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설문조사 재실시" 집행부 "회원 분열 조장"
노환규 전회장 불신임 가처분 결정 임박 혼란 불가피
제 2차 의정합의 핵심 사항인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둘러싼 의협 내부의 입장차가 또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대의원회와 집행부 간의 갈등이 이번엔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와 집행부의 엇갈린 행보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지난 24일 회의를 열어 6월 첫째주 중 전국 반모임을 개최하고 대회원 설문조사를 거쳐 원격의료에 대한 입장을 확정하겠다는 발표했다.
비대위는 앞서 '시범사업 철회'를 요구하는 대정부 성명을 발표한 바 있어, 이번 반모임과 설문조사는 사실상 원격진료 시범사업의 공식 반대 선포를 위한 사전 작업의 성격으로 해석된다.
비대위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한 회원들의 우려를 반영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즉 유효성·안전성을 검증하기엔 6개월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아 시범사업이 졸속 시행될 우려가 크고, 이는 왜곡된 결과 도출로 이어져 원격의료 저지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애초 목적과 달리 오히려 정부측에 원격의료 도입의 명분을 제공하게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원내과의사회·가정의학과의사회 등이 원격의료 시범사업 불참을 공식 선언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의협 집행부는 비대위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집행부는 28일 성명을 통해 "집행부와의 논의를 생략한 채 2차 의정합의안을 무효화 시키고 회원들을 분열시키려는 비대위 활동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집행부의 반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시범사업을 거부할 경우 38개 항목에 달하는 나머지 의정합의 결과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제 2차 의정합의 결과가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 있는 만큼 일부 항목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비대위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수용 불가를 천명할 경우 의정합의 전체가 폐기될 가능성이 있다는게 집행부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비대위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전공의 처우 개선 등 나머지 합의 사항은 이미 시행에 들어갔거나 의정협의 이전부터 의협과 보건복지부가 함께 논의를 진행해 왔던 사안들이므로 의정협의 폐기와는 상관없다는 주장이다.
대회원 설문조사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우선 집행부는 이미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포함한 의정합의 결과를 회원들이 수용한 만큼, 의견수렴을 다시 하는 것은 혼란만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의협이 3월 24일을 총파업 돌입 예고일로 못박고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투표 참여 회원 4만1226명 가운데 62.16%(2만5628명)가 '의정협의 결과 수용, 파업투쟁 유보' 방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비대위는 당시 설문조사가 집행부 주도로 진행돼 민의가 제대로 반영됐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공신력 있는 리서치 전문회사에 의뢰해 회원들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의협 집행부와 비대위의 불협화음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 없다. 현재 운영 중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30일 임시총회에서 '의협 회장을 배제한다'는 조건을 달고 대의원회 주도로 새롭게 구성된 기구다. 이에 대해 노환규 전 회장은 대의원회의 월권행위라며 '사원총회' 카드로 맞섰으며, 결국 4월 19일 임총에서 불신임 당해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대의원회가 '의협회장을 배제한 비대위 구성'을 의결한 순간 노환규 전 회장 주도로 마련된 제 2차 의정합의는 안개속에 휩싸인 셈이다.
양측이 엇박자를 내면서 집행부는 보건복지부와 의정협의 결과 이행을 추진하고 있고, 비대위는 이행 추진을 가로막는 기형적인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다. 집행부는 비대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으며, 비대위는 자신과 상의 없이 정부와 협의에 나서고 있다며 집행부를 비판하고 있다.
집행부-비대위 사이의 갈등은 노환규 전 회장의 복귀 여부가 임박하면서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노환규 전 회장이 제기한 '의협 대의원회 불신임 결의 효력정지가처분신청'에 대한 두 차례 심문을 마쳤으며 이번주 안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노 전 회장은 즉시 회장직을 회복하게 되고, 진행 중인 의협회장 보궐선거는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회장이 의협에 복귀할 경우 획기적인 변수가 없는 한 의협 내부의 혼돈 양상은 지속될 것이 예상된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더라도 보궐선거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사정이 달라질 전망이다. 유태욱(기호 1번) 박종훈(기호 3번) 후보는 노환규 전 회장과 현 집행부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추무진 후보(기호 2번)는 노환규 집행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는 기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