 한약사들의 진단권을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러한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인 협회장과 임원·시도지부장들이 전원 사퇴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뾰족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측은 "첩약 급여화는 건정심 결정사항으로 세부사항은 추후 논의될 것"이라면서 "대상 상병과 급여 범위 등은 향후 이해단체들과의 협의를 통해 정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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