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육·평생교육 통해 의학지식·술기 강화해야
돌팔이·유사의료 피해사례 모아 국민에게 알리길
최근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일명 규제 기요틴 발표가 있었다. 의학을 모르는 무지한 정치권력이 전문가의 전문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유지해야 할 사회질서를 흩뜨려 버리는 부끄러운 일이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상황이지만 이러한 위기를 순리대로 지혜롭게 풀어가는 것도 전문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의사들은 어떻게 전문가의 전문성을 지켜왔는지 함께 해결방법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인류사를 돌아볼 때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해방하려는 노력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이중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해지는 행위를 '의술'이라 한다.
의료인류학(medical anthropology)에서는 의술을 시대와 지역·민족·종교 등의 요소들을 고려해 현대의학과 전래의학·주술의학·민속의학·민간의학 등 여러 형태로 분류하고 있다. 전래의학 중에서 효과가 인정된 것들은 대체보완의학의 부류에 넣어 주기도 한다.
고대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민속(전래)의학이나 현대의학은 인간을 치료한다는 행위의 목적은 같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현대의학과 전래의학은 정체성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인간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최초의 의술은 오랜 세월 경험적 지식을 축적하면서 민간의학 혹은 전래의학·주술의학 등의 형태로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수천 년 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증명되지 않은 의료행위가 의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져 왔다. 그중에는 사람의 생명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위협해 온 행위가 더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의료윤리로 따진다면 '악행 금지의 원칙'을 어기는 행위들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원문에는 "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쓰여 있다. 당시 수술을 위해 칼만 대면 다 죽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소독법이 발견되지 전까지는 수술을 하나 안 하나 생존율이 비슷할 정도였다. 의학이 과학을 이용하기 전의 일들이다.
동양의학이나 인도의학이나 대륙(유럽)의학이나 거의 비슷했다. 지역마다 의학적 체계를 만들기 위해 의학 지식을 적어 놓은 의서(醫書)들이 있었지만,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각 나라에는 아직도 주술의학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행위들이 민속의학이나 전래의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계몽되지 않은 문화가 남아 있기도 하다.
의술이 전래의학과 현대의학으로 구분된 것은 불과 몇백 년에 불과하다. 중세 이후의 일이다. 중세의 갈레누스의 막강한 영향력은 수 세기동안 의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황제내경과 동의보감이 검증도 없이 절대 진리로 군림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동의보감을 절대 의서(醫書)로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상황이 중세의 분위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중세의 암흑기는 18세기 이후 발달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과학주의 사고가 커지면서 변화되어 갔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혈법과 수은요법 등은 의과학(medical science)의 영향으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됐다.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증명이 가능한 의학지식을 이용해 치료 효과를 높이며 발전시켜 온 것이 지금의 현대의학이다. 과학의 발달은 진단기술의 발달로 이어졌고, 전래의학의 쇠락과 함께 (현대)의학이 제 모습을 갖추고 전문가 집단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줬다.
1590년 얀센에 의해 발명된 현미경은 훗날 세균의 존재를 밝혀내는 여건을 제공했다. 1895년 뢴트겐의 의해 발명된 X-선 검사법은 진단기술의 획기적인 전기가 된다.
이후 진단기술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발전해 1971년 전산화단층촬영(CT) 발명은 의학의 수준을 급속히 높여갔다. 바로 의과학의 힘이고 이를 이용한 현대의학의 힘이다. 전래의학을 시행하던 무속인들이나 마을 지도자·점성술사·전래의사들은 일부 현대의학의 흐름에 강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현대의학에 손을 들게 된다.
의사를 만나기 힘든 지역이나, 상황에서 급한 대로 시행하는 민간요법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민간의학·전래의학이 아직도 남아 있는 지역들의 특징을 보면 문명화 혹은 계몽화된 지식을 늦게 접하거나 사회적 제도의 부산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 현대의학이 전해진 것은 120여 년 전인 19세기 말 근대시대에 주로 선교사들을 통해서다. 외국에서 들어 왔다고 해서 의학이라고 하지 않고 서양의학 혹은 양의학이라고 불렀다. 재미있는 것은 근대시대의 용어를 아직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진단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대의학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사건은 1867년 소독법의 발견과 함께 병원균을 발견한 것이다. 세균에 의한 질병을 규명하고 소독법의 발달로 수술적 치료가 높은 성공률을 나타내면서 민간의학과 차별은 더 확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현대의학은 마취법과 항생제의 발명과 함께 더욱 급속도로 발전했다. 원시적이고 지극히 간단한 시술이 고작이었던 전래의학은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학의 수술수준과 비교됐으며, 전래의학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의과학의 발전은 전래의학(민속의학·주술의학)을 인류의 삶속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사가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올바른 의술을 시행하기 위해 정리해야만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어깨너머 배운 지식과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배운 무리가 의사의 행세를 하는 문제다. 일명 돌팔이 의사들이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의사들의 전문가적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
의사들은 돌팔이 의사들을 없애기 위해 의학교육과정을 표준화시키고, 배우기에 더욱 어렵고 힘들게 만들었다. 대표적인 계기가 의학교육을 강력하게 강화한 미국의 플렉스너(flexner) 의료개혁이다. 플렉스너는 의료전문성(medical professionalism)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지금의 레지던트 수련과정인 전공의 수련제도를 만들어 전문의제도를 도입하고, 의과대학 입학자격을 대학 졸업자로 한정했다. 교육 기간도 늘려 면허제도를 강화했다. 플렉스너의 의료개혁으로 저질 의사를 배출하던 의과대학이 절반 이상 문을 닫게 됐다. 이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동종요법 등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 나게 됐다.
플렉스너의 의료개혁과 함께 미국의사협회의 행보가 흥미롭다. 이들은 먼저 의사가 아닌 유사의료인들에 의해 발생한 피해사례들을 모아 국민에게 알리는 홍보작업에 펼쳤다. 효과는 대성공이었다. 돌팔이 의료와 유사의료업자들이 국민의 비난 속에 자취를 감췄다. 또한 흡수할 수 있는 의료집단을 한정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의사집단에 영입하거나, 진료 영역을 제한시키는 작업을 했다. 다시는 의사의 전문가적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전문가적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30∼40년 동안 이뤄진 일이다.
짧은 의료인류학과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의사들이 어떻게 의료 전문성의 위기를 극복해가야 할지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전래의학 등의 유사의료행위가 현대의학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까?
먼저 의과대학 교육과정(Basic Medical Education, BME )을 더욱 강도 높고, 어렵게 공부하도록 교육기준을 정해야 한다. 임상실습도 인증된 교육병원에서 일정시간 이수하도록 강제 규정을 만들어 의학을 넘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로 보수교육의 강화이다. 면허를 취득한 후에도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일정 시간을 정해 평생전문성교육(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 CPD)을 통해 전문적인 지식과 술기의 수준을 유지토록 해야 한다. 캐나다의 경우 5년간 300시간의 보수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의학교육협의회나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을 비롯해 각 전문학회 등에서 주도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대한의사협회는 국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온라인을 통해 홍보에 힘을 기울임으로써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의료전문성(medical professionalism)을 바탕으로 전문화된 의학지식과 술기를 강화하면 유사의료는 더는 발붙일 곳이 없어지게 된다. 전문가의 권위는 엄격한 기준과 노력으로 지켜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