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의대유치 광풍, 호기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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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05.27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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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없는 지역은 전남뿐" 목포대·순천대 여론몰이…경남·제주 등 가세
의료계 "제2의 서남대 안 된다는 보장 있나" 부실의대 정리 우선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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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서남의대 폐과 발표 이후 정원처리 향배에 의료계는 물론 대학가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후자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과대학을 신설하기 위해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20여년 전부터 공을 들여온 일부 지역대학들이다. <의협신문>이 현재 유치열기가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전남지역을 중심으로 의대 신설을 주장하는 대학들의 사정을 들여다봤다. 제2·제3의 서남의대 사태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원칙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봤다.

▲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의대가 없는 유일한 지역임을 내세우며 서울 마포에 문을 연 '목포대 의과대학 유치추진위원회'사무실. ⓒ의협신문 김선경
"국립목포대학교 의과대학 설립은 전라남도의 희망입니다!"

지난 1월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대형빌딩에서는 '목포대 의과대학 유치추진위원회 서울사무소 현판식'이 열렸다. 전라남도가 지역개발을 위해 서울에 차린 투자유치 사무소 안에 목포대 의대설립 추진을 위한 공간을 내어준 것이다.

목포대는 이곳에 상시인력을 배치해두고 있진 않지만, 중앙부처와 국회·청와대 등과 긴밀히 논의할 일이 있거나 인터뷰 등의 요청이 들어올 때 응대장소로 활용한다. 의대 유치를 위해 서울에 사무소를 마련할 정도로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는 의미의 상징성도 부여했다.

1990년 의예과 정원을 신청했다가 고배를 마신 목포대는 서열을 매기자면 의대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대학들 가운데 '원로격'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은 2007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가 다도해 지역 등의 보건의료 환경 조성을 위해 목포대 의대설립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한껏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지만, 공약으로 끝나는 좌절을 겪었다.

2011년에는 국회에서 전라남도 의료서비스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의대 설립을 위한 정책포럼을 열었고, 지난해 임채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직접 건의하기도 했다. 이후 의대 설립을 위한 도민 결의대회 및 100만인 서명운동 선포식을 대대적으로 개최한 이래 현재까지 30만 명에 육박하는 서명을 받아냈다.

목포대가 이토록 의대 유치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측은 전국 16개 광역자체단체 중 의대가 없는 유일한 지역이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내세운다. 섬 지역이 많은 지역 특성상 이를 아우르는 의료 서비스가 제공돼야 함에도, 도서벽지 지역의 공중보건의사가 지속적으로 줄면서 의료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목포대 의대추진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영석 교수(경제학과)는 "경제적 낙후지역임에도 주민 1인당 평균진료비는 전국 최고수준"이라면서 "아이 낳을 산부인과가 없어 광주까지 가야 하는 전남도민들의 건강수명은 전국 최하위"라고 말했다.

대학측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듯 다양한 통계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 평균 건강수명은 71.29세, 서울이 73.89세인데 반해 전남은 68.34세에 그치고 있다. 건강일수 또한 가장 짧은 지역으로, 261일인 광주에 비해 40일 짧은 221일이다.

내부적으로는 의대 유치에 성공했을 때의 로드맵도 마련해뒀다. 신설의대는 입학인원 전원(신청인원 70명)을 공공보건 장학생으로 모집해 졸업 후 일정기간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의사면허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의대는 목포캠퍼스 또는 옥암지구의 9063m² 부지를, 대학병원은 4만8027m² 부지를 활용해 500병상 규모로 건립키로 했다. 설립비용은 각각 국비 212억원과 1846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 고석규 총장은 "우리 대학이 부실의대가 된다면 국가 책임이다. 국립대 부속병원은 부실할 수가 없다"며 국립대 프리미엄을 강조했다.

 

"의대 유치는 시대적 소명" 경남·제주·서울 등 각축전

목포대와 같은 전남권 국립대학으로 미묘한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의대 유치에 뛰어든 대학이 더 있다. 순천대학교다. 순천대는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다"는 이유에 더해 특히 "전남 동부권은 대학병원이 없는 보건의료서비스 소외지역"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지역 서부권에 위치한 목포대를 의식한 설명이다.

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여수시)은 14일 순천대 개교 78주년을 기념해 열린 정책포럼에서 "그나마 목포시를 비롯한 전남 서부권 주민들은 가까운 광주에 전남대·조선대·동신대 등 대학병원을 이용할 수 있지만 전남도 인구 절반이 거주하고 산업밀집 지역인 동부권은 의료수요 대비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전남 동부권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목포대를 정면 겨냥했다.

대학측은 광양시를 포함한 여수·순천·하동군 일원에 지정된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이 전남지역 총산업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등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지역 거점대학인 순천대학의 의대 유치는 시대적인 소명이라고 말한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할 국정과제 중 '동서통합지대'를 조성하겠다고 한 인수위의 발표가 호기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감도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의대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분위기 조성에 들어간 순천대는 대학 총동창회와 관공서 및 지자체·지역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77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1월부터 의과대학 및 대학병원 설립 타당성 조사를 위한 연구를 시작한 데 이어 올해 안으로 인근에 위치한 순천의료원, 성가롤로 병원 등과 부속병원 협약을 체결한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신청 정원은 50명으로, 의대와 대학병원 설립은 광양시 황길동 중앙공원 부지 또는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내 신대지구 제공 부지 등을 활용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병원은 25개 진료과목을 기본으로 하되 산업재해 환자를 중점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응급의학과와 재활의학과·직업환경의학과를 특화해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순천대 관계자는 "3월 발생한 대림산업 여수공장 폭발사고에서 보듯 우리지역은 산업재해 사고가 나면 대형인 경우가 많다. 응급의료 인프라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라면서 "응급처치를 하려면 최소한 광주까지 가야하는데, 치료시기를 놓쳐 귀중한 생명을 잃기도 한다. 인구가 많은 곳에만 의대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다. SOC(사회간접자본)로서도 의대 설립은 반드시 필요한 숙원사업"이라고 말했다.

목포대와 순천대만이 아니다. 선거철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는 신설의대 추진 열기는 이미 전국적이다. 창원대는 '인구 100만 이상 전국 9개 도시 대학 중 의대가 없는 곳은 창원이 유일'하다는 점을 내세워 지역사회와 정치권의 지지를 등에 업고 교육부 등을 상대로 설득에 나섰다.

이건 서울시립대 총장은 지난해 모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설하고 싶은 학과가 많지만 특히 의과대학을 개설하고 싶다. 시립병원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얘기도 있는 만큼 서울시와 함께 도시형공공의료를 구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의료법인 중앙의료재단은 지난해말 제주특별자치도내 S-중앙병원 개원을 앞두고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기 위해 학교법인 설립허가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제주도 제2 의과대학 설립 추진'을 공식화했다. 이밖에 인천대와 공주대·대진대 등도 수년 전부터 의대 유치에 발을 담근 상태. 이 정도면 열풍을 넘어선 '광풍'에 가깝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 선거철 단골공약으로 등장하는 신설의대 추진 열기는 서남의대 폐과가 결정되면서 목포대와 순천대뿐 아니라 창원대·서울시립대 등 전국적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역사회 건강→의대 유치? "공공의료 확충은 다른 문제"

지역과 규모, 의대 유치에 사활을 건 역사(?)는 각기 달라도 이들 대학이 주장하는 논리는 닮은 점이 있다. 해당 지역에 의대가 없거나 부족하고, 의료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별로 의대가 고르게 분포되면 의료격차가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과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지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대 설립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일까? 서남의대나 관동의대 사태로 한바탕 몸살을 앓고 있는 의료계는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혜연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지역사회를 위해 의대가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실의대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라면서 "의대를 만들어 지역사회 의료를 키울지, 아니면 공공병원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장기적으로 일정규모 이하의 의대를 통폐합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재 40명 내외로 소수 분배돼 있는 의대는 투입되는 인프라를 고려할 때 의학교육 측면에서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이사는 "해부학만 해도 세분화된 분야들이 있다. 기초의학을 비롯해 다양한 교수진을 확보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40명 정원인 의대는 너무나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정원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장수 경북의전원장 또한 "외국에서 정원 40명인 의대는 드물다"며 이 이사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서남의대 폐과 등으로 공백이 생겼을 때 40~50명 정원의 의대를 신설하기보다는, 평가에서 우수점을 받은 기존 소규모 의대를 선별해 60명 정도로 끌어올려주는 게 합리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두 국립대학이 소리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전남지역 개원가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창수 전라남도의사회장은 "주민 건강을 위해 의대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아주 단순한 발상이다. 그러다가 서남대 꼴 다시 안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며 "의대를 자꾸 늘릴 게 아니라 지금 있는 부실의대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순천시의사회장을 역임한 그는 "지금 순천만 해도 과포화 상태다. 병상당 인구수를 따지면 가장 적을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광주에 있는 전남대나 조선대 의전원생의 60~80%가 외지인이다. 면허 따면 나갈텐데 의대가 또 생기는 건 의료혜택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공멸하자는 얘기"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선분양 후시공 의대 신설 '경종'…교육부·복지부 "아직 계획 없다"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이달 초 지역 국회의원이 질의하자 의대 설치계획이 없다는 공식답변을 내놨다. 의대 설립시 소요정원을 확정하는 보건복지부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반면 신설의대를 추진하는 모 지역대학 고위 관계자는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내부적으로 의사 정원을 증원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남의대 폐과 이후의 정원 처리문제가 어떻게 결정될지, 오랜기간 의대 유치를 희망해온 대학들이 정원을 할당받아 숙원을 풀지 현재로선 오리무중이다.

다만 '선분양 후시공'식의 의대 신설은 다시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서남의대와 관동의대 사태를 통해 이러한 정원배분 방식의 위험성이 드러난 만큼, 정부에서도 정치권 등에 영향받지 않고 엄중한 잣대로 설립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 전문위원은 "문제는 의대 유치가 지역간 자존심 싸움이 됐다는 것"이라면서 "의사 한 명을 양성하는 게 국민보건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의 설립 추진은 곤란하다. 교수의 질, 시설 등 여러 측면에서 의학교육에 합당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사전검증이 중요하다.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주체가 의학교육평가원"이라며 "의학교육의 성과를 의사국시 합격률로 가늠하는 풍토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시험에 합격만 시키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간 제2·제3의 서남대 사태가 벌어질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서남의대 사태 이후 남겨진 과제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도 마련됐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박인숙·이목희 의원실 공동주최로 6월 4일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최근 확정했다. 이날 의평원은 양질의 의학교육을 담보하기 위해 전문평가기관의 역할에 걸맞는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작업이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집중 전개할 예정이다.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은 "선진국에선 대학이 원한다고 의대가 되는 게 아니다. 의사 양성이 가능할지, 맡을만한 주체인지를 먼저 철저히 조사하고 신입생이 졸업해서 나갈 때까지 6년간 평가가 이뤄진다"며 "교육부가 그런 역량이 없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 부처에서 정치적으로 결정하려는 성향을 버리고, 평가기구에 권한을 위임해 의대 평가와 신설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 서남의대 사태와 같은 일은 다시 없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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