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잘못된 약가제에 대한 불만일 뿐"
복지부, 기조실 차원 대응논의에 업계 '긴장'
국내 제약사들이 최근 보험약값과 관련해 겁없이(?) 정부와의 소송에 뛰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약가일괄인하' 정책에 대항한다며 소송 불사를 외치다 막상 소송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거나 소송취하를 결정하면서 꼬리를 내리던 2년 전 상황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일부 제약사들의 줄소송에 정부도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에 따른 법적 대응은 물론 다양한 정책적 압박수단이 동원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보령제약은 지난 8월 위염치료제 '스토가(성분명: 라푸티딘)' 약가고시 취소 1심 소송에서 복지부를 상대로 승소했다. 동아ST 역시 위염치료제 천연물신약 '스티렌'의 급여제한 고시취소 소송을 내고 올 11월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동아ST는 약속한 기한 안에 스티렌의 효능과 안전성 입증 연구결과를 제출하지 못해 급여제한 조치를 받자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보령제약의 1심 승소 이후 약가와 관련해 다른 제약사들도 소송에 뛰어들거나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G사와 T사는 소송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제약계의 뭇매를 맞고 있는 약가제도로는 '사용량약가연동제'가 꼽힌다. 사용량약가연동제는 제약사가 미리 정부와 계약한 규모보다 약을 많이 팔 경우 많이 팔린 사용량에 비례해 보험약값을 깎는 제도로 최근 소송관련 논란 중인 대부분의 사건이 관련 사안이다.
A제약사의 한 대표는 "좋은 약이라 많이 팔렸다고 불이익을 주는 이상한 방식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미리 한해 얼마나 팔 것인지 예측하라는 것도 무리"라며 쌓인 불만을 터트렸다.
거의 모든 제약사가 사용량약가연동제에 대해 공공연히 불만을 토로하다보니 이번 줄소송이 사용량약가연동제를 흔들기 위한 제약사들의 단체행동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정부측의 한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소송에 들어가거나 검토하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의 주도에 의한 단체행동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며 단체행동설을 제기했다.
소송에 들어간 제약사들의 소송가액이 크지 않다는 점도 단체행동의 한 증거로 꼽힌다. 사용량약가연동제와 관련해 소송에 들어간 일부 제약사들의 소송가액은 대략 5억원 전후로 알려졌다.
심지어 1억원이 안되는 소송가액에도 소송에 들어간 경우도 있다. 소송에 따른 실익보다 사용량약가연동제를 흔들거나 앞으로 있을 약가협상에서 소송취소 여부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근거다.
제약사들은 이런 의혹에 대해 정부의 약가정책에 그동안 쌓여 온 불만이 터진 것뿐이라는 반응이다. 이번 소송에 나선 한 제약사는 소송제기 직전까지도 정부를 상대해 소송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망설였지만 "더는 일방적인 약가인하 정책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대표의 의지로 소송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제약사들의 불이익을 감수한 '단독행동'이지 '단체행동'은 아니라는 해명이다.
제약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번 줄소송은 단체행동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있다. 몇몇 제약사의 소송에서 보건복지부가 패소할 경우 복지부는 사용량약가연동제 계약을 맺은 모든 제약사와 다시 계약을 맺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략 상반기에만 80여개의 약제가 사용량약가연동제 계약을 마쳤다. 재계약을 해야 한다면 복지부로서는 큰 행정적 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보건복지부가 반격을 준비 중이라는 '반격설'이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관련 소송에 대한 통합적인 대응책을 해당 부서가 아닌 기획조정실 차원에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차원에서 대응책이 마련된다면 소송대응은 물론, 다양한 압박수단이 검토될 수 있다는 제약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