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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한계상황…산부인과 절규가 들리는가
이젠 한계상황…산부인과 절규가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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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1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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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이 살아야 대한민국 의료가 산다"
|신년논단| ② 산부인과, 돌파구는 있는가?
▲ 임금자(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회계학 박사) ⓒ 의협신문 이정환

'산부인과 의원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습니다.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아있습니다.' 지금 누가 이렇게 산부인과 개원의들에게 말한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하게 될 것이다.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필자는 이 말을 10여년 전 수백명의 산부인과 의사들 앞에서 했다.

이 얼마나 용감하고 무지(?)한 발언이었는가? 필자가 의료정책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한 10여 년 전에 산부인과는 더 이상 나빠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될 만큼 위기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점점 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위기가 일상이 돼 버린 것이다. 이제는 산부인과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다. 언제쯤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위기 탈출이 가능하기나 할까?

애는 잘 낳지 않고, 출산 연령은 높아지고…
산부인과 의원 경영난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 중 하나가 1.187명이라는 낮은 출산율이다. 출생아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00년까지만 해도 연간 60만 명대였던 출생아 수는 2001년에 급격히 줄어들더니 2002년부터는 연간 40만 명대로 떨어졌다.

이후 감소추세는 계속 이어져 2013년의 출생아 수는 43만 6000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2005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이다. 산부인과의 환자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출생아 수 감소는 결국 산부인과 의원의 매출액 감소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산부인과 의원의 운영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운영비는 그대로 지출된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오히려 늘어난다. 당연히 산부인과 의원 중 순이익이 축소되거나 순손실을 기록하는 의원이 많아졌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산모에게 우호적인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지만, 정작 산모를 돌봐야 하는 산부인과 의원들의 손발을 묶는 정책들을 다수 도입했다. 무과실 보상제도 도입이나 포괄수가제 적용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부 정책은 산모에게는 저렴한 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줬을지 모르지만, 산부인과에게는 매출 감소와 비용 증가라는 이중고를 안겨줬다. 결국 많은 수의 산부인과 의원들이 경영난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신규 산부인과 의원보다 문을 닫는 의원이 더 많았다.

2013년에는 산부인과 의원 1개가 개원하면 2.2개 이상의 산부인과가 문을 닫았다. 그만큼 산부인과 의원의 경영난은 심각하다.

출산연령이 높아진 환경도 산부인과 의원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는 평균 30.7세에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20.2%는 산모 연령이 35세 이상일 정도로 노산이다. 그렇지 않아도 분만은 응급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야이다.

출산 연령이 높아지면서 응급 상황은 더욱 빈번해 지고, 의료사고의 위험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산부인과 진료에 더 많은 시간과 인력·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고 산부인과에서 더 많은 진료비를 받을 수도 없다.

산부인과 진료 대부분에 포괄수가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한편 배상금액은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올랐다. 결국 산부인과 의원에서는 분만을 포기하거나 중환자를 기피할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의원이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낮은 전공의 충원율
십 수년째 이어지는 산부인과 의원의 경영난과 여전히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은 산부인과 전공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산부인과 전공의 충원율을 보면 2000년대 초반에는 그래도 90%대로 비교적 최소 필요인원을 충원했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는 60~70%대로 낮아졌다.

2008년에는 54.9%로 최저수준의 전공의 충원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의사들이 미래가 암울한 진료과를 기피하는 것이다. 산부인과의 낮은 전공의 충원율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산부인과 수련환경을 더욱 어렵게 한다.

8년 동안 510개 산부인과 의원 문 닫아
아무리 산부인과 전공의 충원율이 낮아도 매년 신규 전공의는 있게 마련이고, 이들 중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다. 매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가 배출되면서 전체 산부인과 전문의 인원도 증가한다. 2013년 말 현재 산부인과 전문의는 5425명이다.

일반적으로 전문의가 늘어나면 의원 수도 증가해야하는데, 산부인과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산부인과 의원은 줄어들고 있다. 2005년 1907곳이었던 산부인과 의원이 2013년에는 1397곳으로 8년동안 510곳의 산부인과 의원이 사라졌다.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은 산부인과 의원이 많았다는 얘기다.

많은 수의 산부인과 의원이 사라지면서 결국 분만하는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이 생기게 되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 숫자가 증가하더니 2012년 말 현재 분만하는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이 55개 지역에 달한다(그림 1).

▲ (그림 1) 산부인과 병의원이 없거나, 산부인과가 있어도 분만실이 없는 지역(2012년 12월 말 현재)

이들 55개 지역의 산모는 이른바 '원정 출산'의 길에 올라야한다. 이로 인한 문제는 고스란히 환자가 떠안아야 한다.

산부인과 문제 해결? 현장에 가보라
왜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것일까? 다른 진료과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산부인과는 정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은 산모에게 맞춰져 있었다. 산모의 98.8%가 병·의원에서 출산할 정도로 대부분의 산모가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의사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해왔다. 오히려 낮은 분만수가로도 부족해 전격적으로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고 무과실 보상제도를 밀어부쳤다.

산부인과 의원의 폐업률이 높아도, 산부인과 의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전체 산부인과로 그 문제가 확산된다면서 산부인과 의원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도, 전공의 지원율이 낮아 교수들이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면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도, 현재의 산부인과 환경으로는 산부인과의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낮아진다고 산부인과 의사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산부인과의 문제가 얼마나 더 심각해져야 정부가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에 나설까? 정부도 지난 2011년부터 분만취약지 지원사업을 해봐서 알겠지만, 분만율이 증가한다고 해도 의료기관은 적자를 면치 못한다.

상황의 심각성이 이 정도인데도 정부는 여전히 손을 놓고 있다. 하지만 산부인과에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분만 경험이 많은 지금의 50~60대 산부인과 의사가 현직에 있을 때 산부인과를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이 흘러 이들이 은퇴한 다음에 현재 30~40대인 산부인과 의사들이 경험 많은 이들의 자리를 무리 없이 대체하고, 안전한 분만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산부인과를 방치했다가 이를 복구하기 위해 의료사고배상의 정부부담과 분만수가 인상 등 매년 3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자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산부인과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너무나도 망가져버린 산부인과를 회생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고자 한다면, 당장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하라. 하루 속히 수많은 잠재적 폐업 상태인 산부인과 의원(그림 2)을 생존가능한 의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 (그림 2) 산부인과 의원 월평균 진료비 현황 분포(2012년 기준)

산부인과 전문의가 생계의 수단으로 진료보다는 산후조리원을 선호하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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