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약국 2만여곳 전수조사...1만 6300곳서 공급-청구 불일치 확인
현지조사 대상 738곳·현지확인 2128곳 달해...약국가 '벌집 쑤신 듯'
일선 약국가에서 은밀하게 이뤄져 왔던 '약 바꿔치기 관행'의 실상이 드러났다.
약 바꿔치기란, 약사가 임의대로 환자에게 싼 약을 주고 급여비용 청구는 원래 의사가 낸 처방전대로 해 약값의 차액을 떼어먹는 수법.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결과, 약국 10곳 중 8곳꼴로 최근 수년간 이 같은 부당행위가 일어났던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약국 2만여곳을 대상으로 의약품 공급내역과 약국 청구내역의 일치여부를 확인하는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그 가운데 1만 6300여곳이 넘는 약국에서 공급-청구내역 불일치를 확인했다.
이번 점검은 2009년 2분기부터 2011년 2분기까지 약국들의 2년치 청구내역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공급-청구내역 불일치란 말 그대로 제약사나 도매상에서 약국에 납품한 의약품 내역과 실제 약국에서 나간 의약품 내역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를 말하는데, 심평원은 이의 일치 여부를 부당청구 개연성을 판별하는 잣대로 삼고 있다.
청구 내역대로 실제 의약품이 조제되어 나갔다면, 공급 수량에서 청구 수량을 뺀 숫자와 약국 내 재고 수량이 딱 들어맞는 것이 원칙. 반대로 숫자가 딱 들어맞지 않는 경우, 특히 양쪽의 차이가 너무 큰 경우는 조제나 청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부당행위, 이른바 '약 바꿔치기'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약 바꿔치기 관행은 오랫동안 의약계 내부에서 논란이 되어왔지만, 그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전체 약국의 약 80%가 조사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충격과 파장이 적지 않은 상태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번 사태를 그동안 약국가 전반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관행적인 약 바꿔치기가 이뤄져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방증으로 보고 있다.
예상 밖으로 많은 기관에서 부당 혐의가 포착돼자, 심평원 조차 당황하는 분위기다.
심평원은 부당혐의가 포착된 약국 1만 6000곳을 부당의심 건수와 금액·비율, 고의성 여부 등을 잣대로 △현지조사 △현지확인 △서면조사 대상 등 3가지 그룹으로 분류해 조사를 진행 중인 상태.
이번 조사로 현지조사 대상이 된 약국의 숫자만 738곳, 현지확인 대상은 2128곳에 이르며 상대적으로 건수와 금액이 적은 나머지 1만 3437개소는 서면으로 조사를 대체하고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약을 바꿔치기했거나 금액과 건수가 상대적으로 너무 많은 경우 등은 고의성이 의심된다고 보아 현지조사 대상으로, 고의성 여부 판단 등을 위해 추가적인 자료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2000여곳에 대해서는 현지확인 대상으로, 또 금액이나 건수로 볼 때 내용이 경미한 건들에 대해서는 우편과 인터넷을 이용한 서면조사 대상으로 나눠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심기관에 대한 추가 조사와 부당금액 정산작업 등을 거쳐야 하므로, 최종적인 행정조치가 이뤄지는 시점은 빨라야 올해 연말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약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다. 앞서 약계는 심평원 측에 단순한 공급-처방 불일치로 고의성이 크지 않다며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심평원의 판단은 조금 다르다.
심평원 관계자는 "적발된 사례의 대부분은 환자에게 싼 약을 주고, 청구는 처방전대로 고가약으로 해 약국에 차액이 발생한 사례"라면서 "단순한 실수라면 환자에게는 고가약을 주고, 청구는 저가약으로 한 반대의(약국에서 손해를 보는) 상황은 거의 없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태의 여파로 일각에서는 약국들이 인근 의원에 연락해 뒤늦게 대체조제 서명을 부탁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이는 심평원 소명용으로, 당초 의사의 대체조제 동의가 있었던 것처럼 서류를 만들어 부당혐의를 벗어나려는 일종의 궁여지책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