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섭 교수 "미국 조력존엄사 허용 지역서 자살률 18% 증가"
의협 "사회적 논의 부족...생명 경시 풍조 만연할 것" 우려
의료계가 조력존엄사와 관련해 생명경시 풍조를 만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반대하는 가운데 최근 조력존엄사를 허용한 곳에서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 비조력 자살도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의료계의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8월 24일 국회에서 '의사조력자살, 말기 환자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조력존엄사 토론회를 개최했다.
안규백 의원은 지난 6월 1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이하 조력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조력존엄사대상자 및 조력존엄사의 정의 신설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대상자 결정을 신청하도록 하고, 이를 심의·결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 마련 ▲조력존엄사대상자로서 대상자 결정일부터 1개월이 지나고, 대상자 본인이 담당의사와 전문의 2인에게 조력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 한해 조력존엄사 이행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의사에 대해 '형법'에 따른 자살방조죄 적용 배제 ▲관리기관 등에 종사하거나 종사했던 사람과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근무하거나 근무했던 사람이 조력존엄사 및 그 이행에 관해 업무상 알게된 정보를 유출해서는 안 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의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개정안과 관련해 조력존엄사에 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부족하고 생명경시 사회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 우려하며 반대했다.
당시 의협은 "조력존엄사는 생명을 앞당기는 행위로 연명의료결정 중단이나 호스피스완화의료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고, 이 또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만큼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만연시킬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현섭 교수(서울대학교, 철학과)는 '의사의 자살조력을 법으로 허용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발표하며 의료계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2022년 발표된 Girma & Paton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 김 교수는 "의사조력자살이나 자발적 안락사의 합법화가 총 자살, 비조력자살에 미치는 영향은 논쟁 중인 이슈"라면서도 "최근 미국 여러 주에서 조력자살의 합법화 이후 자살이 약 18% 증가했으며 특히 64세 이상과 여성에서 많이 늘어났다"며 "비조력자살도 함께 증가한 결과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이 연구 결과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이와 관련해서 더 살펴볼 필요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안규백 의원의 개정안 내용 중 조력존엄사 대상자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안규백 의원은 조력존엄사 대상자로 '말기 환자에 해당할 것,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것,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고 있을 것'등의 기준을 마련했다.
김 교수는 "자살에 관한 결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환자라면 자살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시하며 "환자가 자살이 이로울 만큼 신체적·심리적으로 악화한 상태면 그 사람의 의사를 정말 온전한 의사로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말기 환자 진단을 받고 괴로워할 환자에게 자살을 희망하면 의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원하면 의사의 조력을 받아 힘든 고통을 겪지 않고 자살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자살을 고려해보라는 권유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말기 환자로 지정하는 기준의 불명확성도 짚은 김 교수는 "말기 환자는 수개월 내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는 환자다"며 "다만 그 기간이 3개월인지 6개월인지 명확하지 않고, 의학적으로도 사망 예상 진단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 2021년 진행된 국내 여론조사에서 76.4%의 응답자들이 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를 찬성한다고 응답한 것과 관련해 "신중히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윤석 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내과)는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 참석해 "국민뿐 아니라 유관 분야의 학자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존엄사나 안락사 등과 같은 용어들에 대한 생각과 이해는 다르다"며 "여론조사에서 76.4%의 응답자가 의사조력자살의 법제화를 찬성한다고 응답했지만, 의사조력자살 찬성 이유는 '무의미한 남은 삶', '좋은 죽음의 권리', '고통 완화', '가족의 고통과 부담'등으로 나타났다. 남은 삶의 의미나 좋은 죽음은 사람마다 그 의미가 같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