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 생태계 초토화...의료접근성 오히려 저하
'동네의원 중심' 새빨간 거짓말...대형병원 "준비 완료"
원격의료 도입으로 가뜩이나 취약한 한국의료시스템, 특히 의료전달체계와 1차 의료체계가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와 1차 의료 붕괴 시나리오는 원격의료 도입 허용으로 인한 '원격의료 전담 의료기관'의 출현으로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해 마지막 국감이 열린 1일 민주당 김용익 의원은 원격의료 전담 의원의 설립이 의료전달체계와 1차 의료시스템이 어떻게 붕괴되는지를 실감나게 제시했다.
전국을 무대로 하는 원격의료 전담 의원이 설립돼 고용된 의사들이 무차별적인 원격의료에 나선다는 가상의 전망인데, 정부가 원격의료 허용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킬 경우 충분히 현실화 될 수 있는 예상이라는 공감을 얻었다.
김 의원은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극심한 상황에서 원격의료 전담 의원으로 환자들이 줄서기에 나선다면 의료전달체계와 1차 의료시스템의 붕괴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이번 원격의료 허용방안이 '동네의원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지만, 아이러니하게 동네의원이 수행하기 불가능한 방안이라는 지적도 많다. 환자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만성질환자가 원격의료를 받으려면 단말기와 원격측정기, 원격의료 프로그램 등 구매로 약 100여 만 원을 지출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정부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수 개월에 한 번씩 진료받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진단을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감수해야 할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원격의료기기를 구비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고령층이 많은데, 그들이 IT기기와 시스템에 얼마나 친숙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어르신들이 돈들여 장비를 구비하고 원격의료 작동방법을 습득해 구동까지 하더라도, 정작 의약품은 동네약국까지 가서 사야한다는 부분도 원격의료가 동네의원에 적합하지 않은 모델이라는 지적에 힘을 실어 준다.
의료계의 관계자들은 "3개월 정도에 5분거리에 있는 동네의원가서 진료받고 옆에 있는 동네약국가서 약 타오면 될 일을 누가 돈들여 기기사고 약은 약대로 타러 가고 하겠느냐"고 혹평했다.
환자의 민감한 개인 건강정보 유출 위협이 높아지고, 원격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한 애매한 법적책임 규명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최근 10년간 진료하던 고혈압 환자에게서 간암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서울의 한 내과의원장이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원격진료의 허상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이러한 예상 가능한 부작용들로 인해 정부의 원격의료 허용법안이 정부측 발표처럼 환자편익 증진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지고 있다.
몇몇 대기업과 의료정보 기업들이 원격의료를 기반으로 한 수익모델을 만들고 이를 방해하는 의료법 규정을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 만성질환자들을 구실 삼아 개정하려 한다는 의혹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물론, 시민단체와 정치권들이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이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원격의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아닌 청와대와 경제부처의 보이지 않는 압박의 결과물이라는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 4월과 10월과, 두 차례에 걸쳐 원격의료 추진 의지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경제부처들의 목소리에 추진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의 발목을 잡는 부처라는 비난을 들었고 보건복지부는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시행 초기에는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하더라도, 결국엔 대형병원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이른바 '빅5'라 불리는 국내 대형병원들은 2010년 지식경제부가 주관한 '스마트케어 서비스 시범사업'에 SK텔레콤, LG전자 등 국내 굴지 대기업과 손을 잡고 모바일(통신), 의료기기(재택용기기), 원격화상진료시스템 등을 통한 유헬스(u-Health) 관련 사업을 진행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스마트폰 하나와 동네의원 컴퓨터 한대로 가능하다고 여러차례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정도의 원격의료는 '2류 진료'만을 양산할 뿐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해외환자를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실시한 경험이 있는 대형병원들이 원격의료 시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전망이다.
의료계는 결국 원격진료 활성화는 대형병원의 환자 쏠림에 정점을 찍고 1-2-3차로 이어지는 의료전달의 생태계를 초토화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로 인한 1차의료기관의 몰락은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려, 우리나라 국민은 '동네의원'이라는 게이트 키퍼(Gate Keeper)없이 질병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