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화 서울대어린이병원장 "정부 재정지원 절실"
작년 적자 190억원...어른보다 시간·인력 3~4 배
지난해 서울대어린이병원 적자가 19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대어린이병원 뿐만 아니라 다른 어린이병원도 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
Q.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지난해 190억 원의 적자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 적자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하다.
어린이 환자의 진료는 '강한 공공성, 약한 수익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수익성이 약한 이유는 현행 건강보험 수가체계가 어린이를 진찰하고 치료하는데 성인보다 더 많은 인력과 시간, 수고가 드는 점을 보상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술을 어린이에게 할 경우, 그에 드는 인력과 시간이 어른보다 3∼4배 이상 필요한 경우가 비일비재함에도 건강보험 수가는 이런 차이와 어려운 특수성을 제대로 보상해 주지 못하고 있다.
또 복잡한 선천성 질환과 완치가 어려운 희귀 질병의 경우 과거에는 유년기에 사망하던 아이들이 적극적인 치료로 생존율이 급격히 향상됐다.
그러나 이런 환자를 치료 후 돌려보낼 1, 2차 의료기관의 미비로 서울대어린이병원에서 진료를 계속하게 된다. 이렇게 치료가 어려운 질환으로 고통받는 안타까운 어린이를 돌보는 것이 공공의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의 의료수가체계는 '어린이'이면서 '난치' 환자는 진료할수록 적자를 보게 되는 구조이다. 또 성인 환자에 비해 장기입원이 흔한 탓도 수익 악화의 요인이 된다.
그렇다고 선진국처럼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것도 없다 보니, 적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Q. 전국에 있는 어린이병원, 특히 국공립병원의 어린이병원이 적자가 더 큰 것 같다. 사립대병원보다 국공립병원의 적자 폭이 큰 이유는?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어린이 전문 의료진과, 300개가 넘는 일반병실·신생아중환자실·소아중환자실·소아수술실·소아응급실·소아정신병동 등 어린이 질환을 전문 진료하는데 필요한 독자적인 시설과 조직체계 등을 모두 갖추고 있다.
민간병원 중에서도 어린이병원을 운영하는 곳이 드물게 있긴 한데, 서울대어린이병원과 같이 독자적인 의료진·시설·조직을 완전하게 갖춘 곳은 없다.
다른 병원의 경우 부분적으로는 전문이 있지만, 성인 환자와 같이 사용하는 부분도 꽤 된다. 적자 폭을 가능한 줄여보려는 자구책의 일환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린이에 전문화된 진료를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Q. 성인병원과는 달리 어린이병원은 인력, 처치 소요시간 등 들어가는 비용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심장병을 지니고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가 청색증을 보여 사경을 헤매는 경우를 예로 들겠다.
허파로 가는 폐동맥이 막힌 기형의 최신 치료법은 막힌 판막을 뚫는 비수술적 치료이다. 아기의 상태가 매우 위험해서 아기를 옮길 때부터 심장 전문 의사가 동행해야 하고, 시술이 끝날 때까지 3∼4시간 동안, 5명의 의사와 1∼2명의 전문 간호사, 2명의 의료기사가 참여한다. 그런데 이 시술을 성인에게 할 경우 의사 1∼2명이 1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도 건강보험수가는 두 경우가 같다.
다른 사례를 들겠다. 2kg 정도 몸무게의 신생아가 중환을 앓고 있을 때, 더욱 상세하고 정확한 혈액검사가 필요한 경우, 혈액채취 과정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만약 성인과 같이 10∼20cc를 채취하면 아기는 검사만으로도 실혈량이 많아져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소아진단검사의학과를 따로 운영하는데, 극소량의 혈액으로 여러 미세검사를 동시에 시행하는 과정은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과 인력이 더 들지만, 수가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어린 환아를 위한 세심한 검사와 진료과정이 모두 고비용으로, 누적되다 보니 적자의 폭이 커지고 있다.
이밖에 기본적으로 어린이 환자는 성인보다 간호인력이 더 필요해 인건비가 늘어나고, 검사를 할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의료장비 회전율이 낮다.
Q. 어린이병원에 대한 공적 재정지원이 시급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행 수가체계로는 원가보전조차 힘들다는 얘기인데, 어느 정도 공적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앞서 언급했지만, 현행 건강보험수가체계는 어린이병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원가보전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어린이병원의 적자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어린이병원의 적자는 50억 원에 그쳤으나, 진료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20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적자가 증가했다.
이렇게 되면 어린이병원을 운영함에 따른 경영압박이 가중되고 시설·인력·장비 면에서 어린이병원에 대한 투자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결과는 고스란히 어린이 환자와 그 가족들이 떠안아야 하는 것이 된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당연히 공적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그동안 정부(보건복지부)의 재정지원 규모는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재정지원 방식에는 문제가 없나?
정부의 공공의료 확대 정책에 따라 서울대병원 외에도 양산부산대병원·경북대병원·전북대병원·강원대병원 등 4개 국립대병원에서 어린이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아쉬운 것은 건립비용은 정부에서 지원했지만 이후 운영에 대해서는 일체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미국·일본의 경우 어린이병원은 100% 정부지원과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알아서 생존하라는 식으로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정부에서 지원책을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Q. 신생아집중치료실에 대한 지원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병원운영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궁금하다.
서울대어린이병원 신생아중환자실(신생아집중치료실)의 경우 2012년에 31억 원 적자였으나 2013년 초 수가 100% 인상으로 그해에는 적자 규모가 15억 원으로 많이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적자규모는 조금 더 줄어들었다. 신생아중환자실뿐만 아니라 어린이병원 진료수가 전반에 대한 현실화가 필요하다.
Q.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올해 개원 30주년을 맞는다. 30년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해주신다면?
서울대어린이병원은 지난 1985년 10월 16일, 당시 국내에서는 물론 동양권 최초의 어린이전문 대학병원으로 문을 열었다.
어린이·청소년 질환에 관한 전문적인 진료와 교육·연구 기능을 전담하는 국내 최초의 전문 의료기관으로서 30년간 각종 중증·희귀질환으로부터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켜내는 버팀목으로 기능해왔다고 자부한다.
현재 서울대어린이병원은 70여 명의 어린이 질환 전문 교수진과 100여 명의 전임의와 전공의, 400여 명의 간호사 등 800여 명의 인력이 연간 31만 명의 외래환자와 10만 명이 넘는 입원환자를 진료하고 있고, 1만 건이 넘는 수술을 하고 있다.
또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해 각 진료과의 소아분과를 두어 전문성을 꾀하고 있으며, 특히 환자중심의 질병치료를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도모해 현재 희귀질환센터·소아암센터·선천성심장병센터·소아뇌신경센터·신생아집중치료센터·소아장기이식센터·소아콩팥병센터·소아안센터·인공와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출산율이 감소하는 현 상황에서 아픈 어린이를 치료하고, 건강한 어린이를 더 건강하게 돌보는 것은 국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대어린이병원의 필요성과 역할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린이병원의 적정 운영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방안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뿐이다. 모자보건법 및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어린이병원을 지정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지원 대상이 되는 어린이병원의 진료수준 평가 기준과 재정지원 근거 조항 등을 마련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강조했지만, 어린이병원에 내재하고 있는 본질적인 공공성에 비춰 정부 주도의 의료공급체계 구축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어린이병원의 전문 인력, 의료장비, 연구 등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어린이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이 가능해질 것으로 믿는다.