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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조원 달성이 판매대행 덕이라고?"

"매출 1조원 달성이 판매대행 덕이라고?"

  • 최승원 기자 choisw@doctorsnews.co.kr
  • 승인 2015.01.1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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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 CEO 릴레이 인터뷰 ① ] 김윤섭 유한양행 대표이사

김윤섭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
김윤섭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은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야신' 김성근 현 한화 감독의 '빅팬'이다.

자비를 털어 김성근 감독의 책을 사서 신입사원과 지인에게 나눠줄 정도다. 김성근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면 그의 승리를 향한 절실함을 본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이든 이루고 싶다면 그 무엇인가를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며 김성근식 사고를 강조한다.

김윤섭 사장의 유한양행이 2014년 12월 19일 국내 제약사 가운데 처음으로 마의 매출 1조원 고지를 넘었다. 연이은 약가 일괄인하와 각종 약값 인하 기전으로 몇 번의 좌절 끝에 얻은 성과였다.

김  사장은 3년 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임기를 마치기 전 한 해 매출 1조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경우에도 지면 안된다"며  직원들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매출 1조원 달성 후 "우선 의사와 약사 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의사와 약사 선생님이 유한양행을 믿어 준 덕에 매출 1조원 달성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직원들에게도 고맙다. 때때로 몰아치고 다그쳐 힘들었을 테지만 우리는 해냈다"고 말했다.

SK야구단 감독으로 한국시리즈를 3번이나 제패했지만 늘 '이기는 야구'에 목말랐던 김성근 감독. 매출 1위 제약사 대표이사지만 매출 1조원 달성을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원했던 김윤섭 사장은 닮은 구석이 있다.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는 세간의 비판적인 시선마저 감내해야 했던 김성근 감독 마냥 김윤섭 사장 역시 매출 1조원 달성 이후 일부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점도 닮았다.

매출 1조원의 30% 정도가 코프로모션, 즉 자기가 개발한 제품이 아닌 남의 상품을 판매대행해 올린 매출이라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김윤섭 사장은 이런 비판을 "촌스러운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내 제약사는 신약이나 자기 제품만을 개발해 글로벌 제약사로 올라서겠다는 고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신약개발과 상품판매 모두 주력하는 '투 트랙'으로 한동안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신약 하나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 평균 1조원이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최대 매출을 올린 유한양행의 매출 총액과 맞먹는다. 연구역량이나 시스템도 30년은 처져 있다. 신약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고전적인 방식만을 고집해 글로벌 제약사가 되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내 제약사는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름길을 찾아야 한다. 압축성장이라는 지름길을 찾으려면 우선 적정 규모를 갖추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회사를 합병하든, 신약후보 물질이나 기술을 인수하든 단기간에 몸집을 키워 의약품 개발과 마케팅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2007년 SK가 우승했을 때 김성근 감독은 만족스럽다기보다 허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 짜서 선수를 훈련시켰고 그 힘든 시간을 견딘 결과가 우승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우승하기까지의 고달프고 힘들었던 과정이 다 들어 있다. 우승하고도 기쁨보다 허탈감이 더 큰 건 그런 이유에서다"라고 회고했다.

매출 1조원 달성 소감을 묻는 말에 김윤섭 사장도 "이제는 끝이다. 목표를 이뤄 상을 받았으면 좋은 기분만을 가지고 나머지는 다 버려야 한다.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단계에서의 목표는 그 단계에서의 목표일 뿐. 다음 단계를  향해 다시 출발선에 서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는 당부에는 김성근 감독이 우승 이후에 느꼈던 허탈감을 떠올리게 한다.

김윤섭 유한양행 대표이사 겸 사장을 6일 만나 매출 1조원 달성에 따른 소감과 유한양행과 한국 제약계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일문일답>

김윤섭 대표이사 사장
국내 제약사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소감은?

감사할 곳이 많다. 우선 의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직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하나님께도 감사드린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2014년 12월 19일. 유한양행은 한 해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이제 1조원 매출 달성은 지나간 목표가 됐다. 이제는 끝났다. 목표를 달성해 상을 받았으니 그 좋은 기분만 가지고 나머지는 다 버려야 한다. 출발선에 다시 서야 한다. CEO로서의 내 목표는 끝났지만 유한양행은 5~10년 후를 다시 그려야 한다. 결코 매출 1조원 달성에 만족하면 안된다.

매출 1조원의 30% 정도가 다른 제약사의 제품을 판매대행해서 얻은 결과라는 비판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런 생각이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국내 제약사라면 그곳이 어디든 이제 신제품 개발과 판매 '투 트랙'에 동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당장 글로벌 신약이 나올 수는 없다. 신약 개발을 위해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 동시에 판매대행을 통해 수익과 몸집을 키워 매출을 극대화해야 한다. 물론 매출이 커지면서 이익 규모도 극대화해야 한다.

한국 제약사는 글로벌 제약사보다 대략 30년 정도 연구개발 능력이 뒤처져 있다고 생각한다. 신약을 개발해 판매하는 방식만으로 선발 주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제약 분야는 많은 투자가 있어야 하고 리스크도 많고 실질적인 이득을 올리기까지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다. 반도체나 여타 제조업처럼 압축성장을 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결국 고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 사다리를 잡아야 한다.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절실한 상황 말고도 판매대행 부분을 키우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유한양행이 트라젠타같은 약을 판매대행해 성공시킨 이후 이제는 다국적 제약사가 자신들의 약을 직접 마케팅하기보다 코프로모션할 국내 제약사를 찾는 것이 일반화됐다. 유한양행 덕에 국내 제약사의 새로운 먹거리가 생긴 거다.

유한양행의 판매대행 매출을 전체 매출액에서 뺀다 해도 대략 7000억원의 매출고가 남는다. 이 정도면 국내 제약사 상위 클래스다. 이 점도 고려했으면 한다.

트라젠타의 경우 DPP-4 억제제 시장에서 후발주자지만 후발주자라는 불리함을 딛고 선두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유한양행의 마케팅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유한양행 직원들의 열정과 우수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유한양행이 주인이 없는 회사라며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많은 국내 제약사가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도 유한양행은 계속 선두권을 유지했다고 자부한다.

주인이 없는 회사라서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1600명 직원 모두가 주인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한양행은 '3무 회사'라고도 불린다. 지연과 혈연, 학연이 없는 회사다. 누구나 열정과 능력이 있으면 리더가 될 수 있다. 유한양행의 이런 전통과 직원들의 열정이 유한양행의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유한양행이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려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M&A다. 회사와 회사가 합병하는 방식도 가능하고 좋은 신약후보 물질이나 기술을 사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화이자같은 글로벌 제약사가 신약 한 개를 개발하는데 평균 드는 비용이 1조원이다. 개발비용이 거의 유한양행의 1년 매출과 맞먹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몸집을 키울 필요가 있다.

뭘 벌어야 R&D에도 투자하고 연구역량 등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다. 어차피 제약시장은 외부 투자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몇몇 대기업이 들어왔다가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결국 회사간의 합병 대상은 국내 제약사간의 M&A 방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 제약사가 개발역량을 갖추고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나기 위해 적정한 몸집 규모는 어느 정도가 돼야 한다고 보나?

제약사마다 특성에 따라 다르다. 한마디로 얼마다라고 얘기할 수 없다. 그렇지만 국내 제약사가 몸집을 지금보다는 훨씬 키워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유한양행의 매출 1조원 달성은 그런 면에서 유한양행만이 아니라 한국 제약계의 의미 있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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